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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Music

대중음악의 역사




우리민족은 반도국가라는 지리적인 특성때문에 옛부터 외세의 침략을 받으며 시련을 겪어왔다.
하지만 워낙 풍류를 좋아하는 민족적인 바탕 때문에 그렇게도 모질고 험한 역사속에서도
우리민족만의 여유와 찬란한 문화를 남길 수 있었던것은 아닐까.

흑인 영가가 그렇고 샹송이 그렇듯이 우리의 흘러간 노래들을 보면
각각의 시대 배경과 거기에 따른 민족의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알 수가 있다.
시대별로 구한말에서부터 현재까지 시대적 배경과 히트곡을 알아 보자.




구한말에 히트한 곡

채규엽 = 희망가
작자 미상 = 희망의 나라로



<참고>

구 대한제국의 애국가 (1902)

상제 우리 황제를 도우소서
만수무강하사
큰수명의 수를 산같이 쌓으서소
위엄과 권세를 천하에 떨치사
오천만세에 무궁케하소서
상제 우리 황제를 도우소서


아이러니컬 하게도 대한제국 국가와 기미가요의 작곡가가 같습니다..
서양 관현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던 극동아시아의 두나라 대한제국과 일본은 프로이센에서 작곡자를 초청해서 작곡을 했는데 그자가 프로이센 해군 출신 프란츠 에케르트 입니다.
(기미가요=1880년 이후 /대한제국 국가=1902년)


구 대한제국의 두 황제
고종(광무제), 순종(융희제)












구 대한제국 애국가

반주

KBS 관현악단 (김만복 지휘)





1920년 ~1945년

이 시기는 시대적인 배경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 민족들의 힘겨운 삶과 절규하는 고통을 느낄수가 있을것입니다.

1925년에 윤심덕이 부른 사의찬미

1927년에 이애리수가 부른 황성옛터

등은 당시 민족들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대표적인 곡들로서 곡조나 가사가 애절하기 그지 없읍니다.
당시 대표적인 가수로는 백난아.백년설.황금심.고복수.김정구.이난영 등이 있읍니다.

1934년-이난영=목포의 눈물

1935년-황금심=알뜰한 당신. 김정구=눈물젖은 두만강
1936년-남인수=애수의 소야곡. 김영춘=홍도야 우지마라
1938년-백년설=번지없는 주막. 진방남=불효자는 웁니다
1939년-백년설=나그네설움
1940년-백난아=찔레꽃
1941년-고운봉=선창






'이바노비치'가 작곡한 '다뉴브강의 잔물결'에
김우진이 가사를 붙이고 윤심덕이 부른 최초의 번안가요





이난영은 60년대 활동한 김시스터스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1945년~1954년

이 시기 사이의 노래들을 보면 45년 해방의 기쁨과 미.소의 신탁통치와 함께 그어진 3,8선 그리고 6,25전쟁 등으로 매우 혼란하고 힘없는 민초들의 넋두리들로 가득합니다.

대표곡

1946년-남인수=가거라 삼팔선

1947년-현인=신라의 달밤
1948년-현인=비내리는 고모령
1950년-신세영=전선야곡
1951년-현인=전우야 잘자라
1953년-현인=굳세어라 금순아. 남인수=이별의 부산 정거장
1954년-남인수=청춘고백

이 10년 동안은 가수로는 현인 .남인수 등이 사랑을 받았으며
대표적인 작사가로는 수많은 사연들을 가사로 엮은 박시춘을 꼽을 수 있읍니다.












1955년~1964년

이 10년은 정권의 휴전 등으로 조금은 안정되는 듯하면서 힘겨운 기간이었읍니다. 50년대 말까지는 54년 이전까지의 노래들처럼 음울한 단조곡과 시대적 배경을 담은 가사들이지만 60년으로 접어들면서 좀더 희망차고 역사적인 시름에서 벗어난 가사는 물론 소위 뽕짝이라는 트로트 음악에도 상당히 변화된 리듬이 도입되고 있음을 알수 있읍니다

대표곡

1956년-이해연=단장의 미아리고개. 안정애=대전부루스. 손인호=비내리는 호남선

1957년-권혜경=산장의 여인
1958년-나애심=과거를 묻지마세요
1961년-한명숙=노란샤쓰의 사나이 (이당시 나라가 어지러울때였고 가요계가 불황이었지만 모처럼만에 밝은노래가 나와 그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었읍니다)
1963년-최회준=맨발의 청춘(신성일.엄행란 주연의 영화주제곡입니다)
1964년-이미자=동백아가씨(이노래는 60년대 최고의 히트곡이었읍니다. 당시 일본 어느 노래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한때 금지곡도 된 노래입니다)

