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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세계의 미술

단테의 연인 '베아트리체'



단테의 연인 '베아트리체'(神曲)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가슴 한 구석이 저며 오는, 아름답지만 아픈 기억들. 그때만큼은 그 사람이 아니면 인생이 끝날 것만 같았던 감정의 독한 홍역을 청춘시절을 한 번쯤은 겪었을 것이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징크스가 있지만 어떤 이는 첫사랑의 기억을 마치 지울 수 없는 마음속의 문신처럼 일생동안 간직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새로운 만남으로써 훌훌 털어 버리기도 한다. 당신의 첫사랑은 아직 당신의 가슴속에서 여전히 아름답게 빛을 발하고 있는가?

정말로 독할 만큼 지고지순하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첫사랑이 여기 있다. 바로 그 유명한 '신곡'의 저자 단테의 첫사랑. 단테(Dante Alighieri : 1265~1321)의 연인 베아트리체(Beatrice : 1226~1290)는 고작 24년 밖에 살지 못했지만, '신곡'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통해 7백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가장 순결하고 가장 아름다운 천상의 여인 이미지로 남아 있다.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 괴테와 더불어 세계 4대 시성이라 불리는 단테. 그러나 베아트리체라는 여인이 없었다면, 아니 그녀를 그토록 열렬히 사모하지 않았더라면 명장 '신곡'은 탄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신곡'은 밀턴의 '실락원'이나 번연의 '천로역정'과 더불어 기독교 문학의 최고 백미로 손꼽힌다.

중세시대 당시 라틴어가 공용어처럼 쓰이던 때에 그는 과감히 라틴어를 거부하고 제 민족의 언어인 이탈리아어로 '신곡'을 쓴 것도 물론 획기적인 일이었지만, 절대자가 아닌 인간적인 사랑을 내포한 작품을 쓴 것 또한 당시로는 파격적인 일이었다.

이로써 이탈리아 문학은 라틴어로부터 분리, 국민문학이 완성되어 단테는 국민문학의 창시자로 추앙 받았다. 이러한 영향은 당대의 다른 국가에도 미쳐 전 유럽에 걸쳐 문예부흥과 민족주의 물결이 이러나게끔 토대를 마련했다.

단테는 르네상스의 요람이며 중세유럽의 중심지였던 피렌체에서 귀족출신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다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읜 까닭에 계모 밑에서 자라 어린 시절이 그리 행복하진 못했다. 게다가 부친代에 와서는 가문이 많이 기울어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했지만 장남인 단테만큼은 열성적으로 교육시켰다. 하지만 부친의 극진한 사랑도 잠시뿐이었다. 그의 나이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부친마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러나 단테는 좌절하지 않고 학구열에 불타는, 책임감 강한 청년으로 자랐다.

그의 생애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베아트리체는 그가 9세 때 부친을 따라간 귀족들의 파티에서 만났는데, 그는 자기보다 한 살 어린 베아트리체에게 첫눈에 반하고야 만다. 그때부터 그녀는 성모 마리아처럼 고결하고 우아한 이미지로 그의 가슴속에 남게 되었다. 시집 '신생'에서 그녀와의 첫 만남의 순간을 '그때부터 내 사랑이 내 영혼을 완전히 압도 했네' 라고 표현했을 만큼 큐피드의 화살이 제대로 그의 심장을 관통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9년 후, 그의 나이 18세 때 운명의 짓궂은 장난처럼 그는 거리에서 우연히 어느덧 제법 성숙한 여인이 된 베아트리체를 다시 만나게 된다. 서로 눈인사만 나눴을 뿐이지만, 이때부터 그의 마음은 온통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어머니의 사랑에 굶주렸던 그에게 베아트리체는 그 존재만으로도 자신이 사랑하는 유일한 여인이었으며, 세상에서 가장 덕스럽고 따뜻한 이미지의 여신, 혹은 천사, 구원자로 생각했다. 이미 그는 열두 살 때 부친의 명으로 젬마 도나니크라는 여인과 정혼한 몸이었지만, 그에게 일생동안 유일한 사랑은 베아트리체뿐이었다.

그러나 끝내 그녀는 단지 먼발치에서 밖에 바라볼 수 없는,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고야 만다. 당시 명문가였던 폴코 포르티나리의 딸이었던 그녀는 집안에서 정해준 시모네 디 발디라는 남자와 결혼한다.

