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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 Health/음식정보

비 오는 날의 그리움 한 그릇, 손칼국수


비 오는 날의 그리움 한 그릇, 손칼국수

김태경·정한진의 음식수다

| 제69호 | 20080705 입력

요즘처럼 추적추적 비 오는 날이면 밀가루 반죽을 예쁘게 말아 반듯하게 폭을 맞춰 썬 후 멸치 육수에 담가 끓여 먹던 손칼국수가 절로 떠오른다. 어머니 치마꼬리 뒤로 파릇파릇 생생하게 피어올랐던 풀처럼 여리고 따뜻한 그리움이 국수 가락을 따라 길고 폭신하게 이어지기 때문일까.

멸치 육수에 애호박·당근·파 등을 썰어 넣고 끓여 낸 ‘명동칼국수(02-756-3390)’의 칼국수사진 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선배, 칼국수 먹으러 갑시다.”
“날씨도 덥고 비도 오는데….”
말꼬리를 흐리며 약간 머뭇거리는 눈치였지만 선배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따라 나섰다.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어느 방향으로 들어설까 망설이다 서울과학고등학교 방향으로 쭉 들어가 삼거리 직전 왼쪽 골목 안에 있는 ‘명륜손칼국수(02-742-8662)’에 자리를 잡았다.

혜화동 로터리 근처에는 칼국수 집이 많은데 그중 ‘손칼국수’ ‘혜화칼국수’ 등과 함께 잘 알려진 집이다. 사골 육수로 만든 칼국수가 깔끔하면서도 칼칼한 맛이 입에 잘 맞는다. 하지만 일찍 문을 닫으니 뜨내기손님이라면 여간해 맛 한번 보기 어려운 집이기도 하다.

“그래, 비 오는 날엔 이상하게도 칼국수나 수제비가 먹고 싶어. 어머니께서도 그러셨지. 하루 종일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식구 모두 기분이 가라앉아 있으면 ‘칼국수나 해 먹을까’ 하면서 국수를 미셨어.”

“그러면 갑자기 집안이 분주해지고 어린 저도 어머니를 돕겠다고 신이 나서 방안에 신문지를 깔고 밀대를 찾아 나서고 반죽 한번 해보겠다고 떼도 써 보고 그랬죠.”

“멸치 육수에 애호박만 썰어 넣었는데도 약간 껄쭉한 국물의 칼국수 한 그릇을 김치 한 보시기로 비우고 나면 배가 든든하면서도 왠지 기분이 좋아졌잖아.”

어 쩌면 넉넉지 않았던 시절, 변변하게 넣은 것도 없이 만든 칼국수였지만 문득문득 그리운 이유는 바로 이런 기억들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가 손수 밀어 만들어 주신 정성과 손맛이 그립기 때문이다. 지금은 멸치 육수로 만드는 칼국수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다. 멸치 육수에 집 간장으로 간을 해 비록 색깔은 투박하다 할지라도 어디 소박한 시골 식당에서 만난다면 더없이 반가울 듯하다.

“귀한 손님이 오면 닭을 잡아 대접했듯 예전엔 닭 육수로 만든 칼국수가 주로 많았어. 지금도 명동의 유명한 칼국수 집은 닭 육수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 80년대에는 여기처럼 사골 육수에 칼국수를 삶아 내는 집이 많아졌고, 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바지락이나 해물을 넣은 칼국수가 유행하게 됐지.”

칼국수는 말 그대로 ‘칼로 썰어 만든 국수’를 말한다. 반죽을 펴 일정한 간격으로 자르면 긴 가닥의 국수를 얻을 수 있으므로 가장 간편하면서도 일반화된 국수 제조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국수를 만드는 법은 이외에도 반죽을 잡아 당겨 가늘게 만들어 국수를 만드는 방식,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 틀에 반죽을 넣고 위에서 눌러 국수를 만드는 방식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국수를 삶아 내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죠. 바로 육수에 삶아 육수와 같이 내는 방식과 국수를 끓는 물에 건져내 찬물에 씻어 장국에 말고 고명을 얹어 내는 방식이 있죠. 앞의 방식으로 육수에 국수를 바로 넣고 만드는 칼국수를 ‘누름국수’ 또는 ‘제물국수’라고 하고, 나중의 방식으로 장국에 말아 내는 칼국수를 ‘건짐국수’라고 부르죠. 칼국수라고 하면 대부분 누름국수인데, 경상도 안동에서는 여름철 사투리로 ‘건진국수’라고 부르는 칼국수를 맛볼 수 있어요.”

“반죽을 손으로 뜯어 육수에 넣어 끓인 음식을 수제비라 하고, 이에 상대되는 말을 칼제비라고 하잖아. 반죽을 펴 가늘게 썰어 내면 칼국수고, 반죽을 좀 더 굵게 싹둑싹둑 썰어 내면 칼싹두기라고 하는데 둘 다 칼제비에 속하지.”

예전에 밀가루가 귀할 때는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는 메밀로 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순 메밀가루는 밀가루에 비해 점성이 약했기 때문에 칼로 가늘게 썰기도 쉽지 않아 굵게 썰어야 했고 길이도 짧았다. 이렇게 썬 메밀국수를 누름국수 방법으로 끓여 내면 밀가루보다 덜 차지기 때문에 쉽게 푹 퍼져 쫄깃한 맛은 없다.

하지만 부드럽고 구수한 메밀의 순수한 맛을 간직한 메밀칼싹두기 맛을 느낄 수 있다.
작가 박완서는 어느 글에서 ‘어릴 적 비 오는 날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이 메밀칼싹두기의 소박한 맛에는 배 속뿐 아니라 마음속까지 훈훈하고 따뜻하게 하면서 각기 외로움 타는 식구들을 한 식구로 어우르고 위로하는 신기한 힘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비 오는 날 칼국수가 생각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신기한 힘이 그립기 때문이리라.



맛있는 것 먹기를 낙으로 삼는 대학 미학과 선후배 김태경(이론과실천 대표)ㆍ정한진(창원전문대 식품조리과 교수)씨가 미학(美學) 대신 미식(美食)을 탐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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