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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해방이후시대

숙군과 김창룡장군

http://bemil.chosun.com/brd/view.html?tb=BEMIL085&pn=3&num=108729


여순사건은 국군 역사상 비정규전으론 가장 끔찍한 사건이였습니다. 진압군측에서만 1000여명이상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특히 반란군들은 여성들까지 현혹시켜 전투를 하게만들었는데, 일부는 총을 들고 싸우며 저항하기도 했으며 또는 진압군들을 성적으로 유인시킨 다음 죽이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진압작전은 1949년 1월 종료되고 계엄령은 헤제됩니다. 여순사건은 국군에게 많은 정치적인 영향을 남기게 됬는데 그중 하나가 국군내 독립군 출신 세력들의 위상의 몰락입니다. 송호성 육군 총사령관과 이범석 국방장관이 물러나게된 이유중 하나입니다.

또 이승만은 국군내 좌익들을 제거하는 숙군 작업을 명령하는데, 이 책임을 맡은 자가 김창룡 대위입니다, 김창룡은 후에 이승만의 충신적인 정치 군인이 되는 사람인데, 그는 이승만의 친위대장 같은 인물이였으며 육군참모총장들까지 두려워했던 인물이였다고 합니다.

그의 첫 무대는 숙군이였습니다. 만약 이 숙군 없이 한국전쟁이 발발했으면 한국은 공산화 됬을수도 있었을겁니다. 김창룡의 이 업적은 높게 평가할수도 있으나 이 과정에서 많은 비극이 있었습니다.

당시 숙군작업을 지휘한자들은 대부분 김창룡 같은 만주군 출신들이였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역이용해 독립군 출신들을 탄압하는데 이용하기도 합니다,

제일 대표적인 예로 독립군 출신인 오동기 중령의 처형이었습니다, 그는 여순사건 진압작전중 큰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모함을 당해 숙청된 인물입니다, 그외 수백명에 가까운 독립군 출신들이 좌익으로 몰려 숙청되었습니다.

1여년간의 숙군작업을 통해 총 5000여명에 가까운 군인들 숙청되었습니다, 전체 병력에 5-10% 가까운 수치입니다

박정희 또한 숙군 작업때 김창룡에게 체포됬지만 그의 만주군 출신 동창들인 백선엽, 강문봉, 정일권등의 구명으로 살아남게 됩니다. 박정희는 그가 알고있는 남로당들을 모두 폭로하여 국군내 좌익들을 제거하는데 크게 기여합니다.

백선엽, 김백일, 김창룡 같은 만주군 출신들은 일제패망후 끈끈한 전우애를 통한 협동력으로 소련군들의 추격을 피해 같이 월남한 사람들이였으며 그후에도 서로 밀접한 관계를 지내며 서로 밀어주고 도와주며 살아갔습니다.

특히 김창룡은 소련군에게 체포된적이 있었으나 시베리아로 향하는 기차에서 뛰어내려 탈출한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1956년, 김창룡은 권력이 너무 강해지자 오랜 친구인 강문봉에게 암살당하는 비운을 만나게 됩니다. 그가 죽자 이승만은 통곡하였다고 합니다.

현재 그의 유해는 국립묘지 묻혀있는데, 그 앞에 김구 선생의 유족들이 같이 묻혀 있어서 한때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김구 암살을 주도한 인물중 한명이 김창룡이라 합니다)


PS: 우리 할아버지가 방첩대(CIC) 출신이라서 그런지 우리 가족들 모두 김창룡 장군을 존경하더군요


 


 

 
백선엽.jpg

 
김창룡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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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hong
김창룡 존경할 만한 군인은 절대 아니라고 봅니다. 2008-07-17 
 
국강상호태왕
친일파 총출동이군요. 백선엽까지 ㅋㅋㅋ 백선엽이 우리나라 최초 4성장군이라죠?? 만주군관학교출신이로 항일독립군 토벌에 앞장섰던 인물이지요...2008-07-17 
 
팔부능선
역사를 바로 세우지 못한 우리의 근대사는 오늘의 불행한 친일파의 득세로 이어진것이겠죠 매우 부끄럽고 치욕스런 인물이라 봅니다.....진정한 군인도 아니구요2008-07-17 
 
fallen_angel
김창룡이... 저 인간때문에 죽어도 국립묘지에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박정희같이 살려고 친일한 것처럼 보이는 케이스까지는 눈감아 주겠지만, 저따위 인간까지 인정하고 싶지는 않네요. 2008-07-17 
 
m14
정말 화나는군요..역사인식이 없으면 공부를 좀 해보시든지...