1960년대 초부터 1964년도까지 대표적인 가수로는
이미자.최회준.남일해.한명숙.현미 등을 들수있읍니다








1965~1969년
트로트의 황금기

이 시대의 애창곡들은 지금도 중년에서 청년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게 애창되고 있는 곡들이 바로 이시대라고해도 과언이 아닐껍니다.

대표곡

1965년-박재란=산넘어 남촌에는

1966년-최회준-하숙생. 박일남=갈대의 순정
1967년-남진=가슴아프게. 정훈희=안개. 배호=돌아가는 삼각지
1968년-김세레나=갑돌이와 갑순이
1969년-나훈아=사랑은 눈물의씨앗. 패태김=서울의찬가

이상위의 곡들이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남진.나훈아의 라이벌시대의 시작이라고도 하는 시기입니다

대표가수-이미자.남진.나훈아.패티김.정훈희.김상희.배호.최회준








1970년~1975년
포크송과 트로트의 혼성기

1970년대에는 포크송이라는 거대한 붐에서 트로트가 약간은 위축되었으나 그래도 트로트는 여전히 이시대에까지만 하더라도 인기는 있었읍니다. 포크송이란 젊은층을 중심으로 지적인 가사와 통기타의 편안한 리듬으로 가요팬을 단숨에 사로 잡았읍니다.


포크송 대표곡

1971년-라나에로스포=사랑해. 은희=꽃반지끼고. 김추자=님은 먼곳에. 양희은=아침이슬

1972년-이연실=새색씨 시집가네
1973년-김세환=토요일밤에
1974년-어니언스=편지
1975년-송창식=왜불러. 박인희=모닥불


트로트 대표곡

1970년-이미자=아씨

1971년-하춘화=물새한마리
1972년-남진=님과함께. 김부자=달타령. 나훈아=물레방아 도는데

남진.나훈아 라이벌의 최고의 전성기 시대이기도하죠







1976년~1979년
새로운 록그룹이 대거 등장하였으며 그룹활동을 하다가 솔로로 데뷔해서 성공한 가수가 많이 있읍니다. 대표적인 케이스로는 조용필도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이라는 그룹이었고 최헌 윤수일도 그룹에서 솔로로 데뷔해서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이시기는 고고풍이나 디스코풍 노래들이 인기를 끌었으며 지금으로 생각하면 트로트풍 분위기가 풍기는 노래이지만 그때당시만 하더라도 60년대의 트로트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변화된 트로풍이라고 하면 됩니다.

그리고 이시기에 대학가요제가 1977년도에 시작했으며 그뒤를 이어 해변가요제, 젊은이의 가요제, 강변가요제 등이 이어져 많은 그룹사운드를 탄생시켰으며 대학생들의 가수로서의 활동을 시작한 시기라 할수 있읍니다

대표곡

1976년-조용필=돌아와요 부산항에 (1970년도 최고의 히트곡이며 그때 당시 조용필이 대마초 사건등으로 가요대상에서는 제외되었으나 많은 사랑을 받은것은 분명합니다)
1976년-송대관=해뜰날
1977년-혜은이=당신만을 사랑해. 최헌=오동잎
1978년-윤수일=사랑만은 않겠어요. 이은하=밤차
1979년-심수봉=그때그사람. (이노래는 대학가요제 노래이지만 입상은 못하였으나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조경수=행복이란







1980년~1989년
조용필의 최고의 전성기

이 당시는 트로트보다는 젊은층 노래 위주가 많이 히트되어 나이 많으신 분들은 들을 노래가 없다는 평도 이때 등장했읍니다. 그래서 조용필이 나이드신 분들을 위해 힘이 되어 주었던 것도 있읍니다.

1980년-조용필=창밖의여자 (80년대 최고의 히트곡이죠. 이노래로 조용필의 인기가 급상승하여 80년대는 조용필 이상으로 버금가는 가수는 없었읍니다. 그해에 단발머리 잊혀진사랑 등이 잇따라 히트했으며 그뒤를 이어 많은히트곡을 남겼죠)
1981년-고추잠자리.미워 미워 미워
1982년-못찾겠다 꾀꼬리
1982년에는 이용이란 가수가 나타나 잊혀진 계절이라는 노래로 조용필의 버금가는 히트를 해서 인기를끌었읍니다.

