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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 Health/음식정보

쌈, 신선한 야채의 ‘맛있는 다이어트’

2008-10-16



한 비닐하우스에서 농민들이 쌈밥용 채소를 수확하고 있다.

처음 한국에 온 일본인이 가장 황당해하는 곳은 횟집이라고 한다. 한국 사람은 회를 된장이나 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상추에 쌈장을 찍은 마늘과 고추와 함께 싸 먹기도 한다.

본래의 생선회 맛을 음미하기 위해 생강을 씹어, 먼저 먹은 생선 맛을 깨끗이 씻어내는 일본인에겐 생소한 장면임이 틀림없다.


캔 채소 바로 먹는 ‘들밥’서 유래

어떻든 회를 먹는 방법에서 한국과 일본의 차이는 한국의 ‘쌈’의 문화 탓이다. 쌈은 탕이나 찌개 같은 물기음식과 김치, 된장과 같은 발효음식과 함께 한국 고유의 음식문화다.

음식문화에도 한국인 특유의 특성이 배어 있다.

이규태는 ‘한국인의 의식’에서 “싼다는 것은 내부를 외부로부터 가리는 행위요, 곧 외향적인 외개문화(外開文化)에 대한 내향적인 내포문화를 뜻하는 것으로 우리 전통 문화의 기조가 되어온 것”이라면서 “내포형 문화가 음식에 투영되어 쌈문화가 나타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같은 문화적 공동인자와 함께 신선한 야채를 쉽게 구할 수 있던 자연환경이 쌈이라는 독특한 음식문화를 더욱 발전시킨 것이다. 쌈문화는 들에서 일을 하다가 밭에서 캔 채소를 날로 먹는 ‘들밥’에서 유래한 것이다.


상추, 깻잎, 배춧잎, 호박잎 등 생야채를 싸 먹던 식습관은 미역, 다시마, 김과 같은 해초류는 물론 김치(보쌈)와 밀쌈(구절판·편수오 밀쌈), 익힌 야채(복쌈)로 쌈의 영역이 확장됐다. 특히 각기 다른 8색의 각종 어육·채소를 얄팍한 전병에 싸서 먹는 구절판은 쌈문화의 최고 미학이라고 할 수 있다.

몇몇 다른 나라에도 쌈 음식이 있다. 멕시코의 화이타,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춘권, 서양의 스프링 롤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들 음식은 조리된 야채나 고기를 싸서 튀기거나 찌는 재처리 과정을 거친다는 점에서 생야채 위주의 우리 쌈과는 본질적 차이가 난다.


웰빙 바람을 타고 쌈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대표적인 쌈 채소인 상추의 생산량 추이를 보면 1980년에 5만여t이던 것이 2007년 현재 30만t을 넘었다. 매년 생산량의 20% 이상 성장해온 것이다.

쌈의 건강학적 가치는 이미 세계시장에서도 인정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7월 미국 시카고리뷰는 ‘이색음식 가이드’란에 한국 고유 음식인 쌈을 소개하면서 “‘맛있는 다이어트’라는 유행을 훨씬 다양하게 포괄하는 음식”이라고 평가했다. 한마디로 다이어트, 강장, 질병 예방 등에 효과가 있는 으뜸 건강음식이라는 얘기다.


사실 그렇다. 쌈의 주재료인 상추동의보감에선 ‘와거’라 하며 근육과 뼈를 튼튼하게 하고 오장의 기운을 고르게 하며 머리를 맑게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본초강목에는 정력에 좋아 이를 많이 재배하면 그 집 부인의 음욕을 간접적으로 나타낸다고 했다.

이런 속설 때문에 조선시대 때까지만 해도 상추는 뒤뜰에서 길렀다고 한다. 이 때문에 붙은 별명이 ‘은군초‘(隱君草·숨어서 매음하는 자를 뜻하는 은군자에서 얻은 이름)다.

