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시사만화 100년]
‘한 칸’ 만화에 세상을 담고, 시대를 꼬집고
- 고바우 영감·야로씨·나대로 선생·왈순 아지매·…‘펜’보다 강했던 ‘붓’
금권선거에 분노하고 반찬값 걱정하고… 1980년대엔 사전검열 수난 정부 비판했다 백지로… 광주민주화운동 땐 주인공이 계속 누워 등장
- 시사만화의 역사
1909년 대한민보의 양복차림 지팡이 신사가 최초 1950년대 ‘고바우’ ‘왈순’ 등 캐릭터시대 문 열어
1909 년 6월 2일 대한민보 창간호 1면 중앙엔 양복 차림을 하고 지팡이를 든 한 신사의 모습이 실렸다. 그의 입 부분에 연결된 네 개의 줄엔 표어 같은 글귀가 한 개씩 달려있었다.
대국(大局)의 간형(?衡), 한혼(韓魂)의 단결, 민성(民聲)의 기관, 보도(報道)의 이채…. ‘대한민보(大韓民報)’ 네 글자로 사행시를 짓듯이 쓴 것이다. 대국을 똑바로 보고, 민심을 합해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리는 기관이 되며 다양한 편집 태도로 사실 보도를 하겠다는 다짐이다.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시사만화로 꼽히는 이도영 화백의 삽화 내용이다.
이어 일제 탄압과 친일 세력에 대한 풍자적 비판이 가득한 만화들이 하나 둘씩 선보였다. 1920년대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이 창간되면서 신문 만화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특히 1950년대 들어 연재 만화에 캐릭터 주인공들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신문 만화시대’가 열렸다. 언론 탄압이 거세질수록 중산층 캐릭터의 만화 주인공들은 일반인의 삶 속으로 들어왔고, 서민들은 그들과 함께 울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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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일보 김성환 화백의 ‘고바우영감’ (1989년 9월 12일자) / 1909년 대한민보 창간호 1면에 실린 이도영 화백의 삽화./ 1980년 광주민주화 운동 이후, 전두환씨를 기중기와 캐터필러로 묘사한 동아일보의 만평. 정부 검열로 삭제됐다. / 조선만평 (2008년 4월 18일자) /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 사건을 풍자해 논란을 일으켰던 서울신문 백무현 화백의 ‘서울만평’(2007년 4월 18일자)
- 30~40 대 중반인 샐러리맨 ‘고바우 영감’과 함께 금권 선거에 분노했고, 서울의 중산층 가정의 가정부였던 ‘왈순 아지매’와 함께 반찬값 걱정을 했다.
1980년 만화 속 ‘야로씨’가 광주민주화운동에 저항할 수 없는 상황을 풍자하듯, 일주일 이상 누워서 등장했을 때 독자들도 함께 현실을 개탄했다.
1990년대 중반 들어서 신문 만화는 스토리텔링을 강조하는 ‘네 칸’만화에서 ‘조선 만평’이나 ‘서울 만평’ ‘김상택 만평’ 같은 ‘한 칸’ 만화(만평) 시대로 바뀌어왔다.
만 화 한 컷에 ‘세상’을 담아온 한국 시사만화가 2009년 100주년을 맞는다. 지난해 가을 시사만화가들을 중심으로 ‘한국 시사만화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결성됐다.
추진위 측은 “연감 작업을 하고 전시회나 세계 시사만화 대회를 여는 등 ‘한국 시사만화 100주년’을 기리는 축제의 장으로 만들 것”이라고 한다.
이홍우 공동 추진위원장은 “살아있는 권력을 비판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웃음을 주는 시사만화가 더욱 번창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추진위 집행위원장인 손문상 화백(프레시안)은 “신문이라는 영역 안에서 시사만화만의 분명한 역할과 자리가 있는데, 그 자체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이번만큼은 만화계도 보·혁 갈등에서 벗어나 시사만화 그 자체만을 위해 모두가 손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시사만화계는 보수적인 매체에서 활동하는 기성 세대를 주축으로 한 한국시사만화가회와 인터넷 매체 등에서 주로 활동하는 진보성향의 젊은 화백들이 중심이 된 전국시사만화협회로 나뉘어있다.
