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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ey

사진에 담아낸 특별한 아프리카 여정의 시

사진에 담아낸 특별한 아프리카 여정의 시


벨기에 출신의 사진작가 세바스찬 슈티제. 그는 모두 3번에 걸쳐 1년여동안 아프리카 여행을 떠났다.


첫 번째 여행은 100일 동안 자전거를 타고 떠난 말리의 초상 여행이었고, 이듬해에는 말리의 흙집산원을, 그다음해에는 달의 산맥을 찾아 떠난 여행이었다. 대형 카메라와 삼각대를 자전거에 싣고 떠돌이 사진가가 되어 떠난 아프리카 여행. 그 특별한 여정의 시가 여기 담겨 있다.


출발 그리고 귀향

여행은 이미 내 몸을 흐르는 피 속에 들어 있다. 두 살의 나이, 나의 부모님이 아프리카에 살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나는 그곳에 속해 끊임없이 움직이고자 하는 욕망과 함께 성장해왔다. 콩고에 있을 때 나는 늘 벨기에에 계신 할머니를 그리워했고, 벨기에에 머물 때는 늘 콩고의 정글을 꿈꿨었다.

적도의 붉은 흙과 정원의 도마뱀들. 벨기에로 다시 돌아온 후 그 먼 땅으로부터 나를 갈라놓을 만한 긴 해들이 흘러갔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그 대륙을 잊은 적이 없다. 아프리카에서 한 소년을 데려올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한 소년으로부터 아프리카를 떼어놓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벨기에의 한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던 나는 브뤼셀 공항과 인터내셔널 열차에서 용돈을 벌기 위해 일을한 적이 있다. 이륙을 앞둔 비행기의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는 마치 여행자를 아름다운 노래로 유혹하는 인어의 노래처럼 나를 불러댔다. 그 소리에 맞서 귀머거리가 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떠나야 할 순간이 드디어 찾아왔다.

자전거 한 대와 카메라 한 대, 그리고 삼각대와 함께 어느새 나는 말리 북쪽 니제르 강가 팀북투에 배를 띄우고 있었다.



아프리카의 초상

사진에서 아프리카는 이제 너무 흔한 소재가 되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느껴지는 힘과 경이로운 자연의 아름다움은 많은 사진작가들의 단골 소재가 되었고, 동시에 가난하고 비극적인 아프리카인들의 모습들도 사진 속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사진작가들은 가난과 질병에 찌든 인간의 비극적인 내면을 사진을 통해 내비치는 데 그치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어릴 적부터 알고 있는 아프리카에는 뭔가 다른 이미지가 존재한다. 그것은 매우 개인적이면서도 섬세한 감정이 젖어 있는 이미지라고 할까. 나는 그것을 아프리카인들에게 나타내고자 했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개인 스토리를 담은 사진을 찍으면서 나는 흔히 사진에서 보이던 아프리카의 스테레오 타입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했다. 상투적인 것을 찾는 것이 아닌 진실한 초상을 찾으면서 말이다.

100여일 동안 나는 말리 내부를 자전거로 샅샅이 훑었다. 모래와 선인장들이 초라한 나의 길동무가 되어주었고, 태양은 내 그림자를 움직이는 안무가였다. 여기에 저녁마다 여관집 주인장으로부터 커다란 우유 사발 또는 밤바라 농부가 손수 지은 쌀밥이 나를 기다리기도 했다. 가시밭길 같은 나의 긴 여정에서 사람들은 아무 거리낌없이 나를 재워주고 내게 깊은 휴머니티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프리카에서의 밤들을 계속 진행할 마음과 용기를 가득 채워주었다.

사람들의 초상을 담았던 아프리카 사진가 세이두 케이타처럼 나는 마을과 마을을 여행하면서 초상화들을 하나하나 만들어 이어나갔다. 그리고 나는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존재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말리의 아름다운 흙집 이슬람 사원들이었다.



말리의 흙집 이슬람 사원들

이 미 중세시대부터 사람들은 말리와 이웃 나라에 흙으로 이슬람 사원을 짓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을 견뎌내는 현대 건축 양식과 새로운 재료들은 이 전통적인 방식의 건축에 커다란 협박과도 같았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건축은 항상 새롭고 놀랍게 변화하는 살아 있는 건축이다. 그것은 마치 한 단어가 구술 문화에서 세기를 거치면서 중요한 요소들이 서로 조합되거나 간직되어 변형되는 것과도 흡사하다.