그시절 사형을 당했어야 했던 사람들이 자기 목숨을 부지하게 되고 심지어 권력까지 잡게 되자 제일먼저 했던것이 자기의 죄과를 아는 사람을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쉬웠죠. 빨갱이라고 하면 재판없이 죽일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자신을 미화하는거...김일성보다 더한 미화를 했구요. 또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보상을 했었습니다. 그러니 친일세력들에게는 엄청나게 훌륭한 사람이 되었죠. 자신의 과오를 덮어주고 영달을 누리게 해줬으니까요...

방첩대사람들에게 저사람이 어떤지를 물어서는 안되지요. 사형 대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게 해준 사람인데 고맙게 생각하지요. 저자의 손에 죽어간 독립투사들에게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리 보수적인 사이트라고 해도...대놓고 친일세력을 옹호하는 이런 일은 하지 말아야 겠습니다. 2008-07-17 
 
fallen_angel
시끄럽게 만들어 드리자면, 차라리 빨갱이 손에 죽는게 낫다는 생각을 합니다.. 라고 씁니다. 어차피 죽어야 하는데 윗동네 빨갱이한테 죽을래, 옆동네 왜놈한테 죽을래.. 하면 저는 빨갱이가 낫다 생각되네요. 물론 더 큰 생각은 죽고 싶지 않다는 것이겠지만... ㅡ.ㅡ; 2008-07-17 
 
m14
그리고 박정희 역시 김창료과 뭐가 다를까요. 엔젤님은 박정희는 살려고 친일했다고 하시지만 그것 역시 박정희가 자신의 잘못을 덮기위해 수십년간 실시했던 박정희 신화만들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박정희는 오로지 자신과 가족의 영달을 위해서만 살았던 사람입니다. 무조건적인 숭배는 바른길을 가게 하지 못합니다. 박정희의 잘못을 잘못했다고 비판하면 아마 이 밑으로 쭈욱...댓글이 달리겠지요.박정희의 잘못된 신화때문에서 이젠 빠져 나올때가 아닌가 하며 박정희 역시 역사속으로 사라지는것이 그의 잘못을 조금이나나 사죄하는 길이 아닌가 합니다.  2008-07-17 
 
fallen_angel
나는 박정희가 무조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또 문제가 있다고만 보지도 않습니다. 신화를 만들었건 어쨋건, 죄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할 명확한 근거가 부족해 보인다는게 제 입장입니다. 2008-07-17 
 
네오제다이
한가지 확실한건 그때 박정희를 빨갱이라고 죽여 버렸더라면 , 여러분과 저는 지금쯤 땡볕아래 논이나 밭에서 열심히 땅파고 있을 것이며, 우리나라에 하나 있는 비료 공장은 기름값 상승으로 원료를 원활히 대지 못해 비료생산을 못하고 있을 것이고, 올여름 집중호우가 내리면, 곳곳에서 산사태와 함께 홍수가 날것이고, 내년 봄에는 늘 그래 왔듯이 보릿고개로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을것입니다

역사에 가정은 필요없지만, 사람을 평가할때는 그의 업적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박정희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했을 것이라고요 ? 글쎄요... 박정희가 처음 여러 중화학 공업을 육성하려고 했을때 식견있는 야당지도자들이 뭐라고 했었는지 찾아보시면 ... 요즘 명박이가 발리는건 비교도 안될 정도로 비난을 많이 받았습니다.2008-07-17 
 
옥수수수염티
박정희가 자신과 가족의 영달만을 위해 살던 사람이라고 못을 박는 당신도 참 한심한 사람이요. 누군가는 그를 죽도록 미워할 것이고 누군가는 그에게 존경을 마다하지 않쏘만...누가 그를 무조건적인 숭배로 만든다고 보시요? 제가 보기엔 m14님 같은 사람 때문에 결국은 무조건적인 숭배로 보이게 만든다고 하고 싶네요. 어느 누가 박정희의 잘못까지 옹호합니까? 잘한것은 잘한 것이고 못한것은 못한것이지 모든 것을 '박정희'란 것 때문에 싸잡아 욕하니 잘못된 점까지 옹호하려하는 것입니다. 월드컵 16강 못한것도 놈현때문이다란 말이 나올정도로 비난이 쏟아질때 해도 너무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더니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을 보면 똑같은 놈들끼리 잘들 논다 싶쏘이다.2008-07-17 
 