조용필의 이어서 인기를 끌었던 가수로는
1982년-이용=잊혀진계절
1983년-윤수일=아파트
1984년-이선희=J에게(강변가요제 대상곡)
1985년-김범룡=바람 바람 바람
1987년-전영록=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 이문세-사랑이 지나가면






이선희 불후의 명곡





1988년~1991년
젊은층가요와 성인층 가요의 분리변환기

가요계가 그동안 젊은층위주의 노래가 많은 관계로 성인층 노래가 위축되었던것은 사실이나 이때 트로트가 새롭게 등장해 많은 중년층으로부터 사랑을 받아오기 시작했읍니다. 새롭게 변화된 리듬의 트로트, 그때 당시로는 전통가요라고 불리었고 지금으로서는 성인가요라고도 합니다.


1988년 가요톱텐 연말결산 (일본 NHK에서 1989년 1월 1일 방송)


이때 새롭게 등장한 트로트로는

1988년-주현미=신사동그사람 (1985년 쌍쌍파티 데뷔곡. 비내리는 영동교로 인기를 끌어온 주현미는 목소리가 좋기로 소문났읍니다.)
1989년-현철=봉선화연정(현철은 1983년 사랑은 나비인가봐로도 유명함)
1990년-태진아=옥경이. 김정수=당신
이어 김지애.나훈아등을 들수 있읍니다


그리고 젊은층 가수로서는

1989년-김흥국=호랑나비

1990년-변진섭=희망사항
1991년-노사연=만남










김신덕



하늘에 별을 따서 목에다 걸고
달빛을 안아다가 얼굴 비추니
그 미소 더욱 더 사랑스럽고
사랑은 가슴에 불을 피우네

마음의 문을 열고 그대를 보니
사랑이 살며시 내곁에 있네
사랑을 마주한 얼굴과 얼굴
무한한 행복이 안기어 오네

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
아아 아아 아아아아

그대가 가는 길에 내마음 가고
내마음 따라오는 그대의 사랑
외로워 슬플 땐 나의 손길이
그 아픈 자리를 어루만지리







1992년~2003년 지금까지
가요계의 최대 변환기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으로 가요계는 신선한충격을 주었읍니다.

'난 알아요라'는 노래로 그당시 최고의 히트곡 일명 랩(랩이라고하는것은 일명 말하듯이 즉 이야기하듯이 하는 노래임)이라고하는 풍의 노래로 대중들한테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그 뒤를 이어 이러한 풍의 노래가 생겨나와 지금까지도 이어 오고 있읍니다

1992년도에서부터 1997년도까지는 주로 이러한 랩풍의 인기가 많았으며 주로 빠른 노래와 남자가수들의 인기가 아주 사랑을 많이 받을때 였다. 주로 그룹들이 인기를 끌었으며 여자가수로는 거의 성공을 못하는 시기이기도 했지요. 이에 못지 않게 발라드도 사랑을 받았는데 대표적인 가수는 1992년-신승훈의 '보이지 않는사랑'이 최고의 인기를 누리었죠. 이에 못지않게 1993년에는 트로트도 질 수 없다는 듯 김수희의 애모도 인기를 누리게 되었죠.


대표곡

1992년-서태지와 아이들=난알아요. 신승훈=보이지 않는사랑
1993년-서태지와 아이들=하여가. 김수희=애모
1994년-김건모=핑계
1995년-김건모=잘못된 만남. 룰라=날개잃은천사
1996년-클론=쿵따리 샤바라
1997년-H O T=행복

1997년도부터는 여성가수들도 활동을 하는 시기로서 대표적인 선두주자는 S E S 입니다

그뒤를 이어 핑클이 인기를 누리었고 많은 솔로 여성 가수들도 생겨나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읍니다.

1997년부터 지금까지 발라드 댄스 트로트 랩 등 다양한 노래들이 선을 보이며 많은 발전을 해왔읍니다

1998년-김종환=사랑을위하여

1999년-조성모=슬픈영혼식
2000년-지 오 디=거짓말
2001년-지 오 디=길
2002년-보아=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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