마을에 있는 수천 개의 작은 흙집 사원들은 이 친환경 건축의 한 기둥을 형성한다. 그러나 너무나도 흔히, 이들은 시멘트나 구불구불한 암석으로 대체되거나 모양이 왜곡되기도 한다. 이번엔 자전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니제르 강 내부 삼각주의 미로 같은 늪지대를 알게 되고부터 나는 최적의 이동 수단은 물 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트 리부 보조의 두 어부들과 흥정을 하여 나는 나의 외부용 모터를 주기로 하고, 대신 작은 돛단배인 피나스Pinasse를 하나 얻었다. 7개월 동안 그들과 함께 이동하며 오래된 흙집 사원들을 찾아 1000개가 넘는 마을을 지났는데, 거대한 데보Debo 호숫가에서 가장 얇은 강줄기에까지 도달했다.

말리의 흙집 이슬람 사원에 관한 나의 사진 작업은 이름 없는 이 건축물들의 위대한 미에 대한 경배와 찬양이다. 커다란 흑백의 사진은 이 건물 형태의 유니크함과 조화로움의 가치를 더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미에 대한 시각을 넘어 이 작업은 한 시각이 스치고 간 흔적들과의 대화를 담은 작품들이기도 하다.

사라진 옛 사원들이 새로운 건축으로 탈바꿈하면서 아프리카의 나이 든 세대들은 서양의 세계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는 새로운 세대들에게 자신들의 비밀을 전수해야 했다.




달의 꽃

말리에서 몇 년에 걸친 작업 이후 나는 진정시킬 수 없는 열기와 매정함, 흙먼지들의 자국을 조절해야 했다. 나의 내면으로부터 풍경의 변화를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아프리카의 더위와 가장 반대되는 곳으로 가야 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 덥지 않은 환경이 과연 존재한단 말인가? 해답은 전혀 예상치 않은 곳, 바로 적도 위에서 찾을 수 있었다.

아프리카의 심장부를 가로지르는, 우간다와 콩고의 국경 지대에 위치한 달의 산맥, 오늘날은 르웬조리 산맥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BC 150년경 그리스의 프톨레마에우스Ptolemaeus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말이 라틴어로 변형되어 루나에 몬테스Lunae Montes, 달의 산맥이라는 뜻으로 발전되었는데 이 산 위에 달이 뜨면 정상에 쌓인 새하얀 눈이 달빛을 아름답게 반사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또한 이 눈은 나일 강의 가장 높은 원천이기도 하다. 산의 정상을 감싸 안은 안개와 구름의 장막은 험준하고 높은 산 정상에 신비로움의 향수를 뿌리는 듯하다.



원시림의 이 장식에서 세네시오 제앙트Senecio Geant(유난히 큰 식물 뒤에 제앙트, ‘거대한’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 붙는다), 로벨리아 제앙트Lobelia Geant 등의 식물들이 매우 거대하고 색다르게 자라나 ‘그로 지비에 보태니크Gros Gibier Botanique’ 즉 ‘거대한 짐승’이라는 별명 또한 가지고 있다. 르웬조리 산맥은 식물학자가 선호하는 땅 그 이상이다.

어떤 무감각한 사람은 신비롭고 아름다운 자연의 이 섭리를 무시한 채 그 위에 무작정 침투하려 들지도 모른다. 이 아프로알핀 식물의 이상야릇한 아름다움에 반해 나는 다르게 발견한 아프리카를 흑백사진 속에 또다시 담고 싶어졌다. 적외선 카메라 촬영은 이 풍경들의 원초적이고 색다른 아름다움을 창조했다.

적외선 카메라는 푸른색을 유난히 하얗게 보이도록 만든다. 가끔 현실과는 달라 보이는 효과를 창출하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 사진이 상상의 세계에 대한 것은 결코 아니다. 이 달의 꽃들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숲의 파괴와 온난화가 지구를 강하게 위협하고 있음을 느끼게 하고 무언가를 행동으로 취하도록 돕는 것이 이 작품의 큰 주제이기도 하다. 우리의 집, 우리의 하나밖에 없는 안식처를 위해서 말이다.


 ▶출처 : [마이프라이데이] 기사 본문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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