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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Talent

최고의 미녀, 엘리자베스 테일러


 

엘리자베스 테일러 (Elizabeth Rosemond Taylor)

1932년 2월 27일, 영국 런던 출생
아카데미 여우주연상(1960,1966)



                                                           1944년 12살때 '녹원의 천사'에서


10살때 영화 <귀로>에 첫 출연하였고, 소녀시절 <녹원의 천사><신부의 아버지,1950> 등을 거쳐
<젊은이의 양지,1951>에서 수려한 미모와 연기력이 돋보여 <자이언트,1956><클레오파트라,1963>등에 출연하였다.
<버터필드8,1960><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1966>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12살때 할리우드서 아역배우로 출발한 그녀는, 아역스타는 나이를 먹으면 인기를 잃는다는 불문율을 깨고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이중 대표작이 20세기 폭스의 <클레오파트라>.



                                                            Elizabeth Taylor As Cleopatra

킴 노박, 소피아 로렌 등을 제치고 세기의 미인역에 캐스팅된 테일러는 당시로선 천문학적인 액수인 100만 달러를 출연료로 받았다. 5년에 걸쳐 제작된 클레오파트라는 비난과 찬사를 동시에 받았고, 테일러는 이 영화 촬영중 버터필드8(1960)로 첫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966년 테일러에게 두번째 아카데미상을 안겨 준 작품은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미의 대명사로 꼽혔던 테일러가 마스카라가 번진 얼굴로 열연을 펼쳤던 작품이다.



                                                                             Who's Afraid Of Virginia Woolf


당시 주연을 했던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쳐드 버튼은 금슬 좋기로 소문난 부부였다고 한다.
그런 그들이 보여주는 막나가는(?) 부부의 역할은 색다른 기분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처럼 화려한 영화 경력 못지 않게 그녀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화려한 사생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평생을 남자와 보석, 돈과 명예에 둘러 쌓여 있었다고 한다.
여덟 번의 결혼과 이혼, 수 천번의 스캔들, 희대의 바람둥이 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세계 최고의 미녀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그녀는, 지금은 노년의 나이로 접어 들었지만, 과거의 모습을 한 번 본 사람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 것 같다.






리즈(Lize)의 사랑

세기의 연인 엘리자베스 테일러.
전후 세계 최고의 미인으로 손꼽히며 화려한 용모 못지 않게 로맨스까지 화려했던 스타중의 스타,
수 천번의 스캔들과 여덟 번의 결혼과 이혼. 어떠한 헐리우드 배우도 감히 해내지 못했던 일(?)을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아무렇지도 않게 해냈다. 70이 넘은 지금에도 여전히 남자를 갈구하고 있다는 이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

그녀의 파란만장한 러브스토리를 들어보자.



                                             17세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그 청순하고도 고혹적인 아름다움

유니버시티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1년전의 모습으로,
저 모습에 당대의 내노라하는 스타들이 그녀에게 연모의 정을 보내고 그녀와의 상사로 몽고메리 크리프트는 일찍 세상을 떴다는 이야기도 있고 당대 최고스타들과 80년대에 벌써 여섯번을 결혼하여 스캔들 메이커의 면모를 보여주질 않았던가?

그녀의 청순한 아름다움, 체형에 알맞게 도드라져 나온 가슴, 한줌밖에 안되는 꽉 안으면 그냥 끊어질 것 같은 허리, 이루지 못할 사랑에 가슴앓이 하는 그녀의 서늘하게 젖은 눈매는 '아! 아름다운 여인은 저런 모습이구나'하고, 호! 하는 한숨이 새어나오도록 기막히게 고혹적인 모습이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날 때부터 스타였다. 또랑또랑한 눈매와 오똑한 코, 앵두같은 입술 그리고 완벽한 몸매를 지니고 있었던 리즈(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어린 시절부터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는 슈퍼 스타였고 그 때부터 뭇 남성들의 사랑을 받는 여자였다. 순수함 속의 관능미, 그리고 그 관능미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성적 매력이야말로 남성들이 리즈를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결혼과 이혼을 밥 먹듯이 하는 여자.


첫번째 결혼 (1950)

'젊은이의 양지'로 스타덤에 오른 그녀는 자신의 첫 결혼 상대로, 호텔왕 힐튼의 아들인 '콘래드'를 선택했다. 
콘레드 닠 힐튼 주니어와 결혼한 19살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이 당시 완벽한 결혼을 꿈꾸었다고 한다.

