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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구한말

구한말 옛서울 한양


(흥인지문)동대문  


동대문(흥인지문)안 전차길
동대문은 다른문과 달리 옹벽이 이중으로 되어 있다.
현재의 동대문은 1869년 (고종6년)에 재건된것이다.



영등포 1932년


영등포 중심가에는 일본인이 경영하는 자전차 상회가 밀집되어 있어 지금의 전자상가 처럼 번창했었다.


도성 전경 1890년


중앙에 보이는 누각은 남대문이다,
왼쪽으로 무악재가 이어지고 성곽은 남산으로 연결되어 있다,
당시옛서울 시가지를 볼 수 있는 자료다. (독일 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근대 서울 전경(1926)


북악산 밑에 중앙청 건물이 보인다,
일제는 1916년 경복궁앞에 한반도를 통치하는 총본산으로서 조선총독부 청사를 짓기 시작하여
10년 만인, 1926년에 완공하였다.
이사진은 중앙청(현 국립박물관)이 완공된직후에 남산 위에서 촬영한 것이다.


경복궁 근정전


경복궁은 국왕의 즉위식 또는 조하를 받던곳이다,
1394년에 경복궁공사를 시작하여 이듬해 완공했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타 1865년에 대원군이 다시 복원했다.


청량리 1932년


당시 이곳은 일본인 상가 들이 많이있고 전차도 복선화되어 운영되었다.


한강 철교


1900년 7월에 한강철교가 준공됨으로서 경인선이 완전히 개통되었다.
사진 우측에 보면 마무리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1907년 종로 네거리


칼을찬 순검이 죄인을 감시하고 있고 오른편 이발소 간판 밑에 가로등이 보인다.


1907년 종로거리


집집마다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고 처마밑에 전등이 가설되어 있어 당시 이거리가 번화합을 알 수있다


진고개


충무로 입구에서 바라본 명동성당 이다,
당시도 충무로 입구는 서울의 가장 번화한 거리 였다.


죄수 노역


종로 네거리에 죄인들이 쓰레기 손수레를 끌고 포목전 앞을 지나고 있다


중학천


뒤의 누각은 경복궁 동십학각이며, 멀리 보이는 산은 낙산이며,
청계천 다음으로 수량이 많은 개천이다.


  세브란스 병원 1902년


1902년에 연세대학교 의학과 소장, 미국인 세브란스 기금으로
1904년 9월 남대문밖 조동에 세워진 병원이며 전신은 알렌이 세운 제중원 이다.


  서울대학 병원 1908년


1908년에 세운 구대한병원, 바로크풍 건축 양식으로 지은 2층 벽돌건물이다,
현재 사적 248호로 지정되어있고 대한의원 구서울대 의대 부속병원 전신 이다.


옛 마포


이곳은 나룻배를 건조하던 장소로 유명했다,
줄무뉘 상의를 입은 소년과 목판에 엿을 담은 어린 엿장수가 엿을 팔고 있다
소년의 줄무늬 옷차림이 그 당시의 유행에 민감 했음을 보여준다.


  독립문 전경


독립문 안에 영은문 기둥만 남아 있고, 독립문사이에 땔감 나무가 둘러 쌓여있다.



1904 이대 부속병원


1904 이화여대 부속병원자리
조선시대 한성에는 서당 공부를 마친 학생들이 진학하던 사학이 있었으며
그 중의 하나인 동부 학당이 이곳 이화여대 부속 병원 자리에 있었다.


종로 포목상 거리


가마꾼이 마님을 태우고 포목전 거리를 지나고 있다.
그뒤 몸종은 카메라 촬영에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1907년 광화문거리


(육조 건물 우편) 육조거리 좌우에 전주가 보이고, 뒤에 희미하게 광화문 누각이 보인다.


  1907년 서대문앞


거리에는 순종황제즉위식을 축하하기위해 태극기를 게양하고 있다.
돈의문현판이 선명하게 보이고 전차선로가 서대문 사이로 뻗어있다.


  남대문 앞


남대문(숭례문)앞 전차 (좌,우) 남대문앞 전경


남대문 전경


남대문(숭례문)앞 전경 오른쪽 명동성당 종탑


  덕수궁 중명전


서양식 2층건물로 알현소 또는 연회장으로 사용되어, 자주 외국사신을 이곳에서 접견하였다.

광무10년(1906) 윤대비의 가례때, 이곳에서 각국 사신들을 초청하여 연을 내렸다.
동년2월 1일의 한일협약에 의하여 일본 통감 및 수행원 16명을 이곳에서 접견하였다.

지금은 외국인 구락부가 되어서 중명전이라는 편액이 걸려있으나,
이건물은 1925년 3월 12일 실화로 전소되어 그뒤 재건되었다.


  창덕궁 승화루  


창덕궁 승화루 (교환 통신원)
창덕궁 락성재 이다. 궁내부에서 전화교환수(외국인)와 나들이 를하고 있다.


  덕수궁 광명문


덕수궁 광명문 (함녕전 입구)
덕수궁의 침전으로 황제께서 상주하시던 곳이다.
중화전 동북쪽에 있었으며, 앞문을 광명문이라 한다.


덕수궁 함녕전


덕수궁의 침전으로 황제께서 상주하시던 곳이다.
중화전 동북쪽에 있었으며, 앞문을 광명문이라 한다.