네오제다이
그때만 해도 유신 이전이라 비교전 언론이 자유롭던 시절이라...크흥... 요즘 애들이 아는 독재자 박정희의 이미지는 유신이후의 것이라 쬐끔 다름니다. 아참 박정희가 중화학 공업육성 시작 할때 국내에서만 발린게 아니고 세계 각국에서 유머토픽으로 다루어 졌는데 미친놈 부터 시작해서 정신이상에 ... 아무튼 모든 중화학 공업 분야가 성공 함으로써 외국에서는 신화적인물로 칭송 받지만 , 민주화 인물들이 집권후 국내에서는 역사에서 파내 버려야할 매국노 친일파로 비난 받는다는거 ... 그런데 민주화 문민정권들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어서 결국에는 삽질로 현대건설 신화를 이룬 명박이가 대통령까지 되는데 일조를 했다는거... 훗날 역사서에서 경제 부문에서 만큼은 민주화 세력이 박정희 발톱에 때만도 못한 취급을 받을 겁니다2008-07-17 
 
BlitzAce
참고로 제가 김창룡 찬양할 목적으로 올린것은 아니니깐, 오해는 하지 말하주셧으면 합니다. 2008-07-17 
 
ㅋㅋㅋ
옹호는 좋지 않다고 봅니다 어째든 그들이 역사적으로 과오가 있는 건 사실이고 비록 후에 칭찬받을 일은 했다지만 그저 잘못한건 잘못했다 말하고인정할건 인정하는 수순에서 이야기하는것이 좋다고 봅니다2008-07-17 
 
느리보
시대를 알고 글을 쓰시기 바랍니다.1940대 항일독립군 어디 있었죠?2008-07-17 
 
아르덴느
사실과 객관을 가지고 역사를 판단한다는게 사실 어려운 일이죠. 공인된 사실이 과연 진실이냐라는 문제, 현재와 관련된 평가도 유동적인 것이라는 문제. 그래서 공허한 토론이 되거나 논쟁이 되기가 쉽습니다. 어떤 분야도 다 그렇지만 역사 공부도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2008-07-17 
 
jerald
박정희에 대해 오해를 하시는 분들이 있으신데, 박정희가 5.16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당시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은 더 빨라질수 있었을 겁니다. 이건 당시 쿠데타에 가담하였던 장교들의 의견입니다. 당시 장면 정부는 미국의 케네디 정부의 대규모 경제 원조를 약속 받은 상태였지만, 군과 국방비 감축을 추진하여 일부 군 세력의 반발을 가져왔고, 장면 정부의 사회 혼란과 급진적인 사상과 경제 불안으로 인한 사회 불만이 5.16 군사 쿠데타를 가져왔는데, 쿠데타 성공 후 박정희의 배경과 남로당원 출신 그리고 김종필과 김형욱의 전횡, 미국 케네디정부의 경제 원조 철회로 경제 사회적 불안은 가중되어, 오히려 경제가 후퇴하는 상황이었습니다. 2008-07-17 
 
윤암
김창룡은 강문봉에게 죽은것이 아니라 허태영(?)대령과 인사문제로인해 허대령의심복 방첩대 문관 두명이 출근길에 권총으로 저격 사망 하였슴. 강문봉중장은 후에 연루자로지목 처벌받았습니다 2008-07-17 
 
jerald
당시,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고, 케네디가 장면 정부에 경제 원조를 제대로 했다면 한국의 경제 발전은 더 앞당겨졌을겁니다. 하지만, 박정희의 쿠데타로 경제발전은 뒤로 후퇴하였고, 한왜신조약으로 왜놈들한테 굴욕적인 조약을 맺고 약간의 돈을 얻었지만, 경제 발전을 위한 자금으로 쓰기에 텃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미국은 경제 지원에 대해 거부를 오직 독일과 영국에서 비싼 이자를 주고 차관을 들여 경제 발전을 하게 되었지만, 베트남 참전으로 미국의 원조를 받기 전까지는 지지부진하였습니다.

실제로, 박치옥, 김재춘씨등 5.16 군사쿠데타 참여세력들 중 상당수가 박정희가 아니어도 장면 정부가 경제 발전에 대해 효과적으로 실행했을거라고 증언합니다. 즉, 5.16 군사쿠데타는 장면 정부시기 사회불안과 부조리, 군개혁및 군방비 감액과 감축에 대한 군내 강경세력의 불만이 표출되어 발생한 것입니다.

박정희의 공은 단지 경제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 뿐이지, 지역감정 시초 제공, 정치 군인 양성(하나회 전두환등), 측근 비리, 독재, 성장위주의 개발 정책,공보다 과가 많은 인물입니다. 한국 근대사에서 이승만과 박정희만큼 명암기 뚜럿히 교차하는 인간도 없을 겁니다.

아, 5.16 군사쿠데타 이후 북한의 김일성은 남한의 군사쿠데타가 발생하자, 박정희가 남로당원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박정희의 남로당원 동료이며 형 박상희의 친구였던 황태성을 남파하여 박정희와 접촉하게 하였지만, 박정희는 동료였던 황태성을 사형시켜버립니다.