학계에서는 이번 100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 미군정기, 군사독재 시절이라는 한국만의 독특한 상황 속에서 걸어온 시사만화 역사를 저널리즘 틀 안에서 연구하고 기록하는 작업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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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베스트 작품들
노 전 대통령 겨냥한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 정치권에 회자되자 대통령이 직접 해명 나서
만 화평론가 손상익씨가 쓴 박사 논문 ‘한국 신문시사만화사 연구’에 따르면, 실질적인 네 칸 시사만화의 출발은 1945년 ‘자유 신문’의 ‘혁맹아’라고 한다.
이후에 대중적으로 인기를 모으기 시작한 것은 김성환 화백의 ‘고바우 영감’(동아일보), 김경언 화백의 ‘두꺼비’(경향신문), 김기율 화백의 ‘도토리’(서울신문) 등이다.
대중적 인기를 모은 만화 캐릭터 이름을 본떠 식당이나 가게가 생겨났는가 하면, 주인공 이름을 둘러싼 상표권 분쟁까지 일었다.
영화로까지 제작됐던 ‘왈순 아지매’를 그렸던 정운경 화백은 한 인터뷰에서 “1980년대 초 신촌에서 한 학생이 분신 자살을 기도하며 ‘왈순 아지매 만세!’라고 외쳤다”며 “만화가로서의 책임감을 너무 크게 실감했다”고 했다.
유명한 만화 캐릭터들을 세상에 낳은 화백들은 소속 신문사를 옮기면서도 그 주인공들의 생명력을 이어갔다.
시사만화는 현실 속 정치·경제·사회·문화를 담았고 때론 사회 이슈를 주도해나가는 역할까지 맡았다.
2005년 7월 동아일보 이홍우 화백의 ‘나대로 선생’은 노무현 대통령을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라고 표현했다. 이후 보름 이상 정치권에선 이 표현이 회자됐고 노 대통령이 직접 “나는 경제를 포기한 대통령이 아니다”라고까지 말했다.
2006년 11월 11일 당시 열린우리당이 창당 2주년을 맞았을 때, 서울신문 조기영 화백의 네 칸 만화 ‘대추씨’는 ‘여당의 현주소’를 다뤘다.
“뭐하나도(道) 못이뤘군(郡), 바라보면(面) 답답하리(里)”라고 해 의장이 여섯 번이나 바뀌고 지도부 총사퇴를 두 번이나 겪은 여당 상황을 풍자했다. 당시 여당 지도부의 한 정치인이 이 만화를 언급해 다들 한숨지었다고 전한다.
1990년을 전후로 캐릭터 중심의 네 칸 만화가 줄고, 한 칸 만화라 불리는 만평이 늘어나고 있다. 네 컷 만화는 스토리텔링이 있다는 강점이 있고, 한 컷 만화(만평)는 한 컷이 전하는 메시지가 강하다는 강점이 있다.
조 선일보의 신경무 화백이 그리는 ‘조선만평’은 촌철살인의 한 칸 만화로 알려져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로부터 몇 번이나 소송을 당하기까지 했다.
노무현 대통령을 조폭인 것처럼 표현한 만평이 나간 뒤엔, 노사모가 주축이 돼 만든 ‘국민의 힘’ 회원들이 신문사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하기도 했다.
서울신문의 백무현 화백이 그린 ‘서울만평’은 지난해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사건을 풍자한 만평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총기 난사하는 사람을 표현한 그림을 걸어놓고, 미국 부시 대통령이 “한 방에 33명…이로써 우리의 총기기술의 우수성이 다시 한번”이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당시 독자를 비롯한 네티즌들이 “죽음을 희화화했다”며 비판했고, 외신에까지 보도됐다. 백 화백의 만평은 며칠간 중단됐다가 다시 게재되기 시작했다.
2006 년 한국기자협회가 “우리를 가장 슬프게 한 만평”으로 꼽은 것은 경향신문 김용민 화백의 ‘그림마당’이었다. 속옷만 입은 채 숨져있는 80대 독거노인 김모씨의 사연이었다. 뒷배경으론 ‘자고 나면 수억’ ‘수천만원’ 하면서 집값이 상승하는 아파트촌이 보였다.
80년대 언론통제 시절
작가들 “하루하루 단두대에 올라가는 심정이었다” 검열서 선(線) 하나에도 시비… 정부 비판하면 바로 중단
1980 년대 시사만화가로 활동했던 이들은 “하루하루가 단두대에 올라가는 심정”이었다고 말한다. 그만큼 말 한마디, 표현 하나에 민감하고 언론 탄압이 심했다는 말이다.