광무3년(1899) 독일의 헨리천왕이 동국인이 경영하는 강원도 금성금광 시찰을 위하여 내한했을 때에
황제께서 친왕을 여기서 접견하셨다.

태황제(고종황제)께서는 양위 하신뒤, 한때 수옥현에 옮겼으나,
순종이 창덕궁으로 옮기신 뒤에는 다시이곳에 계시다가 1919년 1월에 이곳에서 붕어하셨다.

고종황제 께서 돌아가신후, 이곳은, 혼전을 효덕전이라 칭하여,
이듬해 3월에 창덕궁 선정전으로 옮길 때까지 이곳에 안치하였다.


덕수궁 중화전


현재 덕수궁의 정전을 중화전이라 부르는데, 본전의 건조는 크게 뒤늦어,
광무6년2월에 시공하여 동년10월에 준공한 것으로, 아마이것이 덕수궁 중건공사중 최후의 것이다.

그앞을 중화문이라 칭하고 그뒷문을 조원문 (중화문과 대한문 사이에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이라 칭하였다.
이리하여 정식으로 법전이 완성 그 전신인 중화전은 폐하고 즉조당의 옛이름으로 돌아갔다.


  종묘 입구(홍살문)




왕실 종묘 거리




  덕수궁 석어당



시어소 시대부터 있어온 기념건물로서 임진란때 선조가 의주에서 돌아 오신 후에 거주하시던 곳이다.
즉조당과 함께 덕수궁의 중심을 이루는 건물로 즉조당의 동편에 있다.

건양 2년(1897) 2월, 고종황제께서 황태자(순종)와 함께 러시아 공관에서 덕수궁(창덕궁)으로 환어 하신 이후,
광무 8년(1904) 4월의 대화에 이르기까지 황태자비의 처소 였다.


  옛 대한문


광무8년(1904) 창덕궁 화재 이후, 이를폐지하고 그 자리에 현재의 대한문을 세워서 정문으로 삼았다.
창덕궁 화재원인은 함녕전의 온돌 수리때에, 불을지펴 이를 건조시키고 있을 때 타오른 것으로 ,
시각은 광무 8년(1904) 4월4일 밤 해각(밤10시)이다. 이날밤은 풍세가 불순하였기에 일시에 사방으로 연소하였다.


  규장각


규장각(경복궁 집옥재) 전경
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할 때 세운 건물로서 고종의 서재로 이용되었다,
왼쪽 팔각형 집은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다.


세검정 정각




  독립문 전경


독립문 상단에 높은 철재는 당시 깃봉으로 사용되었다,
무악재 넘어온 상인들은 아침마다 이곳에서 물건을 판매 했었다.
독립문의 한쪽에는 한자로 반대편쪽에는 한글로 되어 있는데,
당시 한글전용을 주장했던 독립협회의 이념을 알수있다, (이쪽은독립문 현판 한문쪽에서 촬영한것임).


원구단 1897년


원구단 전경 1897년

고종은 소공동에 원구단을 축조하고 이곳에서 대한제국 황제 즉위식을 거행했다. (옛 원모습)



  동대문 밖


동대문(흥인지문) 밖

화력발전소1906년 오른쪽 굴뚝 연기는 동대문밖 인접한 화력발전소로
이는 미국인 콜부란이 1898년 한성전기회사를 설립하면서 세운 것인데
전차를 운행하기위해서 세워진 화력발전소 이다


독립문 모아관 주변


독립협회는 중국사신을 영접했던 모아관을 독립관으로 고쳐 부르고
그일대를 독립공원으로 꾸몄다.


  대안문과 보초병


대안문은 덕수궁(경운궁) 정문으로서 1897년에 고종은 이를 대한문으로 개칭하였다.
아침일찍부터 사람들이 대안문앞에 모여있고 조선군인들이 보초를 서고 있다.


  탑골 (파고다) 공원


대리석 양각으로 된 석가 설법상 등의 부처를
정교하게 세겨 조선시대 석조 미술의 탁월함을 보여 주고있다.


  명동 입구(1930)


명동 입구 일본인 상점거리 (1930)

일본 상인들이 웅집한 명동거리다. 당시 본정 2정목 입구라 불렀다.


  광화문 전경 1900년


해태와 광화문사이에 북악산이 보이고 대문옆에 초소가 있다,
광화문 중앙문은 임금전용 문이고 좌측문은 문관용이고 우측문은 무관전용으로 출입했다.


  광화문 풍경 1904년


광화문 육조건물이 좌측에 보인다.
당시 해태상은 광화문과 많이 떨어져있다.


  남대문 거리 1915년


멀리 중앙우체국이 보인다,
일본 금융기관에서 발간된 자료 집에서 소개된 사진이다.


  초기 소방대 1915년


한국 초기 소방대 1915년

서울 대한문과 종동사이에 있었전 소방서 왼쪽 망루에 싸이렌 대신 종이 매달려 있다.


한국은행 전경


한국은행 뒤편에 연기가 나오는 건물은 조선호텔이다,
전차선로가 복선으로 설치되어 이거리는 항상 분주하였다.


서울전경 1915 년


남산에서본 서울전경 1915 년
멀리 중앙청과 시청이보인다, 왼쪽하단에 신사입구와 성곽도 보인다.  


독립문 거리 1920년


이거리는 각종 상인들이 많이 왕래하였다,
일본인들은 이곳을 의주통이라 불렀다, 멀리 독립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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