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출처 : http://blog.naver.com/pieta999?Redirect=Log&logNo=100020353539 글/홍경한 (미술평론가)
아름다움으로 인한 불행한 죽음
베아트리체 첸치(Beatrice Cenci)
엘리사벳타 시라니(SIRANI, Elisabetta) 작 <베아트리체 첸치 Beatrice Cenci>
64,5 x 49 cm. 1662년 Oil on canvas 이탈리아 로마의 Galleria Nazionale d'Arte Antic에 소장됨
여기 인간이 지닌 사악함에 희생된 또 하나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있다.
저 그림 속 주인공의 이름은 <베아트리체 첸치(1577~1599) Guido Reni-Beatrice Cenci>로 불과 22살 밖에 안 된 소녀이다.
(흔히들 그녀가 아버지에게 겁탈을 당한 나이가 14세이고 아버지를 죽인 시점의 나이를 16세라고 하는데 이는 그녀의 출생연도만 봐도 틀렸음을 알 수 있다. 그녀가 죽은 나이는 22세이며 갖혀 지낸 시간은 무려 8년이다. 또한 <베아트리체>라고 하면 단테의 베아트리체를 생각하는 데,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베아트리체>는 13세기 말 피렌체에 살았던 귀족의 딸로 본명이 <베아트리체 포르티나리>이다. 따라서 여기서 언급하는 인물과는 서로 다른 사람이다.)
저 그림만 놓고 보면 마치 17세기 네델란드 작가 베르메르의 작품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연상시킨다. 청명한 눈빛, 살짝 감도는 미소, 어딘가 모르게 다소 슬픈게 다가오는 여운 등이 꼭 그렇다. 하지만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와는 약 100년의 차이를 갖고 있으며 베르메르가 그린 주인공이 안타까운 사랑에 비련했다 해도 <베아트리체>만큼은 아니었을 터이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Jan Vermeer van Delft의 진주 귀걸이 소녀,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 표지, 그리고 스칼렛요한슨이 주연을 했던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2003)'
< 베아트리체>는 친아버지로부터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은 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져야했던, 안타까운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실존인물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5백년 전 로마시대 귀족이었던 이탈리아 첸치가문의 딸이었던 <베아트리체>에겐 <프란체스코 첸치>라는 매우 방탕하고 게을르며 잔악하기 이를 데 없던 아버지가 있었다.
비극의 서막은 인간 말종인 아버지에겐 어울리지 않을만큼 <베아트리체>가 아름다웠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그녀가 14세가 되던 해, 아버지 프란체스코 첸치는 짐승만도 못한 육심에 이끌려 자신의 딸인 그녀를 강간하는 패륜을 저지르고 만다. 더구나 한번으로도 모자라 그녀의 계모인 루크레치아와 힘께 아퀼라 지방에 있는 성 <라 페트렐라>에 가둬 놓고선 틈만 나면 육체를 탐하는, 그야말로 인간같지도 않은 짓거리를 행한다.
오랜 세월 되돌릴 수 없는 폭력으로 몸과 마음을 모두 잃어버린 <베아트리체>는 절망하고 목숨을 포기한다. 그리곤 언젠가는 아버지에게 복수하고 말겠다는 깊은 맹세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를 동정했던 계모와 친오빠, 그리고 그녀에게 반해있던 집사의 도움과 묵인으로 <베아트리체>는 마침내 아버지를 죽이기로 결심, 아편을 먹이고 잠재운 뒤 실족사한 것으로 위장하기 위해 높은 발코니에서 떨어뜨려 죽인다. 1598년 9월 9일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무도 모를 줄 알았던 사건이었지만 결국 <베아트리체>를 비롯한 오빠와 계모 등 가담자는 모두 체포된다. 일부 주민들과 시당국이 정당방위를 주장하며 석방해달라는 탄원을 제기하지만 그들에겐 오히려 무서운 고문이 가해진다.