이후 5.16 군사쿠데타에 가담하였던 세력은 양분되어 장도영및 송요찬 장군등 반박정희 세력과 김종필, 김형욱을 중심으로 한 친박세력으로 갈리다가 박정희 세력의 승리로 마감하지만, 이 사건은 미국의 박정희 불신론을 만들게 됩니다. 2008-07-17 
 
죽의리
jerald 님 사실 좌빨, 자칭 민주운동가들, 그들 빼고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오해를하고 있읍니다. 그때 미국이 대규모 원조 해줬으면 한국이 박정희통 믿에서보다도 더 발전했을거라고요?

참 기가막히내요. 정말 한국의 XX분들 대단하십니다. 사실 얼마나 화가 납니까 아무리 내리까고 욕하고 발광을 해도 여론조사 하면 위대하신 김대중 승상님과 노무현의 몇배씩의 지지율이 나오니... 열은 받겠죠... 그때 승상님이 대통령 하셨으면 몇배는 더 성장했을탠데...... 2008-07-17 
 
jerald
김창룡 이야기에서 박정희 이야기로 비켜나간 것 같은데, 김창룡은 국립묘지에 묻혀 있어야 할 이유가 하등 없는 인간 쓰레기입니다. 김창룡및 정일권,백선엽,백인엽등 많은 구 일본군 출신들은 그 능력도 없는 이들이 이승만의 비호로 대한민국 육군의 군복을 입고 많은 죄악을 남긴 자들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및 군대가 진실로 국민을 위하는 정부와 군대가 되기 위해서는 이들에 대한 과거사 정리를 확실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남로당 군사총책이었던 박정희에 대한 역사의 재 평가는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2008-07-17 
 
jerald
죽의리씨 제대로 알고 애기하세요? 박정희의 남로당 군사총책이었고, 박정희의 형이었던 박상희가 대구 10.1 폭동사건에서 주도 세력이었던것은 사실입니다. 박정희가 대통령 된 이후 경제 발전을 위한 차관 도입이 제대로 되지 않아 경제발전을 위한 비젼및 계획조차 되지 않은 시기였죠.

박정희는 독일 방문을 하여 아데나워에게 경제 차관을 요청하였고, 우리는 광부와 간호사를 보내서 독일에서 많은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고생을 하셨습니다. 그래도, 경제 발전을 위한 차관이 제대로 안돼 겨우 경공업 위주의 경제 발전 정책을 펴게 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미국이 대규모 경제 원조를 중단하였기 때문이고, 한국의 박정희 정권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박정희의 과거가 너무나 의심스럽웠기 때문이죠.

실제로 황태성 사건시 황태성은 김종필을 반도호텔에서 만났는데, 김종필의 아내가 바로 박상희의 딸이었습니다. 박상희와 황태성은 남로당 동료였고, 박정희가 남로당에 입당시 당원 보증을 섰던 사람들입니다. 이사건은 미국이 박정희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고, 미국은 직접 박정희에게 황태성을 넘기라는 압력을 행했지만 박정희는 거부하고 황태성을 사형시킵니다.

이후로 미국은 박정희 정권에 대해 극도의 불신감을 표출하였고, 이는 존슨 대통령의 한국 방문과 한국군의 월남전 참전 요청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죽의리씨 당신인 자꾸 좌빨, 민주운동가들 대한민국 국민들이 오해하고 있다고 하는데, 당신 먼저 제대로 알고 애기해, 알지도 못하면서 어디서 나불거리고 있어. 2008-07-17 
 
jerald
당신도 박정희와 같이 과거 남로당원이었던가 아니면 원조 빨갱이였던 모양인거 같은데, 전두환이 국가보안법 연좌제 폐지하니까 당신 같은 부류들이 수구로 옷 입고 물타기 하며 대한민국을 오염시키고 있는데, 당신 같은 인간들이 없어져야 대한민국이 제대로 발전을 해.2008-07-17 
 
코스모스
글쎄요. 백선엽 장군이 왜 능력도 없는 군인이였을까요? 다부동전투, 지리산지구 공비 토벌, 평양선봉입성 등의 업적이 있는데요. 일성이 정일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파죽지세로 밀고가던 인민군을 다부동에서 멈추게하고 맥아더의 제주도 망명정부수립 계획을 중단하게 만들어서 싫겠지만 공은 공이고 과는 과입니다. 2008-07-17 
 
코스모스
지리산에서 토벌된 빨치산(그들 표현대로)은 백선엽이 지리산지구 전투사령관으로 와서 싹쓸이를 해서 사라지죠. 지리산인가 하는 소설과 백선엽이 쓴 군과나라는 책을 같이 읽어보면 적당한 판단을 내릴만 합니다.2008-07-17 
 