상추 다음으로 많이 먹는 깻잎은 철분이 시금치의 곱절이고 비타민 A의 모체가 되는 베타카로틴 함량이 당근의 두 배다. 특유의 향을 만드는 페릴키논 성분이 방부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균이 많은 고기나 회를 먹은 다음 오는 뒤탈을 예방한다.

쌈의 효능적 가치는 실제 세계적 음식시장에서도 입증되고 있다. 시카고의 고급 식당가인 클락 스트리트에서 ‘딤쌈(dim ssam)’이라는 한국식 쌈 메뉴가 성황리에 판매되고 있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모모푸쿠 쌈 바도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식당 가운데 하나다.

 

상추, 고구려 사신이 수나라서 들여와


쌈음식(왼쪽)과 구절판(오른쪽)

한국 쌈의 유래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 와중에 음식을 싸서 먹는 방식이 전해졌다는 게 정설이다.

현존하는 중국 세시풍속서 중 가장 오래된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중국 초나라의 세시풍속서)에 따르면, 중국 초나라에는 정월 1월 1일부터 7일간 생야채만 먹는 풍습이 있었다. 고려시대의 문헌에는 “야채로 밥을 싸 먹었다”는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원나라 시인 양윤부(楊允孚)는 ‘원궁사(元宮詞)’에서 “더 좋은 것은 고려의 상추로서 마고의 향기보다 그윽하구려”라고 시를 읊었다. 그는 이 시의 주석에서 “고려 사람들은 채소에 밥을 싸서 먹는다. 고려의 맛좋은 상추는 물론 산에 나는 새박나물과 줄나물을 (원나라가) 사들여온다”고 적고 있다.

곧 원나라에서 들여온 상추가 고려의 특산물이 됐으며 고려가 각종 산나물을 수출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저서가 바로 조선 정조 때 한치문이 쓴 해동역사다.

한치문은 “무와 함께 상추를 들여온 이는 고구려 사람들이다. 고구려 사신이 수나라에 들어가 상추를 구입했는데, 그 값이 너무 비싸 ‘천금채(千金菜)’라는 별명이 붙었다. 나중에 고구려의 특산물이 됐다”고 적었다. 천금채란 천금을 주고서야 구할 수 있는 값진 채소라는 뜻이다. 쌈이 수라상에 오른 것 역시 정조 때 일이다.

18 세기 실학자 이익의 ‘성호사설’에 “소채 중에 잎이 큰 것은 모두 쌈을 싸서 먹었다. 상치쌈을 제일로 여긴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

19세기 작가 미상의 ‘시의전서(是議全書)’에도 “상추쌈뿐 아니라 곰취쌈이나 양제채(羊蹄菜)쌈, 산채는 물론 깻잎쌈, 피마자잎쌈, 호박잎쌈, 배춧쌈, 김치쌈 등 잎이 큰 것이면 모두 쌈이 된다”고 기술하고 있다.

지금은 그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쌈의 종류가 다양할 뿐 아니라 온실재배로 인해 계절도 무의미해졌다.


그뿐 아니라 쌈 차림에 따르는 쌈장의 종류와 형태에 따라 각 지방의 독특한 쌈 문화를 만들고 있는 것도 또 다른 특징이다.

경상도는 쌈장으로 멸치젓갈을 주로 이용한다. 특히 이 지방에서는 고등어조림이나 찌개를 끊여 쌈으로 싸먹기도 한다. 음식문화가 발달해 있는 전라도는 된장, 고추장, 멸치젓갈 양념장, 양념한 간장, 강된장 등 쌈장이 다양하고 미역이나 다시마 등 해조류도 쌈을 즐긴다.

쌈을 얘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음식 중 하나가 바로 보쌈이다. 넓은 배춧잎에다 배추 속, 깍두기, 고추, 파, 마늘, 생강, 밤, 잣 그리고 삶은 돼지고기, 낙지, 마른 오징어 같은 갖가지 재료를 한 보자기에 싸서 먹는 보쌈김치는 가장 정교하고 우아하게 발전한 쌈문화의 진수라고 할 수 있다.


<김경은 기자 jjj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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