충분히 정당방위로 인정될 수도 있었지만 당시 전권을 휘두르던 교황 클레멘테 8세에겐 다른 흑심이 있었다. 교황은 당시 그녀의 아버지가 죽은 이유보다는 그녀와 가족들을 없애 첸치 가문의 재산을 가로채려는 욕심에 공무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Castle Sant' Angelo and bridge, Rome, Italy
1599년 9월 11일, 새벽녘에 이 사진의 다리로 끌려나온 그들을 위해 사형대가 지어졌다.
Castel Sant'Angelo
The Castel Sant'Angelo, or Mole Adriana, was consecrated by Hadrian himself as the burial place of the Emperors. In the interior the prison of Beatrice Cenci is shown and at the highest point of the Castle stands the bronze statue of the Archangel Michael.
이 사건은 기어코 낱낱이 밝혀지고 교황에 의해 도끼로 머리를 자르라는 명령을 받게 된 <베아트리체>. 아버지를 죽이고 난 1년 뒤인 1599년 9월 11일, 처형날인 로마 산탄젤로 광장에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절세미녀의 처형을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 구경꾼들 중에는 <귀도 레니>라는 바로크시대 초기의 유명한 화가도 끼어 있었다. 제 2의 라파엘로라고 불리며 이상적인 비례로 현실을 표현했던 볼로냐학파의 대표주자 <귀도 레니(1575-1642)>는 단두대로 오르기 직전의 베아트리체를 발견하곤 그녀의 청초한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인간이 만든 잔인한 형벌에 의해서 그녀의 꽃다운 청춘은 그렇게 매듭지어졌다.
Beatrice Cenci's execution, ca.1895. Image from the Library of Congress. / Beatrice Cenci, Rome
한편 <베아트리체>는 죽음의 도끼가 머리를 내리치는 순간 이렇게 외쳤다.
"아..주님! 성모마리아님!..."
물욕에 어두웠던 교황으로부터 죽음을 전달받은 그녀... 나지막하게 외친 이 한마디는 그 자리에 있던 사형집행관들이나 죽음에 환호를 보내던 반미치광이 군중들, 그리고 절대권력을 누렸던 교황에게 바치는 진정한 헌사였을지도 모른다.
<스탕달 신드롬 Stendhal syndrome>
프랑스의 작가 스탕달('적과 흑'의 저자)이 이 그림을 보고 한 눈에 반한 나머지 감동에 겨워 다리에 힘이 빠지고 황홀해 했다하여 생겨난 용어 <스탕달 신드롬 Stendhal syndrome>. 문화방송 오락프로그램 '서프라이즈'가 지난 해 8월 진실 혹은 거짓말을 통해 방송한 후 지식IN 등 웹사이트나 일부 뉴스에서는 <베아트리체>를 보고 그런 경험을 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허나 이는 확실한 게 아니다. 자료에는 이탈리아 화가 볼테라노가 그린 <시빌들>이라는 설과 미켈란 젤로의 작품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는 설(백과사전에는 이것으로 나오지만 역시 신빙성이 없다.), 이탈리아 피렌체파의 창시자 지오토(Giotto di Bondone 1266?~1337)의 프레스코화를 보고 착란에 빠졌다는 설(1817년 스탕달이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감동을 받은 작품을 본 곳이 산타 크로체 교회이고 <베아트리체>를 그린 작품은 로마 Galleria Nazionale d'Arte Antica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등등 여러 개의 설이 있고 베아트리체 부분도 그 중 하나라는 게 보다 정확하다.
영화 '스탕달 신드롬'과 브뤼겔의 '이카루스의 추락'
◀ 엘리사벳타 시라니(SIRANI, Elisabetta)의 자화상
귀도 레니(Guido Reni, 1575년 11월 4일 - 1642년 8월 18일): 바로크 시대의 이탈리아의 화가.