윤형진
국립묘지에 장군 묻힌것은 좀 숙군이 필요하겠네요. 유학성이나 김창룡이나.. 군이 진정한 국민의 군대의 위상을 정립하려면 말입니다.2008-07-17 
 
막강심리
다들 진정하시고, 다시 저런 일이 없게 전두환, 노태우씨가 국립묘지에 못 묻히게나 합시다. 그 두 양반들, 자기가 쿠테타 일으킬 때, 죽인 장병들과 함께 눕는 것을 보게되면 정말 열받을 것 같네요. 2008-07-17 
 
alsrudcjf
참...... 어이가 없네요. 만약에 백선엽,정일권,박정희,민기식,김홍일,김석원.....등등 능력있는 분들이 없고 비록 반쪽이지만 김일성(김성주),김책,최용건,최현,무정,강건,남일,오진우.....등등이 능력있는 군인입니까? 김창룡같은 자는 당연 국립묘지에서 부관참시해야할 대상입니다. 하지만 지금현실은 어떤가요? 왜 무고한 순진한 관광객이 영점사격 표적지입니까? 이미 퇴색해진 프롤레타리아이념을 고수하는 덜 떨어진 무뢰배들 아닙니까? 그런 잡인들에게 퍼주기하는 한심스런 인간들을 영웅시하는 우습지도 않은 시류에 역행하는 어리석음은 버려야 합니다.2008-07-17 
 
유용군사
참 다행이네요. 6.25가 터지기 전에 좌익들을 군대내에서 몰아낸게 천만다행입니다. 자칫하면 유엔군이 오기도 전에 전쟁이 끝난뻔 했었네요. 김창룡 최대의 업적입니다.

그리고 박정희가 없었다면 아직도 국민들이 밥도 제대로 못먹고 해외여행은 꿈도 못꾸었을 겁니다. 아직 젊은분들은 이말이 무슨말인지 모른다면 필리핀이나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으로 한번 여행가서 보세요. 옛날에 우리보다 휠씬 잘살던 나라입니다. 그들 나라보다 못산다고 생각해 보시면 답이 나옵니다. 북한은 아예 제외하더라도 말입니다. 2008-07-17 
 
죽의리
jerald 씨 그래서 제가 물어보지 않읍니까? 박정희대통령이 당신이 말하는것처럼 나쁜사람이면 왜 한국의 대다수가 박정희 대통령을 좋아하고 단군이래 몇안돼는 지도자라고 합니까? 모두 쪼다라서 그러나요? 박정희는 빨갱이라서 싫어하고 백선엽은 빨갱이 죽여서 싫어하나요? 어떡하면 좋읍니까? 아무리 나불 나불 거려도 박정희대통령 인기가 떨어지지가 않으니... 참 그리고 글쓰실때 착하게 쓰셔야 합니다. 그런식으로 글을 쓰시면 저도 아가리니 싸가지니 이렇 나쁜글을 쓰게됩니다. 2008-07-17 
 
죽의리
유용군사님 jerald님 말씀대로면 박정희 대통령 아니였으면 미국이 원조해줘서 더 잘살수 있었담니다. 친일,친일 하면서 3백만이 넘게죽인 북한과 빨갱이 처벌에는 어찌그리 너그러운지. 2008-07-17 
 
jerald
죽의리씨 나도 좋게 글 쓰는데 당신 글 쓰는게 너무 XX가 없어서 그래. 나도 뭐 입이 없어서 아가리니 싸가지 없는니 못하는 줄 알아. 모르면 잠자코 있어.

박정희의 개인 과거가 확실하게 알려지지 않고 업적만 계속 얘기하니까 사람들이 현재와 박정희 시대를 비교해서 박정희가 그나마 낫다는 것이지. 사실 애기해도 박정희가 전두환,노태우, 김영삼보다는 나았고, 김대중과 노무현보다 먼저 북한과 회담해서 이후락을 북으로 보내 김일성과 회담하게 했으니가.