몇 해 동안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사랑했건만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것마저도 그리 오래 허락되지 않았다. 그토록 절절이 갈구했던 단테의 첫사랑 베아트리체는 1290년 6월 8일, 24세의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그가 그토록 간절한 마음으로 쌓아 올렸던 사랑의 탑은 모래성이 되어 그렇게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손 한번 잡아보지 않았어도, 입맞춤 한 번 해보지 못했어도 단테에게 있어 그녀의 죽음은 일생일대의 가장 큰 고통이었고 슬픔이었다.

단테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부친이 정혼해 준 젬마와 그 다음 해에 결혼, 네 명의 자식들까지 생기지만 그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다. 여전히 그의 마음은 베아트리체의 것이었다. 그 후 10년 동안 타락한 생활로 방황했으니 첫사랑의 상처가 얼마나 엄청난 거였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는 서정시를 덧붙인 산문 '새로운 탄생' 에서 그녀의 내적 아름다움에 대해 '덕으로 감싸 있어 그 누구도 감히 헐뜯지 못하고, 함께 있는 다른 여인들까지 사랑과 믿음으로 덩달아 빛이 난다' 고 묘사했다.

단테의 청춘은 그렇게 첫사랑의 실패와 함께 지나갔다. 그러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가 피렌체 공화국의 정치에 참여 승승장구하며 정치에 참여한 지 5년만인 1300년 35세의 나이로 도시국가 최고지위인 통령에 선출되었다. 지금으로 하면 총리쯤 되는 위치이다.

이 무렵 피렌체는 집권세력인 겔프당이 백당과 흑당으로 나뉘어서 당파싸움을 하고 있었다. 백파에 속해 있던 단테는 자신의 임기가 끝나자 로마에 사신으로 파견 되었다. 그런데 그 사이 반대파인 흑파가 정권을 잡아 백파를 추방했는데, 단테도 예외는 아니었다.

1302년, 그는 정치적 반역죄로 기소되어 벌금과 공직 추방, 그리고 2년간 국내에 들어올 수 없다는 판결을 받았고, 출두를 요구받았다. 그러나 그는 로마에서 돌아오는 길이라 날짜에 맞춰 출두하지 못했다. 이에 영구 추방이 결정되었고, 그것도 부족해 시 정부의 눈에 띌 경우 가차 없이 화형에 처한다는 가혹한 조처가 내려졌다.

그는 살아생전에 고국 땅을 두 번 다시 밟지 못했다. 이때부터 단테의 고독한 방랑생활은 시작되었다.

'신곡'을 쓴 은총이었는지, 다행히 파란만장한 인생을 위로해 주듯 축복의 땅 라벤나가 만년의 단테를 거둬주었다. 1317년 이후로 그가 생을 마치기 직전까지 이곳에서 이방인으로 여생을 보냈다.

그러던 중 사소한 사건이 발단이 되어 이웃나라 베네치아와 생긴 불화의 화해교섭을 그가 맡았는데, 이일을 무사히 끝내고 돌아오던 길에 그는 말라리아에 걸려 1321년 9월 13일 밤 마침내 파란만장한 일생을 라벤나에서 마쳤다. 단테는 죽어서 그의 현실적인 아내 잼마와 그의 정신적인 지주이자 성모였던 베아트리체와 함께 단테의 교회라고 불리우는 성 마가레 교회에 묻혔습니다.

필생의 대작 '신곡'은 죽기 직전 탈고 되었다.

단테가 세상을 떠난 후, 피렌체에서는 국보급 대문호를 이유 없이 박해한 것을 뉘우치며 그의 작품을 모든 시민들에게 널리 읽히도록 했다.

'내 시는 이전에 존재한 적 없고 앞으로도 나오지 못하리. 그것을 쓰기 전까지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쓰지 않으리.' 라고 죽은 베아트리체를 두고 했던 단테의 약속처럼 '신곡'은 연인에 대한 완전한 사랑이 인간의 뛰어난 상상력과 결합해 낳은 최고의 창작물 중의 하나이자, 인류 문학 역사상 불후의 금자탑으로 손꼽히고 있다.

'인간의 손으로 빚어진 최고의 것' 이라며 칭송한 괴테를 비롯해 헤겔과 쇼펜하우어, 엥겔스에 이르기까지 문학적 가치를 드높였다.
뿐만 아니라, 로댕과 로세티 등 유명한 예술가에게도 풍부한 소재를 제공, 불후의 명작으로 거듭 탄생했다.

'신곡'은 단테가 조국 피렌체에서 추방당한 후 망명지에서 19년에 걸쳐 완성한 신학적 장편 서사시이다.