                                      1951년작 영화 '젊은이의 양지'(A Place in the Sun)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리즈에게는 세계를 움직일수 있는 미모가 있었고, 그녀의 남편에게는 힐튼가의 어마어마한 재산이 있었기에 '세기의 결혼' 이라는 찬사와 함께 많은 스포트 라이트를 받았지만, 결국 이 결혼은 파경을 맞게 된다. 배우답게 '가식'을 즐기는 그녀와 그것을 못견뎌한 콘래드는 신혼여행 후 바로 이혼했다고 한다.

리즈는 "이 남자는 지옥같다." 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홀연히 첫 번째 결혼을 뒤집어 엎고 스무살이나 연상인 배우 마이클 와일딩과 두번째 결혼을 한다.







두번째 결혼 (1952)

갓 스물을 넘긴 '이혼녀' 리즈.. 

그녀는 영국 최고의 스타, 마이클 와일딩을 자신의 두 번째 남편으로 '택했다'

당시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점찍은 '하워드 휴즈'는 마이클 와일딩에 대한 온갖 루머와 협박을 해가며 결혼을 방해했으나 당당히 결혼 도장을 찍는다.

리즈는 연상인 마이클에게서 아버지 같은 포근함과 따스함을 느끼려고 했지만 마이클은 그러하지 못했다. 리즈는 이미 <귀로><아버지의 인생><작은 아씨들> 등을 통한 헐리우드 최고의 톱스타였고 마이클은 '리즈의 남편' 이라는 꼬리표에 일생을 괴로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이클 와일딩과의 결혼 생활은 그녀에게 '크리스'와 '마이클'이라는 아들을 가져다 주었다. 리즈와 마이클은 2명의 아이를 낳을 정도로 결혼생활을 지속하려 했으나 이 결혼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리즈가 영화 <젊은이의 양지>에서 몽고메리 클리프트와 염문을 뿌렸기 때문이다.




리즈는 무능력하고 수동적인 남편 마이클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경멸했다. 그녀는 진취적이고 야망적인 클리프트를 좋아했고 노골적인 유혹으로 언론의 입방아에 올랐다. 그러나 그런 것에 아랑곳 할 리즈는 아니었다.

하지만 채 클리프트와의 사랑이 무르익기도 전에 리즈는 56년 <자이언트>에 출연하다 또 다른 남자를 만난다. 바로 헐리우드 전설의 배우 '제임스 딘' 이었다.




가죽점퍼와 반항적인 눈매, 그리고 터프함과 자상함을 동시에 겸비하고 있었던 제임스 딘과 리즈는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수 많은 스캔들 기사를 낳았다. 리즈는 제임스 딘과 열렬히 사랑하면서 '이 남자는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남자' 라고 확신했다.

그녀는 <자이언트>에서 10대부터 70대에 이르는 세월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연기를 해내며 찬사를 자아낸 동시에 제임스 딘과의 사랑을 꽃피워갔다.

그러나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녀의 매력을 신이 시기라도 한 것일까. '전설의 배우' 제임스 딘이 <자이언트> 이후, 자동차 사고로 단박에 즉사하고 만 것이다. 제임스 딘의 죽음은 전 세계적인 충격인 동시에 리즈의 절망이었다.

"신이 나를 저주하는구나. 더 무엇을 빼앗으려 하시는가!" 제임스 딘의 죽음을 알고 리즈가 울부짖으며 읊은 말이다.

그러나 제임스 딘의 죽음으로 평생을 순정을 바치며 살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아니었다. 그렇게 정숙하게 살기에는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들이 너무 많았고 그녀를 유혹하는 돈과 권력도 넘쳐났다.

리즈는 결국 마이클과는 더 이상의 결혼생활이 불가능 하다는 것을 깨닫고 57년 두번째 이혼에 도장을 찍는다. 그녀의 나이 24살이었다.







세번째 결혼 (1957)

놀랍게도 이혼 이틀 뒤, 리즈는 영화제작자 마이크 토드(Mike Todd)와 세번째 결혼식을 올린다. 헐리우드의 눈은 휘둥그레졌지만 정작 리즈 본인은 태연했다.