그렇지만 냉정히 평가하면 박정희는 영웅도 아닌 기회주의자일 뿐이야, 자기의 이익을 위해 동료를 배신하고, 나라를 지역감정의 광풍속에 넣고. 단지 인기율에서 박정희가 앞선다? 그래서 인기율이 역사의 진실을 가릴수 있소?2008-07-17 
 
jerald
지리산님 백선엽은 구만주군 장교로 박정희, 정일권과 같이 만주에서 독립군및 사회주의 계열 독립군 토벌하러 다녔습니다. 뭐, 한국전에서 백선엽이 보여준 지휘능력은 탁월했지만, 김종오, 이성가, 김홍일 장군들이 보여준 6.25 초기 한강 방어전, 춘천 전투, 강릉 전투의 눈부신 전적과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단지, 박정희가 정권을 잡은 후, 구 일본군 출신들의 전적을 미화하고 독립군 출신들의 전적을 깍아내리다 보니 돋보일 뿐입니다.특히, 백인엽 같은 경우는 한신 장군이 회고록에서 가장 많은 아군 초급 장교를 명령불복으로 즉결 처분해서 휘하 초급장교가 권총으로 위협한 일화가 있을 정도로 대부분의 구 일본군 출신들의 전투지휘능력은 떨어졌습니다. 2008-07-17 
 
jerald
5.16 군사쿠데타 이후 군사정권이 보여준 혼란상은 이승만정권의 혼란상과 똑같아서 대다수 국민이 박정희와 쿠데타 세력을 지지하지 않았고, 대통령 선거에서 윤보선과 겨우 150000표차로 겨우 이겼소. 인기율? 지금이야 IMF로 경제가 어려워지고, 정치권의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으니, 박정희 시대의 고도 성장을 그리워해서 박정희의 인기가 높고 있지만, 다시 경제가 정상화되고, 사회가 안정된다면 박정희의 인기가 높아지겠소?

우리 아버지,어머니 세대가 피땀 흘려 모은 돈으로 국가 발전에 힘 쓰고 청렴결백했다면 박정희는 대한민국의 국부가 되었겠지만, 박정희는 국부도 경제개발의 영웅이라고도 할 수 없는 비열한 기회주의자일 뿐이요. 인기율이 높다고 박정희를 미화한다면,박정희가 이룩한 경제 개발은 IMF로 모든 것이 붕괴되었고, 다시 새롭게 만드는 과정에 우리가 있고, 암울한 한국경제의 모든 원인이 되고 있소. 고도성장? 경제발전? 2008-07-17 
 
jerald
Blitzace님 이런 글과 사진은 이슈토론방에 올리세요, 자유 사진 게시판에 맞지 않으니까요. 지난번에도 운영자님이 경고하셨는데, 자꾸 올리는데, 좀 규칙 좀 지키세요. 무슨 생각으로 이런 글을 올리는지 모르겠는데, 자유사진 게시판이 혼란 그 자체가 되고 있소.2008-07-17 
 
염산중독증
마지막은 여자 자위대인가요? 2008-07-17 
 
망설이지마
어디서..감히 장군 운운하는지요... 김창룡 같은 왜놈들이 득세를 하고 판을 치니 지금과 같은 깨끗하지 못한 사회가 된 것이 아닌까 생각됩니다. 그중하나.! 과거사 청산위원회의 축소와 특별법의 무산 등..이거 이렇게 한사람이 누구??? 바로 이맹박 대통령이십니다...2008-07-17 
 
화려강산
박정희가 되었든 장면 정부가 되었든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이라고 보는 게 경제학자들의 견해입니다.

이승만 정부 때, 미국으로부터 받은 경제원조액이 31억 2000만 달러입니다. 당시 우리나라 경제 규모로 보면, 경제의 20~30%가 원조 경제라고 보면 됩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 돈을 먹고 사는 데 사용하고, 전쟁복구에 다 써버리고 말았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 엄청난 돈의 배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박정희가 정권을 잡은 이후입니다. 군사정권이라는 치명적 아킬레스건 때문에 이러한 원조가 끊겼다는 것과 차관마저 빌리기 어려워졌다는 점입니다.

당시 언론 통제 때문에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박정희 통치기간에 2번, 그리고 전두환이 집권하자마자 외환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나마 같은 분단국인 서독으로의 간호사와 광부들을 파견 보내고 받은 송금액과 서독 정부의 차관 지원 그리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한일 수교를 통한 대일 청구권, 월남전 특수 등 이로써 부족한 외환을 메워나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박정희 통치 17년간 단 한 번도 무역수지가 흑자인 해가 없었습니다. 박정희가 일본을 경제 모델로 강력한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편 것은 국가 비전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강요된 선택이라고 보면 됩니다.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의 승리와 부족한 외화 획득, 그리고 일자리 창출을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면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지금이야 기업들이 돈이 있어도 투자를 안 하지만, 당시 경제 상황은 기업가들이 투자를 하고 싶었어도 돈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정된 자운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특혜 금융 시비와 이에 따른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을 수 없었고, 당시 정부의 특혜 금융을 받은 기업들은 지금 우리나라 대표 기업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경상도를 연고로 둔 기업들이 득세하게 된 한 가지 이유가 됩니다.