귀도 레니는 볼로냐의 음악가 집안 출신이었던 다니엘 레니(Daniele Reni)와 기네브라 드 포찌(Ginevra de'Pozzi) 사이에서 태어났다. 9살이 되던 해에 그는 데니스 칼배트(Denis Calvaert)의 화실에서 견습생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레니는 알바니(Albani)와 도메니치노(Domenishino)의 화실에 합류하게 된다. 그는 페란티니(Ferrantini)라는 이름의 화가에게서도 미술 교육을 받았다.
레니가 12살이 되었을 무렵, 칼배트의 제자 3명이 루도비코 카라치(Ludovico Carracci : 안니발 카라치의 사촌)와 함께 칼배트 화실과는 라이벌 관계였던 다른 화실, Accademia degli Incamminati("새로이 출항하는" 혹은 진보하는 학원이라는 뜻)로 전향하게 된다.
그들은 안니발 카라치를 추종했던 볼로냐의 화가들을 위해 훌륭하고 성공적인 학교의 토대를 건설하려 했다. 볼로냐의 타 화가들처럼 귀도 레니의 작품들은 폭넓은 주제를 이용하는 스타일이 많다.
귀도 레니의 대표작들
1. Abduction of Deianira, 1620-1621. 켄타우로스 네소스에게 납치당하는 헤라클레스의 부인 데이아네이라
2. St Dominic's Glory crowning the Arca di San Domenico.
3. The Archangel Michael, painted for the Capucins' Church in Rome.
4. Penitent Magdalene, ca. 1635, Walters Art Museum, Baltimore.
Reni's sensuous, sentimental images are among his most popular works.
5. David with the Head of Goliath (1605, Oil on canvas, 220 x 145 cm) at Musée du Louvre, Paris.
6. The Rape of Europa (1630s) at The National Gallery, London. It was made for King Władysław IV of Poland.
인터넷 상에서 가장 큰 오류를 범하고 있는 부분, 즉 왼쪽 그림이 귀도 레니 것으로 알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저 작품이 제작된 연도(1662년)가 작가의 사망년도(1642년)를 뛰어 넘는다. 이것만 봐도 맨 위 그림은 귀도레니의 원작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된다.
사실 저 그림을 그린 주인공은 <귀도 레니>가 아닌, 귀도 레니의 제자로 있던 아버지 밑에서 그림을 배운 문하생 엘리사벳타 시라니(SIRANI, Elisabetta 1638~1665)로써 <귀도 레니>가 그린 원작을 보고 따라 그린 것이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절망과 슬픔이 내재되어 있는 원작에 비해 지나치게 아름답게 '꾸민' 것 같아 본질에서 다소 멀어졌지만 기술적인 수준은 꽤 높았던 듯 싶다.
하지만 여전히 귀도 레니의 작품과 시라니의 작품이 혼동을 일으키고 있는 현실이다.
위키피디아에서는 오히려 이 작품을 귀도 레니의 작품으로 보고 있다.(http://en.wikipedia.org/wiki/Beatrice_Cenci)
The portrait associated with Beatrice Cenci attributed to Guido Reni that Shelley saw in Palazzo Colonna in 1818, sparking his interest.
첫번째 그림은 엘리사벳타 시라니(SIRANI, Elisabetta) 작 <베아트리체 첸치 Beatrice Cenci>이고 바로 위의 사진과 동일한 것이다.
두번쨰 그림은 상당히 유사하나 조금 다른 느낌을 주는데 이 그림을 귀도 레니의 작품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세번째 그림이 귀도 레니의 원본 그림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훨씬 강환 느낌이다.
귀도 레니(Guido Reni) 작 <베아트리체 첸치 Beatrice Cenci> 57 x 46cm 1633년.
Galleria Nazionale Arte Antica. Palazzo Barberini Roma
귀도 레니의 저 그림은 현재 빌라 보르게제 지역에 있는 팔라쪼 바르베리니 안에있는 로마 국립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귀도 레니( Guido Reni, 1575년 - 1642년 )는 바로크 시대의 이탈리아의 화가로 성화를 잘 그렸던 사람이다.