마이크 토드는 리즈를 열렬히 사랑했다. 이혼 소식이 나자마자 그녀에게 꽃다발을 갖다 바쳤고 자가용, 비행기에 집까지 그녀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리즈는 이러한 토드의 정성스러운 구애에 마음이 흔들렸고 결혼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헐리우드에서는 리즈의 세번째 결혼을 두고 '즉흥 결혼식' 이라며 비웃었지만 정작 리즈 부부는 누구보다도 행복했다.

이 당시, 그녀의 결혼식에 많은 사람들이 비웃었지만, 정작 리즈 부부는 누구보다도 행복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리즈는 "드디어 행복을 찾았다" 라며 결혼생활에 만족을 하며 58년 (뜨거울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를 끝으로 "은퇴할 생각이 있다." 는 폭탄 선언까지 했다고 합니다.



                                                      Cat on a Hot Tin Roof (Paul Newman and Elizabeth Taylor)


그러나 이 결혼 역시 채 2년을 넘기지 못했다. 뉴욕의 한 시상식장에 개인 비행기를 몰고 떠났던 남편 토드가 그만 추락사로 사망하고 만 것이다. (파란만장한 인생인것 같습니다.)

원래 부부동반이었던 이 행사는 리즈의 갑작스러운 감기몸살로 토드만이 떠나게 됐는데 한 순간에 한명은 저세상 사람으로, 한명은 이세상 사람으로 삶의 경계가 나뉘어진 것이다.


                                           마이클 토드와의 사이에서 태어난딸. 엄마의 미모를 못 이어받았다.


토드에게 안착하려 했던 리즈는 큰 쇼크를 받았다. 그리고 리즈는 또 한번 치떨리게 '신의 저주' 를 되새겼다. 그녀와 사랑을 하는 남자는 이렇게 모두 무능력자로 전락하거나 처참한 죽음으로 그 끝을 보고야 말았다. 제임스 딘이 그러했고 마이클 토드 역시 그러하지 않았는가!

남자를 파멸로 몰고 가는 여자. 이것이 신이 시기하는 미모를 지닌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운명이었다.

* 마이클 토드는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엄청나게 구타함
* 마이클 토드 역시, 리즈와의 결혼을 위해 부인과 이혼
* 리즈는 마이클과의 결혼을 위해 유대교로 개종





친구의 남자와 놀아나다.


네번째 결혼 (1959)

리즈는 마이클 토드를 잃은 슬픔을 또 다른 사랑으로 치유하려 했다. 리즈의 목표물은 그녀와 가장 친한 친구 데비 레이놀즈의 남편, 에디 피셔였다.

소문난 잉꼬부부였던 데비 레이놀즈와 에디피셔는 스스로 "가장 완벽한 부부"라며 자화자찬을 할 정도로 서로를 사랑했다. 그러나 '희대의 미모'를 지녔던 엘리자베스 테일러 앞에서는 그 완벽한 사랑도 처참하게 깨져버렸다.

데비 레이놀즈는 "리즈는 나와 가장 친한 친구다. 그리고 에디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의 남편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두 명이 자주 만나는 것이 무에 그리 대수랴." 라며 리즈와 에디의 만남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이미 리즈와 에디는 불륜에 빠진 상태였다.

리즈는 가장 친한 친구를 배신하면서까지 에디를 자신의 남자로 만들었다.

이 결혼은, 헐리우드에서의 입지가 단단했었던 그녀를 무참히 흔들리게 했던 결혼이었다. 리즈와 제일 친한 친구였던 데비 레이놀즈의 남편 에디 피셔를 이혼하게 하고, 결혼 했기 때문이다.

이혼은 허락하지만 불륜은 허락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 상 리즈의 네 번째 결혼은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리즈의 사진에 돌을 던지고 침을 뱉을 정도였고,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탈 정도로 헐리우드에서 단단하던 그녀의 입지도 무참히 흔들렸다. 리즈의 이름 앞에는 '최고의 톱 스타' 라는 별칭이 사라지고 '가정 파괴범' 과 '망할 계집' 이라는 상소리가 붙기 시작했다.

그러나 리즈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난 목소리를 높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나보고 어쩌라고! 그럼 평생 혼자 자란 말이야!" 라며 응수할 정도였다.


에디 피셔

50년대, 프랭크 시나트라와 쌍벽을 이루던 가수 에디 피셔.