(경상도 연고 기업이 득세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다른 지역의 경우 전쟁으로 기업가 정신을 가진 자본계층이 다 숙청당하고, 6.25 전쟁 중에 경상도 지역에 있는 적산재산이 그나마 온전하게 보전되었기 때문입니다.)

정권에게 밉보이면 망하는 게 그동안 한국경제의 특징이었습니다. 인도네시아에 코린도 그룹은 김형욱에게 정치자금 안 줬다가 부도났던 망명 기업입니다. 이 기업의 설립자는 다시는 한국에서 사업을 안 하겠다고 한국을 떠나 인도네시아로 사업처를 옮깁니다. 무수한 기업이 정권에 밉보여 망하고 어떤 기업은 그런 기업을 그냥 공짜로 주워 먹었습니다.

저는 리콴유처럼 정부의 부정부패만 뿌리 뽑혔어도 한국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국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쿠데타 정권이 무슨 낯으로 그럴 힘이 있었겠습니까? 한국이 이만큼 살게 된 것은 절대 박정희 때문이 아닙니다. 박정희는 미화된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당시 경제 상황을 돌이켜 보면, 부정부패뿐만 아니라 경제 정책도 사실 엉망이었습니다. 높은 경제 성장 이면에는 그 배가 넘는 물가상승률이 있었고, 이것은 바로 사회불안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박정희 통치 시기의 정치 불안은 필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60년대부터 7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경제 성장률은 연 10%대 인데, 그것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박정희 시대의 경제성과는 자랑할 만한 것이 못 됩니다.

한국 경제 성장의 가장 큰 원인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마오쩌뚱 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공산화와 그에 이은 사상 개조 작업으로 중국이 세계무대에 20년 늦게 등장하는 바람에 우리가 시간을 벌은 것이 천우신조입니다. 지금 중국은 80년대 개방 이후 계속적으로 연 10%가 넘는 경제 성장을 이룩하고 있습니다. 만약 중국이 공산화 되지 않고, 그냥 그대로 장개석에 의해 자유주의 국가가 되었다면, 상상만 해도 끔직 합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교육에 대한 투자입니다. 이승만 정권이 1958년부터 실시한 의무교육은 오늘날 한국이 있게 한 혁명적 사건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클라크 교수는 한나라의 국가 경쟁력은 '노동의 질'일라고 말합니다. 그는 19세기 서구와 인도의 예를 들며, 똑같은 기계를 가지고 섬유공장을 운영하는데, 인도에 진출한 기업들이 싼 임금에도 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노동의 질에서 원인을 찾고 있습니다.

노동의 질이 우수한 나라에 자본과 임금이 몰리고 이것은 다시 경제를 활성화 시키고 부를 이룬다는 것이 그의 논리입니다. 그러면서 다른 학자들이 연구한 바를 따르면, 한 나라의 발전에 있어서 노동의 질 외에 다른 여러 요인(지도자의 리더십, 대외여건, 지하자원 등등)이 차지하는 비율이 27%가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노동의 질이란 국민들의 의식과 교육수준에 달였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승만정권의 교육혁명이 이후 박정희, 전두환 시절의 경제혁명으로 이후 민주혁명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결국 자신들은 굶어도 자녀들을 가르쳤던 이 땅의 아버지, 어머니가 진짜 영웅인 셈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박정희 식 패러다임이 아직까지 국민들의 의식 가운데 남아 있는 한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조직을 끌고 가는 방법은 '소수의 독선'과 '다수의 합의'입니다. 리더와 추종자와 수준차가 크면 클수록 전자의 방법이 더 효율적입니다. 그래서 후진국은 전자의 사회, 선진국은 후자의 사회입니다.

민주주의 시스템이 잘 돌아가는 후진국이 없고, 국민을 무시하는 독재가 판치는 선진국은 없습니다. 경제가 발전하면 선진국이 그냥 되는 줄로 아는데 그건 착각입니다. 사회시스템 잘 운영되는 나라가 선진국입니다. 사회시스템이 잘 돌아가면, 경제발전은 그냥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기술력은 남부 유럽의 농업국가보다 월등히 낫습니다만, 실제 소득은 그에 못 미칩니다. 그래서 자동차를 수출하고 핸드폰을 만들고 우수한 전자제품을 만드는 우리나라가 지금 정도 밖에 못 사는 것을 유럽인들은 잘 이해를 못 합니다.

아직도 많은 국민들이 박정희 식 경제독재를 그리워하는 것은 지난날에 대한 좋은 추억에 대한 그리움과 한편으로는 강력한 리더십에 의해 무임승차하려는 노예근성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성영, 최연희 같은 정치인들이 자기 동네에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우리나라는 민주주의하려면 멀었습니다.

