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yler's Story


아래 글을 보고 몇자 적어올려봅니다. ('6.25 전쟁 관련 이상한점들... 장병의 절반이 휴가나 외출...' 이 글에 대한 답글이다)
(무기에 관련된것이 아니므로 오늘 자정에 삭제하겠습니다.)


당시 한국전쟁 직전에 대규모의 광범위한 숙군 작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디나 그렇겠지만 그것(여기서는 5열이라고 부르죠)이 완전히 제거되었는가에 대해서, 역사가들은 "글쎄..."라는 회의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전쟁 직전의 기록들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리 만큼 문제가 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몇가지 점을 살펴 보겠습니다.

1. 이승만은 1950.5.11 외신기자와의 주례회견에서 5,6월이 "위기"라고 연설하였습니다.
심지어 그는 그 다음날 국내기자단과의 회견에서 북한이 내려오건 말건, 우리는 충분한 군사적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2. 같은시기, 국방장관 겸 국무총리서리 신성모 역시 회견에서 "승리는 우리의 것"이라는 내용으로 주절거렸으나
또 한편으로는 북한군이 현재 대규모의 모병은 물론, 한만 지역의 병력을 38선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경계심을 드러냈습니다.
즉, 그는 북한군이 남칭을 하기 위한 핵심사항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그는 5월17일 기자와의 담화에서 5,6월 위기설을 재차 이야기 하였으며 이 두달이 한국만이 아닌 세계적으로도 위험한 달이라는 점을 설명하였습니다.

3. 또한 그 이전 1950년1월, 육군참모총장 역시 북한의 침략은 단지 시간문제로 보여진다고 유엔한위에 보고하였으며,
급기야 6월8일, 신성모는 직설적으로 현재 긴박한 상태에 대비, 국가 총동원령을 고려중이라는(회견은 6월8일 신문에는 6월10일 나갔음) 언급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따라서 분명 최고 지휘부의 경각심은 "확실하게 인지"되고 있는 상황이었으며, 나아가 "북한의 움직임도 어느 정도는 명백하게 확인하고 있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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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런 경각심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전쟁 직전의 상황은 오히려 적을 불러들이고자 하는, 그런 묘한 상황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물론 고의가 아니라고, 오열의 존재가 없었다고 믿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나 실수가 광범위 했고, 또한 컸습니다.

1. 6월10일, 후방은 물론 전방 사단장급 지휘관의 전면적 이동이 있었습니다. 또한 육본내 참모들도 전면적인 변경이 있었습니다.
혹자는 전면전을 대비한 인사이동이라고도 하지만, 상기와 같은 언급이 최상위 권력층에서 나오고 있는데 건군이래 최대의 인사이동을 한다는것은 이해할수 없는 일입니다.
따라서 한국군의 지휘관들은 임지에 부임해서도 자기 부대의 상황도 파악하지 못한채 전쟁을 맞이해야 했으며,
육본 참모들 역시 자기 임무 파악을 하지 못한채 전쟁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육본 인사국장에 임명된 신상철도 전쟁 발발까지 부임조차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최악이었습니다.

2. 뿐만 아니라 부대 자체의 이동이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전방에 배치된 사단내 최전방 경비연대와 후방의 연대 사이에 부대 교대가 이뤄졌는데 이때가 6월10일을 전후한 시점이었습니다.
물론 6월11일 비상경계태세에 들어갔다고 하지만, 부대 이동후 전투준비/지형숙달등을 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 주어진 셈입니다.

3. 안그래도 장비와 무기부족에 시달리고 있던 한국군에게 더 최악의 상황이 하나 더해졌는데,
그것은 바로 수리를 명목으로 전쟁 발발 수주전부터 부대의 장비를 부평의 병기창으로 보내어 정비를 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만성적인 장비/무기 적자에 시달리던 한국군은 그나마 보유하고 있던 장비/무기의 1/3을 정비창에 보낸채 전투를 시작해야 했습니다.

4. 6월22일, 6월11일부터 내려져있던 비상경계를 6월23일 24시를 기해 해제했습니다.
명목은 농번기 휴가였습니다만, 그간 지속된 비상경계로 인한 휴가/외출을 못한 장병들이 대규모 외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기존에 몇차례에 걸친 대기태세와 경계태세, 그리고 비상경계태세에서 기대하던(?) 대규모 충돌이 없었던지라 장병들은 "양치기 소년"를 생각하며 한껏 유흥에 빠져들었습니다.