남편을 잃고 실의에 잠긴 리즈를 위로해주다 사랑에 빠져
가정을 내팽기치고 전격적으로 결혼을 감행한다

* 에디 피셔는 '스타워즈'의 레아 공주, 캐리 피셔의 아버지.
* 에디의 아내, 데비 레이놀즈는 '사랑은 비를 타고'의 여주인공이었음.



그러나 결혼 뒤 에디는 예전의 에디가 아니었다. 그는 결혼 후 리즈의 돈을 물 쓰듯이 쓰기 시작했고 곳곳에서 남사스러운 섹스 파티를 벌였다. 그가 사랑했던 것은 리즈가 아니라 리즈의 돈이었던 것이다.

리즈는 곧 이 결혼을 후회했다. "저 사람은 미쳤고, 나도 미쳤어. 우린 모두 제 정신이 아니었던거야." 라고. 그리고 그녀는 채 2년도 안 돼 네번째 이혼에 도장을 찍는다.





다섯번째 결혼 (1964)

그러나 리즈는 또 다시 친구 시빌의 남편 배우 리차드 버튼과 놀아나기 시작했다. 아니, 놀아난다기 보다는 또 다른 사랑에 빠졌다고 해야하나. 시빌은 "리즈가 나한테 어떤 친군데..." 라면서 울부 짖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리즈와 리차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상태였고 결국 엄청난 위자료를 지불하면서까지 다섯번째 결혼에 골인한다.


리처드 버튼
리즈 테일러가 유일하게 사랑한 남자

결혼과 이혼을 밥먹듯 하는 리즈를 경멸했던 리처드.
두 사람은 '클레오파트라'에서 만나게 된다.

처음 두 사람의 사이는 엄청나게 나빴으며 리처드는 툭하면 그녀에게 비난을 퍼붓곤 했다. 그러나, 리즈의 눈부신 미모와 놀라운 마력은 그를 사랑의 밧줄로 묶었고 툭하면 가정을 깨부수는 리즈에게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영화 촬영이 끝나고, 가정으로 돌아가려던 리처드를 '자살 기도'로 막은 리즈..
결국 두 사람은 결혼한다. 두 사람의 사랑의 결실인 '클레오파트라'는 '쫄딱' 망해 20세기 폭스 사를 부도 직전까지 몰아넣었으나 이들의 사랑을 가로막지는 못했다.

화려한 생활과 계속되는 스캔들은 리처드의 배우 생명을 고갈시켜갔으며 이에 싫증을 느낀 리처드는 리즈와 이혼하나 다시 또 재혼하여 '2번 결혼, 2번 이혼'이라는 신기록을 남긴다.



헐리우드는 또 다시 비난에 들끓었지만 리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작품을 통해 얼마든지 이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리즈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해 그녀의 영화 <클레오 파트라>가 개봉되며 비난도 찬사로 바뀌었다.

'세기의 천재배우' 라는 찬사까지 나올 정도로 위엄있는 카리스마를 뽐냈던 리즈는 금세기 최고의 '클레오 파트라' 를 만들면서 배우 인생 최고의 영화를 스스로 창조해냈다.

헐리우드에서 다시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한 리즈는 자신만만하게 리차드 버튼과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주변 사람들 모두 "이제 리즈의 방황은 끝이 났다" 고 할 정도로 리즈는 리차드 버튼과 열정적인 사랑을 나눴다.

그녀에게 쏟아지는 셀 수 없는 돈은 곧 집과 보석으로 바뀌었고 리즈는 자신이 손에 넣고 싶은 집과 옷, 보석이 있으면 닥치는대로 사들였다. 그래도 돈은 바닥이 날 줄 몰랐고 리즈는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화려한 결혼생활을 지속했다.

그리고 이 화려함의 연속이던 어느 날, 세계 최고의 톱 스타에게서 충격적인 발표가 나온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

바로 엘리자베스 테일러, 리즈의 다섯번째 이혼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길은정-편승엽 부부의 이혼 발표 때 쓰여져 화제가 되었던 이 말은 원래 리즈의 입에서 먼저 나온 명언 아닌 명언이었다. 10년의 결혼생활이었다. 리즈는 결혼 생활 중 가장 긴 시간을 함께 했던 리차드 버튼과 이혼을 결심한 것이다.