저는 촛불집회를 구세대와 신세대간의 의식의 충돌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시대는 독선적 리더십이 맞지 않는데, 이명박 대통령을 보면서 앞으로 4년 반이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권위주의 트라우마(정주영 밑에서 일함), 식민통치 트라우마(식민지 백성의 아들로 일본에서 태어남), 전쟁 트라우마( 형제 둘이 전쟁에서 폭격으로 죽음), 가난 트라우마(학비를 벌려고 갖은 고생을 함)을 가진 사람입니다.

저는 이분이 자신의 아픔을 아름답게 승화시키기를 바랬는데, 요즘 하는 것을 보면, '역시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새 술을 새 부대에 새 시대는 새로운 마인드를 사람에게 맡겨야 하는데, 안타깝습니다.

저는 박정희에 대해 일방적인 비판이 아니라 잘한 것은 잘한 것이고 못한 것은 못 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하지만, 박정희를 냉정하게 평가하지 못하고, 주성영, 최연희 같은 사람이 국회의원 되는 나라에서 무엇을 기대하겠습니까?2008-07-17 
 
보수군인
안오던 사람들이 많군요 그때 살앗던 나도 모르는이론 반면교사를 모르는지 YS.DJ 기타등등 잘했으면 그소리안나오지요 실패자의 변명 추하죠 정권이 바뀌기는 한겄같군요 2008-07-17 
 
냉장고
jerald님 께서는 박정희 대통령을 넘 폄훼하시는것 같네요. 물론 박정희 대통령은 만주서 일본군 장교 생활을 했지만 만주에서 독립군및 사회주의 계열 독립군토벌을 했다는 얘기는 사실무근이라고 이미 알려져있습니다.

그리고 케네디가 장면 정부에 경제 원조를 제대로 했다면 경제가 성장을 했다고 하셨는데 당시 한국 사회는 극도로 혼란의 시기였습니다. 그런 시기에 많은 돈이 들어와도 과연 경제성장이 쉬웠을까요.

그리고 동남아 국가들을 보더라도 미국이 중국의 공산화와 베트남의 공산화로 인해서 동남아 국가들에 대한 투자도 어마어마 했습니다, 그러나 동남아 국가들에서 기겄해야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를 제외하고는 경제성장은 커녕 현재까지 가난과 혼란만이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돈이 많이 들어와도 나라가 혼란 스러우면 과연 경제성장이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도 물론 문제였지만 우리 대한민국과 같이 경제성장을 한 대만, 싱가포르를 보면 그 나라들도 가각 장개석 장경국 부자의 독재와 물론 한국과는 다르지만 이광유 수상의 독재라 할수있는 정치 시스템이 있었습니다. 물론 박정희 대통령도 4공화국이라 할수있는 유신시기는 비난을 받을 일이지만 경제성장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은 인정을 하셔야 할것입니다. 2008-07-17 
 
느리보
jerald님 1960년 저희형 중학교시설 하루 학교가고 하루 데모하고 했다는 군요. 현정부 계획은 힘차게 나왔지만 지금보싶시요 우왕좌왕하지 안습니까? 당시 권력의 중심이 없던 내각제 정부입니다. 절대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화려강산님 집도 없고 직업도 없는 사람에게 은행이 10원이라도 대출해 줍니까? 더욱 상대는 외국계은행들입니다.왜? 경상도들먹이며 지역갈등 조장합니까? 코린도요? 남방개발공사였습니다. 인터넷에서 퍼온글 같은데 아니면 본인 말씀 처럼 내나라에 기대 하지말고 그냥 이민 가십시요. 2008-07-17 
 
화려강산
저는 박정희 정권에 대해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습니다. 독재 정치도 마찬가지고요. 상황에 따라 강력한 리더십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요즘 박정희 정권에 대한 지나친 미화에 대해서는 걱정스러워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요즘 많은 분들이 과거의 실패는 기억하지 못하고 과거의 성공만을 생각하는데, 시대가 변한 만큼 과거의 성공방식만 집착하면 대한민국은 희망이 없습니다. 오히려 과거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어 새로운 대한민국을 창조하자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의식이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더 잘살기 위해 더 인간답게 살기위해서는 민주주의는 반드시 성취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어떤 분들은 민주주의가 오히려 경제성장에 방해가 되고, 다시 옛날로 돌아야 한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앞서 말한 '다수의 합의'가 이루어지는 사회는 사회구성원간 '소통'이 되는 사회입니다. 모든 선진국의 특징이기도 하고요. 정부는 국민에게 정직하고, 또 국민들은 정부의 정책에 신뢰를 보낼 수 있는 그런 나라가 우리 모두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2008-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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