Julia Margaret Cameron의 Beatrice Cenci
A Study of the Cenci, 1870 Beatrice Cenci (May Prinsep) 1870 Beatrice Cenci 1868
albumen silver photograph 27.2 x 32.6cm
이후 많은 작가들이 베아트리체 첸치를 모델로 한 그림을 그렸다.
Reni sketching a portrait of Beatrice Cenci. Leonardo Leonardi, 19th cent.
Transparency on glass, 19C. Folo, Giovanni Delaroche, 1855
Beatrice Cenci. by Harriet Hosmer, 1857 / Beatrice Cenci. etching, after Hosmer, another view
Italian Cameo, 19th cent. / CALENDARIETTO 1950 BEATRICE CENCI
Film Poster for Beatrice Cenci, by Lucio Fulci 1969
Lanterns & Head Basket carried by the Brotherhood of St. John the Beheaded / Comforter, Order of St. John the Beheaded
베아트리체의 슬픈 삶과 관련한 문학 작품들.
She has been the subject of a number of literary and musical works: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베아트리체의 이야기는 수많은 문학작품들과 뮤지컬들의 주제가 되었다.
Francesco Domenico Guerrazzi - novel Beatrice Cenci
Stendhal - a novel appeared onto Cronache Italiane (프랑스의 대문호이자 <적과 흑>의 작가)
Percy Bysshe Shelley tragedy - The Cenci: A Tradgedy in Five Acts composed at Rome and at Villa Valsovano near Leghorn, May-August 5, 1819, published spring 1820 by C. & J. Ollier, London, 1819)
Alfred Nobel - tragedy Nemesis (비운의 복수의 여신)
Alberto Moravia - novel Beatrice Cenci
Alberto Ginastera - opera Beatrix Cenci
An Italian film about her story, directed by Lucio Fulci, was released in 1969.
1969년에는 루치오 풀치 감독으로 영화도 나왔다.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Beatrice_Cenci
두명의 베아트리체
공교롭게도 베아트리체 (Beatrice) 라고 하는 이름은, 또 중세의 미의 여신이라고 추앙받는 그 베아트리체는 두 여인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한분은 13 세기에 살았던 베아트리체 포르티나리 (Beatrice, Portinari 1265~1290) 라는 여성과, 또 한분은 16 세기의 베아트리체 첸지 (Beatrice Cenci 1577-1599)라는 소녀의 이름입니다. 둘다 짧은 생을 살았고, 둘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그 아름다움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여성 입니다.
그리고 이 여성들과 관련있는 사람들..
베아트리체 포르티나리 (Beatrice, Portinari )
- 단테 ( Alighieri Dante 1265~1321 )
- 보카치오 ( Giovanni Boccaccio 1313~1375 )
-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와 그 애인 엘리자벳 시덜 (Rossetti, Dante Gabriel 1828~1882, Elizabeth Siddall 1829-62 )
- 헤르만헤세 ( Hermann Hesse 1877-1962 ) 데미안중의 "베아트리체" 는 단테가 사랑했던 이 여인의 이름을 딴것임.
베아트리체 첸지 ( Beatrice Cenci 1577-1599 )
- 귀도레니 ( Guido Reni 1575 - 1642 )
- 귀도레니의 제자 시라니 엘리자베타(女) ( SIRANI, Elisabetta 1638 ~ 1665 )
- 스탕달 ( Stendhal 1783~1842 )
조용필씨의 "슬픈 베아트리체"는 어느 베아트리체인지 저도 궁금하군요..^^
< The Meeting of Dante and Beatrice in Paradise 1852 - Rossetti Dante Gabriel >
"낙원에서 만난 단테와 베아트리체 - 로세티의 1852 년 작"
< Portrait of Beatrice Cenci - SIRANI, Elisabetta >
귀도레니 제자 시라니 엘리자베타의 "베아트리체 첸지의 초상" 모작. 모작이 더 유명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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