(4.17~5.3 : 대기태세 / 4.29~5.2 : 경계태세 / 5.9~5.27 :대기태세 / 5.27~6.2 경계태세 / 6.11~6.23 비상경계태세)

즉, 지난 80여일간의 기간중에 무려 50일 이상을 대기/경계태세로 근무섰던지라 피로도가 상당했고, 그에 따른 이완도 더 클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5. 군 수뇌부 역시 6.24일이 피크였습니다.
6.24일 저녁, 육군회관 낙성식이 열려 전후방부대 많은 지휘관이 참석하여 만취상태로 귀가하였고,
심지어 일부 지휘관은 본대에 복귀하지 못한채 서울에서 취침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2차, 3차를 마시다보니.... -_-)
그리고 술도 덜깬 상태에서 전쟁을 맞이한것이죠. 뿐만아니라 강릉 8사단같이 먼곳조차도, 24일 검열을 받고는 검열단과 주연후 여관에서 취침중 전쟁을 맞이했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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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두고 육사 8기생들은 단체 회고록에서 (당시 이들은 육사 출신중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냈음)

"각 분야별로 일사분란하게 진행되었던 전투력 약화작업은 북괴남침 직전까지 끝냈다."
"당시 이와 같은 이적행위가 우연의 일치라고 볼수 없었으며, 군수뇌부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북괴간첩 침투의 의혹을 느끼게 한다" 고 기술,
신성모와 채병덕을 거의 공개적으로 간첩에 가깝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든 아니든, 이와 비슷한 증언이 상당수 나오고 있는데,
이를테면 채병덕 본인은 어떨지 몰라도 그의 주변에 있던 신치호 대위가 간첩이었다던지와 같은, 그런 생각을 가진 자도 있었고,
나아가 남한내 방첩대에서 조차도 이중간첩이 있지 않았나 하는 g-2의 보고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미 극동사령브 정보부대 소속 박승무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서울에 침투했다가 사로잡혀 북한 내무서에 끌려갔는데, 그곳의 내무서장이 바로 자신이 정보수집을 위해 북한에 수차례 파견했던 추천 미군부대원이었다던지, 7사단 공병대대 3중대 부중대장이었던 최종성은 공병대대장 최정훈 소령의 결혼식에 나갔는데 그 시간이 기이하게도 오전 9시였으며, 그가 바로 각종 6.25당일 각종 장애물을 제거하게 명령해서 이상하게 생각했다던지, 이와 같은 증언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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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우리는 굳이 한국군의 무능에 대해서는 더 말할것도 없겠지만,
나아가 제5열, 그것이 북한을 지지하는 좌익들의 행동이었건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을 노린 단체의 행위었건 간에,
확실히 당시 남한군을 약화시키고 뒤흔들, 그런 일련의 행위들이 조직적이고 고의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하고 의심할수 있겠습니다.



출처 : http://bemil.chosun.com/nbrd/bbs/view.html?b_bbs_id=10040&pn=1&num=63416

이 글을 하루만에 삭제한다고 해서 내 블로그에 옮겨 놓았다. (글쓴이 : sskkk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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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이 글에 대한 댓글들이다.


○. 단순히 우리군의 무능만을 질타했었는데 이면이 숨어 있었네요. 일견 소름이 돋습니다.

○.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현재도 그때 정도의 위험이 우리내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 한미 양국군도 북한에 klo를 파견하여 북한의 정보를 캐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쪽의 제5열을 양성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저쪽은 공세의 입장이고, 의외로 상당히 비밀엄수가 강한편이어서 일개 병사/장교들은 남침 직전까지 실제 남침이라고 인지를 못했었습니다.
즉, 정치적으로 보면 제5열을 키우는데 있어서 남측이 완패한것은 사실이라고 봐야겠지요.

○. 재밌는것은 미국과 한국의 움직임입니다.
북한의 첩보를 토대로, '육본작전명령 38호- 육군방어계획' 이라던지 (이것은 채병덕 시절이 아니라 신태영이 육군 총참모장대리를 맡고 있던 때에 작성된 방어명령계획입니다. 내용은 북한이 공격하면 후퇴후 반격한다는게 요지인데, 1,7,6,8사단 및 17연대는 각각 해당된 지역별로 방어구역을 배당받고 있었고 2,3,5사단은 예비사단으로써 전방사단을 지원할 증원부대로써의 방침이 있었습니다. 물론 계획이 있다는것과 실제로 준비되었느냐는 별개의 문제가 되겠지만...) 이런게 전쟁나기 직전에 만들어졌었죠.