여섯번째 결혼 & 일곱번째 결혼 (1975)

존 워너

리처드와 이혼 후, 그녀는 공화당의 상원의원인 존 워너와 결혼한다.
이 때를 기점으로 그녀의 찬란한 미모는 서서히 시들어가기 시작했고 늘 그렇듯, 갈등이 일어나 끝끝내 이혼에 이르고 만다.

존 워너는 현재도, 미국 상원의 유력 정치인으로 활약하고 있다.
* 존 역시, 리즈와 결혼하고 싶어 부인과 이혼을 함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 라는 충격적인 발표와 함께 리즈는 결혼 생활 중 가장 긴 시간을 함께 했던 리차드와도 이혼을 한다. 그리고  두달 뒤 리즈는 상원의원 존 위너와 결혼을 하지만 1년도 되지 않아 이혼을 하고, 다시 75년 리차드 버튼과 재혼했다. 그녀의 인생에 있어 일곱번째 결혼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리즈는 "처음의 선택이 옳았어요. 이제 헤어질 시간입니다." 라는 말을 남긴채 리차드 버튼과 일곱번째 이혼을 감행한다.









여덟번째 결혼 (1991)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고 하네요. 리차드와 다시 이혼을 한 후, 

알콜 중독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리즈..
그녀는 우연히 같은 처지의 트럭운전사 '래리'를 만나 다시 삶의 평안을 얻기 시작했다.

알콜 중독 치료 중, 정신없이 결혼한 그녀....... 그러나 금새 후회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여왕' 이미지를 망치는 것 같았고 살아온 환경이나 여러모로 맞지 않는 래리와의 갈등은 심각했다. 늘 그렇듯 그녀는 다시 이혼한다. 정신없이 결혼한 대가로 그녀는 래리에게 수백만 달러의 위자료를 챙겨줘야했다.

그녀는 91년, 60세의 나이로 노동자인 래리 포텐스키와 여덟번째 결혼을 해 세계를 경악 시키더니 결혼 4년만인 96년 여덟번째 이혼을 해 또 다시 충격에 빠뜨렸다. !!! ;;;

경제지 사이트 ‘포브스 닷 컴’이 2007년에 ‘역대 세계에서 가장 비싼 결혼식을 올린 스타’를 뽑았는데 그 중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건축 노동자인 ‘래리 포텐스키’의 결혼식이 5위에 오를 정도로 호화스러웠다. (200만불 가량의 돈이 소요됐다고 한다.)

그야말로 평생을 결혼과 이혼, 스캔들과 염문으로 장식한 리즈의 인생이었다.






돈도 명예도 모두 부질없는 것.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오스카 상을 두번이나 수상할 정도로 빼어난 재능을 지녔던 희대의 배우였던 동시에 만나는 남자들마다 모두 유혹해내는 희대의 요부였다.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그녀의 외모에 관객들이 열광했듯이 그녀 주위의 남자들은 열광했고 자신의 가정을 버리고, 목숨을 버리는 파멸의 길을 자처하면서까지 그녀 곁에 있고 싶어했다.

이제 74살의 할머니가 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30번의 크고 작은 성형수술과 수면제 과다 복용, 극심한 다이어트 스트레스와 약물중독, 노인성 비만으로 예전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모두 잃어버리고 '뚱뚱한 할머니' 가 되고 말았다. 50여년이 넘도록 헐리우드를 종횡무진 했던 최고의 여배우에게 지금 남겨진 것은 과연 무엇일까.

글쎄....예전부터 바닥을 드러내지 않았던 돈? 오스카 상을 두번이나 수상했다는 명예? 하지만 결혼이라는 것으로 어떻게든 그녀가 완성시키고자 했던 '사랑' 은 남아있지 않으며 평생을 함께 울고 웃을 친구 역시 남아있지 않다. 돈도, 명예도 무에 그리 중요한 일이겠는가.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조용히 말한다.

나는 평생 화려한 보석에 둘러싸여 살아왔어요.
하지만 내가 정말 원하고 갈구하고 열망했던 것들은 이런 보석 따위가 아니었어요.
내가 평생동안 원했던 것은...내가 평생동안 가지고 싶어했던 것은....
누군가의 진실한 사랑과 마음, 변하지 않는 열정. 그것 뿐이었어요.







