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을 왜곡하지 말라
독립문은 1896년 4월에 착공하여 1897년10월20일에 완공했다.
파리의 개선문 아취형 처럼 처음부터 우리 지형에 맞도록 설계된 것이다. 독립문 석조물은 45x30cm 크기로 모두 1850개가 화강암으로 가공된 것이다.
독립문과 독립신문은 서재필선생의 주선으로 현대문물을 접목시켰던 개화의 상징물이다.
당시 한순일보의 폐간 원인은 국민의 수준을 예측하지 못하고 순 한문으로 발간 했던 것이 폐간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서재필 독립신문은 상하 귀천없이 모두 읽게 하기 위해 순한글 판과 일면은 영문판으로 제작하여 많은 서민들에게 읽게 했다. 아무리 좋은 발상이라도 현시대를 무시하면 존재 자체를 인정받을 수가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과 같다
지금 독립문을 그 자리에서 옮겨 놓은 것은 서재필선생의 기본 철학을 무시한 짓이다. 지금까지 어느누구도 독립문을 왜 그 자리에 세운 것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
지금 독립문 평가는 서재필이가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웠다고 한다
또한 독립문을 이전한 위치와 방향은 독립문의 사상과 상관 없는 것으로 우리가 역사를 크게 왜곡시키고 있다
서재필선생의 나라 사랑은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운 것이 아니라 무악제 고개 넘어 도성으로 들어올 때 우리가 세운 독립문을 먼저 볼 수 있도록 아취형과 일체로 설계한 것과 또한가지 중요한 것은 의도적으로 무악재가 중앙에 보여 지는것이 사진속에서 재발견 되고 있다
서재필선생은 중국 사신을 맞이하는 영은문 보다 약 50M 앞에 세워 조선이 자주독립 국가 임을 한치라도 먼저 외부에 알리기 위해 한글,한문으로 독립문 사상을 선포한 선구자임을 우리후손들은 알아야 할것이다
영은문은 청일 전쟁때 화재로 인해 절반이상 소실되고 또한 중국 사신을 영접하기 위해 세운 것을 서재필 선생은 사대 사상을 타파하기 위해 영은문 보다 앞에 우리가 자주독립 했음을 알리기 위해 독립문을 세운 것이다
한글은 우리의 뜻이고 말이다.
도성안에 광화문과 독립문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한글 현판은 우리에게 소중한 유산으로 보존되어야 한다
2007년 3월 16일 저자 : 정 성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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