또한 미군 역시 멍청하게 있지는 않았습니다. 모든 상정 가능한 계획에 대해 국방성은 6월19일 sl-17로 알려진 계획을 승인하여 배포했습니다.
이것은 부산교두보까지 후퇴하여 인천에서 상륙한다는 내용으로써, 구체적인 지침까지는 담고 있지 않았으나 적어도 사전대비계획(contingency plan)의 레벨은 되었죠.

그러나 이것을 음모론적으로 해석한다면(미군의 남침유도설) 그것은 심각한 오버구요, 이에 대해 흐루시초프의 유명한 명언이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당시 히틀러가 우리를 침공하리란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물어본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기습을 당한 것인지 아니면 사전에 무엇인가를 알고 있었는지 어느쪽인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물음에 대해 흐루시초프는 이렇게 대답했죠.

"두 견해 모두 맞다." 라고....
"우리가 독일의 공격을 예견하지 못했다고 말하는것은 한마디로 어리석은 이야기"
"조금이라도 정치적 감각을 지닌 사람이라면 우리가 완전히 속았다는 식의 생각, 즉 기습을 당했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
"그 구실이야 어떻든 선제공격을 하는 쪽에서 볼때 압도적인 군사적 우세에 대한 확신이야 말로 침공에 대한 진정한 근거를 제공한다."
"히틀러는 바로 그런 종류의 확신을 갖고 있었고.... 단지 침략에 필요한 여건을 창출하기만 하면 되었다."

즉, 한-미가 북한의 남침에 대해 완전히 무지했다는 가설은 성립할수가 없습니다.
단지 완전히 예상하여 준비하고 있던것이 아니라는 사실만을 확언할수 있을뿐이죠.

그러나 김일성 입장에서는, 그는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전쟁의 여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며, 최후의 선택권, 즉 버튼을 누르는것은 그만의 몫이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국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자신이 지켜줘야만 하는가, 그 희생을 감내한 대가를 어떻게 받아들일것인가에 대해 확신이 없었고, 한국은 그 스스로가 아예 약소국가로써 북한에 대항하기에는 역부족이었기에 전쟁의 버튼을 누를수가 없었거든요. 단지 이것이 인류 역사에서 반복되는 전쟁에서 "기습"이라는 명칭이 가지는 한가지 "방법론"과 "정치적 이해"가 된다는 점은 확실하겠지만 말입니다...

○. 무기방하고는 발제가 어울리지 않습니다

○. 뭐 한국전시에 직전에 일어난 인사이동, 부대이동, 무기/장비 정비의 움직임등에 언급하고 있으니 솔직히 무기방에 꼭 어울리지 않는 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만, 밑에 kifv2님이 궁금해하시길래 좀 더 큰 틀에서 보면 단순히 왜 1/3이나 외박을 나간건가 하는 의문을 넘어, 좀 더 크게 보면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의견들이 있다... 라는 단순 역사적 팩트+주장에 불과하므로 위에 언급한대로 자정에 삭제토록하겠습니다.

p.s : 이런것도 이슈방 행이어야 하나요?
타국의 전사에서 무기운용이나 인력운용은 언급해도 되고, 우리의 아픈 역사에서 일어난 인력/장비/무기 운용에 관한 여러 주장중 한가지 주장인데...
(이건 이슈라고 하기가 좀 그렇지 않나요? -_-)

하긴, 최신 무기도 아니고, 잘못하면 좌-우 싸움으로 변질되니 우리 한국전사는 언급하지 않는게 나을지도 모르겠군요.
아니면 자사방에 올릴 블로그같은거 만들 열성이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책이랑 자료는 모아도 그걸 디지탈화해서 알리는건 이상하게 열성이 생기지 않아서...
이건 제 탓이라고 해야하는걸지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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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 헤라르도 2013.10.23 05:49

    채븅딱은 그냥 멍청이일 뿐이고 진짜 간첩이라면 신성모 이 새끼가 모든 화의 근원임. 신성모 이 병신같은 자식이 저지른 짓거리들을 보면 참...

    전쟁이 난 직후에도 한강철교를 무리하게 끊어쳐먹고 그걸 또 지가 잘못한것 면피용으로 자신의 명령을 이행했을 뿐인 공병감 최창식 대령을 총살시키고 입닦아버림.

    아무리 어떤 방향으로 생각해봐도 "매국노"라는 단어는 신성모를 부르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임에는 틀림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