'지옥'편과 '연옥'편, '천국'편이 각각 33가씩 나뉘어 총 100가로 구성되어 있다. 유독 3이란 숫자가 선호되는데 이는 삼위일체를 의미하며, 33이란 그리스도가 구원사업을 완성한 나이를 의미하는 수이고, 100이란 완전한 10의 제곱수를 의미한다고 한다. '지옥' 편은 1308년에, '연옥' 편은 1313년에, '천국' 편은 사후에 유작으로 발표되었다.

단테가 생각한 지옥의 모습은 역삼각형의 형태다. 지옥 순례에 나선 단테는 자신에게 가장 많이 영향을 끼친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으며 24시간 동안 지옥에 머문다. 지옥은 9단계로 나뉘는데, 죄를 지었지만 전혀 뉘우칠 줄 모르는 인간들이 심판받는 곳으로 묘사되었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바다 한가운데 돌출한 분화구처럼 생긴 연옥은 세상과 구분이 뚜렷하지 않은 속죄의 세계다. 칠흑같이 어둡기만 하던 지옥과는 달리 연옥은 밤낮이 존재한다. 여기에 머무는 인간들은 경범죄를 저질렀거나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해 노력하는, 즉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막연히 기다리는 정거장쯤으로 묘사되어 있다.

연옥에서 만 3일을 보낸 단테는 인간의 승리를 상징하는 천국으로 향한다. 지옥에서 연옥을 거쳐 천국 입구까지 동행한 베르길리우스는 그리스도교 교리에 따라 세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어 단테와 헤어진다.

여기서 그의 유일한 사랑 베아트리체가 마침내 등장한다. 베아트리체는 그를 천국으로 인도한다. 천국은 광명과 춤, 노래의 나라로 묘사되어 있다. 이처럼 '신곡'은 초현실적인 내용과 인간성 추구를 동시에 담아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감동을 안겨준다.




The Meeting of Dante and Beatrice in Paradise 1852 - Rossetti Dante Gabriel >
"낙원에서 만난 단테와 베아트리체 - 로세티의 1852 년 작"



끝으로,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위해 바친 시 '사랑의 노래'를 읊으며 위대한 작품의 혼으로 승화시킨 그의 독한 사랑에 찬사를 보낸다.

"나의 아씨의 아름다운 얼굴을 한 번도 싫도록 본 적이 없기에 나는 지긋이 바라보리라.
그를 바라보며 복이 있도록 드높은 곳 환한 밝음 속에서 오직 신을 우러러 축복 받는 천사와도 같이
내 비록 한낱 인간이건만 내 마음의 주님을 우러러 보면 천사에 못지않게 축복을 받고 솟아오르는 넋을 퍼덕이리라.
이런 힘이 그에게 있거니 남은 모를지라도 그를 바라 그리운 나는 아노라."

- 베아트리체를 바라보리라 -


[출처] 단테의 연인 '베아트리체'(神曲)|작성자 들풀



[단테의 연표]

연도

내용

1265년

피렌체 출생

1270년

어머니 벨라 사망

1274년

베아트리체와 첫 대면

1283년

아버지 사망. 9년 만에 다시 베아트리체와 상봉

1287년

수도원 경영의 라틴어학교에서 문법과 수사학을 배우고, 볼로냐대학에서 철학, 천문학을 연구. B.라티니에게 사사

1290년

베아트리체 사망

1291년(?)

《신생》집필 착수

1300년

생 제미냐노의 특파대사. 부활절 성 금요일 전야에 《신곡》서두 암시

1302년

흑당()에 의해 추방

1306~08년

《향연》《속어론》《신곡》(지옥편)

1308~13년

《신곡》(연옥편)

1313년

《신곡》(천국편)

1315~21년

《제왕론(

1321

라벤나에서 말라리아로 사망

- 출처 두산백과사전 




< 로세티가 단테와 베아트리체를 표현한 작품들 >


그의 부모가 단테를 신봉시 해서 이름을 지어주고 스스로도 자타가 공인하는 단테학 박사 수준이자 그의 애인에게 베아뜨리체를 끝없이 대입하려했던 19C 유명한 화가였던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의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그림들을 보면.....




Rossetti. Beatrice Meeting Dante at a Marriage Feast, Denies Him Her Salutation (1855, Oxford, Ashmolean Museum)




Rossetti. Dante’s Dream at the Time of the Death of Beatrice (1871, Liverpool Walker Art Gallery)




Rossetti. The First Anniversary of the Death of Beatrice: Dante Drawing the Angel
(1853, Oxford, Ashmolean Museum)




Rossetti. The Salutation of Beatrice (1859, Ottawa, National Gallery of Canada)




Rossetti. The Meeting of Dante and Beatrice in Paradise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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