사신도(四神圖)
동서남북의 방위를 나타내고 우주의 질서를 진호(鎭護)하는 상징적인 동물을 그린 그림이다.
사신은 동쪽의 청룡(靑龍), 서쪽의 백호(白虎), 남쪽의 주작(朱雀), 북쪽의 현무(玄武)를 말한다.
사신에 대한 사상이나 도상(圖像)이 언제부터 유래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중국의 전국시대(戰國時代)에서 진한시대(秦漢時代)에 걸쳐 정착된 것으로 보이며, 오행설(五行說)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나라에서는 삼국시대 고분 벽화에서 최초로 나타나며, 이러한 사상이 계속해서 전해 내려와 조선시대의 민화(民畵)에서까지도 보인다.
사신도의 형상은 시대에 따라 양식상의 차이는 보이지만,
청룡은 본래가 상상의 동물로서 몸에는 뱀의 비늘로 문양을 넣고 머리에 뿔이 한두 개 돋아 있고 불을 내뿜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백호는 호랑이 얼굴에 몸에는 호피문(虎皮文)이 표현되며 날개가 달려 있고, 혀를 내밀어 위용을 나타내었다.
주작은 봉황의 모습과 유사하다.
현무는 거북과 뱀으로 표현되는데, 뱀이 거북을 휘어 감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강서대묘의 사신도
석벽에 채색
평남 남포시 강서구역 삼묘리
7세기
평안남도 강서군 강서면 삼묘리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벽화고분. 삼묘리는 크고 작은 3기의 묘가 있어서 삼묘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강서대묘는 강서삼묘 중 가장 큰 벽화고분이다.
고분의 분구는 원형이며, 기저부의 지름은 약 51.6m, 높이는 8.86m이다. 무덤의 구조는 널방 남벽의 중앙에 달린 널길과 평면이 방형인 널방으로 된 외방 무덤이다. 널방 네 벽과 천장은 질이 좋고 잘 다듬어진 큰 화강암 판석 각각 한 장으로 축조하였고, 천장은 2단의 평행 굄돌을 안쪽으로 내밀고 그 위에 2단의 삼각굄돌을 얹고서 덮개돌을 덮은 모줄임천장〔抹角藻井式天障〕이다.
이 고분은 고구려 후반기인 7세기 경에 조성되었다. 이때는 도교의 영향으로 무덤에는 〈사신도(四神圖)〉가 주제가 되어 네 벽을 채우는 경향이 있었다. 사신은 네 방위를 맡은 신으로 상징적인 동물로서 표현되는데, 동쪽은 청룡(靑龍), 서쪽은 백호(白虎), 남쪽은 주작(朱雀), 북쪽은 현무(玄武)가 그려진다.
그 중 강서대묘의 〈사신도〉는 회칠을 하지 않은 잘 다듬어진 널방 돌벽 면에 직접 그렸으며 훌륭한 구도와 선명한 채색으로 여러 〈사신도〉 중에서도 빼어난 작품이다.
강서대묘 청룡도
세련된 구도에 화려한 색채, 보는 이를 압도하는 속도감.
이 청룡은 뿔이 두 개 달렸다. 두눈은 튕겨나갈 듯 하고 길게 내뿜은 혀는 지금이라도 하늘로 솟아오를 듯하다. 몸통 부분에서 절정을 이룬 S자 곡선은 꼬리 부분에 이르러 부드럽고 긴 여운을 남긴다. 현란하게 채색된 비늘은 섬세함의 극치라 하기에 충분하다. 청룡 벽화 중 최고의 걸작이다.
청룡(靑龍)은 푸른용으로 상징되는 사신으로 하늘의 다섯 개 구문인 오관(五官)중 동관(東方)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태세신(太歲神:목성)으로도 통한다. 예로부터 무덤의 현실(玄室) 동쪽 벽이나 관(棺)의 왼쪽에 그렸다.
강서대묘 주작도
힘차게 퍼덕이는 날개, 곧추세운 머리, 회오리 치는 듯한 꼬리, 비상을 준비하는 한 마리 주작. 그 생동감이 가득하다.
불길처럼 타오르는 깃털도 저 고구려인의 예술감각이 보통이 아님을 잘 보여 준다. 아랫 부분 불그스레한 갈색의 산맥이 화면을 부드럽고 그윽하게 해줌으로써 동(動)과 정(靜)의 조화까지 이루고 있다.
주작(朱雀)이란 남방을 지키는 수호신인 남방성수(南方星宿)의 이름으로 주조(朱鳥)라고도 한다. 붉은 봉황을 형상화하여 예로부터 무덤과 관(棺)의 앞쪽(남쪽)에 그렸다.
강서대묘 백호도
강서대묘의 백호도는 박락(剝落)이 심해 그 섬세하고 화려한 부분을 알아 보기가 어려우나 길게 뻗은 목과 크게 벌린 입은 백호의 용맹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주황색의 날개는 아주 선명하게 남아 있다. 강서중묘의 백호도와 비슷하다.
백호(白虎)는 하늘의 다섯 개 구문인 오관(五官)중 서관(西方)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태백신(太白神:금성)으로도 통한다.
예로부터 무덤의 현실(玄室) 서쪽 벽이나 관(棺)의 오른쪽에 그렸다.
강서대묘 현무도
이 현무도는 달리는 거북의 몸을 뱀이 휘감고 있는 모습으로, 거북이나 뱀의 세부 표현도 사실적일 뿐만 아니라 이들이 이루는 유연한 듯하면서도 팽팽한 긴장감으로 고구려인의 힘이 느껴지는 걸작이다.
출처 : http://www.daechonnet.co.kr/home/koreanart/0041.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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