동아일보에서 28년간 ‘나대로 선생’을 그렸던 이홍우 화백은 “정권의 온갖 회유와 공갈 협박 때문에 ‘나대로 선생’의 얼굴이 할퀴어졌다”며 “사전 검열에서 7~8번까지 수정한 뒤 겨우 실린 적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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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 조선일보 오룡 화백의 ‘야로씨’(1996년 6월 16일자) 동아일보 이홍우 화백의 ‘나대로 선생’(2005년 7월 9일자) 필화사건을 일으킨 한국일보 안의섭 화백의 ‘두꺼비’(1986년 1월 19일자)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이민규 교수는 “권력에 맞서온 시사 만화의 검열 역사는 언론 통제의 역사 그 자체”라고 말한다.
실제로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만화를 그렸다가 필화(筆禍) 사건을 겪은 경우가 많다. 해당 일자의 만화 부분이 백지 상태로 나가거나 한 컷 만화로 인해 수년간 연재를 중단한 사례도 있었다.
이승만 정권 시절, ‘고바우 영감’의 김성환 화백은 “경무대(지금의 청와대)에 근무하는 사람은 ‘똥을 치는’ 사람도 권력이 있다”는 내용의 만화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1973 년 10월 26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고바우’ 만화는 일부 내용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정보 당국의 압력을 받아 2판에서 만화가 삭제되기도 했다.
김성환 화백은 “글자 한 개, 선 하나에도 시비를 걸어왔고 툭하면 수정을 요구해 심할 때면 하루 네 차례 이상 지우고 다시 그렸다”고 회고한다.
‘두꺼비’의 안의섭 화백은 1986년 건강이 악화됐던 레이건 대통령이 전두환 대통령에게 “대통령 각하, 오래오래 사십쇼! 하는 짓이 마음에 쏙 듭니다. 건강하셔야 합니다. 레이건”이라는 편지를 보낸다는 만화를 그렸다가 수사기관에 연행되고 신문 연재 중단은 물론 가택연금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관련 학자들은 “시사만화에 대해 군사독재시절 식의 통제는 사라졌지만, 정치 권력 아닌 경제 권력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자사 이기주의에 흐르는 경우도 있다”고도 한다.
인터넷만화 뉴스 ‘코카뉴스’의 김진수 편집장은 “독재정권 시대엔 만화를 통해 은밀하게 저항정신을 표현했다면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며 “다만 시사만화가가 자신의 생각을 용기있게 담아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홍우 화백은 “시사만화의 핵심은 ‘살아있는 권력의 비판’과 ‘재미’”라면서 “어느 정부와도 가까울 수 없고, 권력의 핵심 부분을 비판하지 않으면 포스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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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시안에 연재되고 있 ‘손문상의 그림세상’(2008년 4월 28일자)/ 경향신문 김용민 화백의 ‘그림마당’(2006년 12월 5일자)
시사만화의 미래
퓰리처상은 시상 목록에 넣었을 정도로 중시 젊고 참신한 작가들 키우고 지면도 확대해야
‘ 왈순 아지매’의 정운경 화백은 “사설이 쓰지 못하는 기사는 칼럼이 쓰고, 칼럼이 쓰지 못하는 것은 만화에서 다룬다”며 “시사만화는 밥상의 소금과 같은 역할”이라고 말한다.
시사만화가들을 비롯한 만화 평론가, 관련 전문가들 모두 이 같은 시사만화가 르네상스를 맞이하길 바란다.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이민규 교수는 “외국에선 퓰리처상 부문에 시사만화 부문을 둘 정도로 중시되고, 동영상 스틸 화면과 플래시 영상을 쓴 시사만화 덕분에 인지도를 높이는 뉴스데이 같은 매체도 있다”고 했다.
서 울신문의 백무현 화백은 “시사만화계가 정규화되지 않은 과거 방식을 따르다보니 새로운 젊은 피가 수혈되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깝다”며 “젊고 참신한 작가들이 발굴돼 적극 활동할 수 있는 지면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했다.
이민규 교수도 “외국에서처럼 유명 화백들이 신디케이션 형태로 문하생을 키우고 자신이 수십 년간 키워온 만화 브랜드의 생명력을 이어가면 좋겠다”며 “격조있는 만화의 대중화를 위한 사회적 인프라 마련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 황성혜 기자 coby072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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