영국의 선데이 익스프레스가 발표한 ‘전세계 300대 미녀’에 영화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1위로 뽑혔다고 한다. 근년에는 아카데미 시상식 등 특정 행사에나 모습을 비치곤 하는 70이 넘는 그를 두고 요즘 젊은이들이야 “그 뚱뚱한 할머니가 무슨…” 하며 못마땅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왕년의 영화 ‘자이언트’나 ‘젊은이의 양지’,또는 ‘클레오파트라’와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등에서 그가 뽐냈던 찬란한 아름다움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과연!” 하고 무릎을 칠 만하다.

선데이 익스프레스가 구체적으로 무슨 기준을 가지고 미인들을 가려냈는지는 알 수 없으되 테일러가 세계 최고의 미녀로 선정된 것과 관련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다. 테일러야말로 그 누구보다 ‘사진을 잘 받는다‘는, 곧 포토제닉(photogenic)하다는 점이다.

원래 사진이란 게 조명과 앵글에 따라 예쁘게도, 밉게도 나오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여서 알랭 들롱 같은 ‘희대의 미남’이라도 촬영하기에 따라서는 수배 전단에 실린 흉악범처럼 보일 수가 있다.

그러나 테일러에 관한 한 어떤 조명 아래서, 어떤 각도로 찍어도 아름답다는 게 정설. 워낙 바탕이 좋으니 사진도 못 나오려야 못 나올 수가 없다고나 할까.

다만 테일러의 아름다움에도 흠이 있다는 지적은 있다. 옥에도 티가 있듯. ‘이중 턱에 가슴은 딱 벌어졌고 다리는 너무 짧다’는 것. 테일러의 전 남편 리처드 버튼의 불평이다. 그러나 버튼의 이런 험담도 대중에게 비치는 그의 광염(光艶)을 가리지는 못할 듯 싶다. 시종에게는 영웅이 없는 법인 만큼 그 같은 흠쯤이야 테일러와 두 번씩 결혼했던 버튼의 눈에나 보이는 것일 테니까.

이처럼 글자 그대로 ‘세기의 미녀’라는 별칭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테일러지만 오히려 그때문일까. 테일러 하면 ‘미인박명(美人薄命)’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것은. 무려 여덟 번(버튼과의 두 번째 결혼까지 포함하면 아홉 번)이나 결혼한 애정 편력을 볼 때 더욱 그렇다.

물론 옛날처럼 좋건 싫건 무조건 한 사람과 백년해로하는 게 반드시 옳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진정한 사랑과 행복을 찾는 여정이었다고는 해도 배우자를 8명이나 맞아들였다는 사실, 그리고 가수 에디 피셔를 비롯해 그 중 몇 명은 가정을 버리게 함으로써 세찬 비난을 받기도 했다는 사실은 영 씁쓸하다.

그래선가, 테일러에 이어 2위로 뽑혔지만 말년에 유니세프 대사를 맡아 제3세계의 불우한 어린이들을 위해 헌신한 오드리 헵번이 더 아름다운 미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부모와 함께하고 있는 테일러



세월앞에 리즈도 어쩔 수 없이 세기적인 미모로 부터 검버섯 돋고 휠체어를 타는 할머니가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애장품들을 경매에 내 놓고 마지막 생을 정리중이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2006년의 브룩쉴즈와 엘리자베스 테일러






엘리자베스 테일러, 조용히 죽음 준비

’세기의 미녀’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74)가 심장기능이 쇠약해지면서 장례식 절차를 논의하는 등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7일(현지시간) 연예통신 WENN의 보도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최근 심장이 많이 약해지면서 캘리포니아의 벨에어에 있는 자택에 누워서 지내고 있다.

자신의 건강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테일러는 연례적인 부활절 파티도 취소했으며 자신의 장례식 절차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테일러는 사망 후 스위스에 있는 전 남편 리처드 버튼의 묘소 옆에 묻힐 것으로 보인다.

테일러의 한 친구는 “리즈는 하루하루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다. 마음 아픈 일이다. 그녀는 자녀들에게 많은 유산을 남기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모은 대부분의 재산이 에이즈 연구기금으로 쓰이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2006.04.28






출처 :
http://kr.blog.yahoo.com/jh4am/1067
http://blog.daum.net/phb117/8879517
http://blog.empas.com/lovepop2007/23276518
http://blog.daum.net/qkddlffl/13069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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