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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 Health/음식정보

곰삭은 바다의맛… 젓갈 한젓갈에 입맛 찾다

[박재은의 名品 먹거리]

곰삭은 바다의맛… 젓갈 한젓갈에 입맛 찾다


짭쪼롬한 젓갈은 무더위에 지친 입맛을 살리는데 최고다. 양철 도시락도 젓갈만 곁들이면 왕후의 식탁이 부럽지 않다. 사진 임우석

젓갈로 속을 채웠으면 소래포구 갯가 풍경을 가슴에 담아보자.

어선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소래포구

소래포구 인근 산책로에 물건을 팔러 나온 상인들

한 주 내 찜통 같은 더위였다. 기온은 삼십 몇 도라 하고, 하늘은 꽉 막혀있고, 가슴은 답답하고. 입맛이 하나도 날 일 없는, 그런 주였다.

그저 더위를 식힌다고 찬 국수나 몇 젓갈 뜨다 말고, 빙과류나 빵조각에 차가운 음료로 끼니를 때웠다. 그러다보니 속은 점점 차가워지고, 기력은 더 떨어지고, 더위는 한층 괴롭게 느껴졌다.

아, 밥을 먹어야겠다. 그것도 밥맛을 잔뜩 돋우는 찬을 곁들여 식욕이 동하여 먹어야겠다, 작정을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냉장고를 뒤지고, 동네 슈퍼를 뒤지고, 가까운 시장을 뒤지다 문득 먹고 싶은 것이 생각났다.

따끈한 밥에 간이 잘 밴 젓갈 한 입. 칼칼한 낙지젓이나 말캉한 꼴뚜기젓, 야들야들한 창란젓이나 허옇게 무친 조개젓. 떠올리는 즉시 혀뿌리 양 끝에 침이 착 고였다. 맛난 젓갈 사러 다녀올 일만 기다리다 주말이 왔다.

■ 소래 포구

서울에서 길이 안 밀리면 1시간 남짓 거리에 이처럼 역사 오랜 포구가 있다. 1937년, 일제가 서해안에서 나는 소금과 곡물을 반출할 목적으로 수인선을 건설하면서 세운 소래철교만 봐도 포구의 세월을 짐작할 수 있다.

수인선 멈춘 지 10년이 더 넘었지만, 소래 포구는 아직도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나들이 코스로, 김장 젓갈 사러 고부가 손잡고 나오는, 철교 따라 나무 그늘에 앉아 막걸리 한 잔 할 수 있는 모두의 아지트로 남아있다.

소래 포구로 진입하다 보면 밥집들의 호객행위나 주차문제로 다소 복잡할 수 있는데, 맞은편 월곶 포구에 차를 세우고 살살 걸어가면 문제는 해결된다.

소 래 쪽으로 걸어가면서 막걸리 파시는 아주머니들을 자주 뵙게 되는데, 천원짜리 막걸리 한 사발 청하면 매콤하게 무친 돼지껍데기를 안주로 주신다. 허기가 급하면 다리 위에서 목을 축이고 가도 좋을 듯. 자, 다리를 건너면 본격적인 포구의 시장 구경이 시작된다.

내 가 일부러 찾아가는 곳은 젓갈집 개성상회(032-446-3831). 얼굴도 자태도 참 고우신 고순례 할머님의 손맛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젓갈 만진 세월만 삼사십년이 되시는 할머님. 특히 빨간 양념을 하지 않은 조개젓은 할머님만의 노하우를 한 입에 말해준다.

전혀 잡내가 나지 않는, 그러면서도 바다 향기가 씻겨나가지 않은 맛. 할머님의 비법으로 딱 맞게 절여진 맛과 양념은 짜지도, 밍밍하지도 않다.

나는 고순례 할머님의 하얀 조개젓을 한 봉지 사서 아주 잘게 다진 청양고추를 썰어 넣고, 감식초랑 참기름 몇 방울에 버무려서 밥에 얹어 먹는다. 다른 찬은 필요 없다. 따끈한 밥에 조개 풍미가 스며들어 입안에 휘휘 퍼진다.

콧바람으로 맛있는 냄새가 되돌아 나와 다시 식욕을 올리고, 그렇게 입에 침이 고여 또 한 입의 밥과 우윳빛 조개젓을 먹게 된다. 여기에 살짝 구운 맨 김이나 얇은 파래김을 소금 뿌리지 말고 곁들이면 바다 향이 배로 깊어진다.

■ 모둠젓갈 도시락

나는 사실 젓갈을 즐겨 먹지 않았었다. 내가 이처럼 젓갈 마니아가 된 이유에는 시어머니가 있으시다. 여름이 생일인 내게 생일 선물처럼 매 년 젓갈을 무쳐주셨던 것.

오징어젓, 창란젓, 낙지젓, 조개젓… 결혼해 맞은 첫 생일 때는 젓갈 맛을 제대로 알지 못해 ‘어머님이 만들어 주셨는데 못 먹는다고 말할 수는 없는데’ 난감해했다.

그 렇게 한 해, 두 해 시간이 흘러 이제는 매년 7월이면 잃었던 입맛을 으레 젓갈로 회복하는 수준까지 이르게 되었다. 어머님이 바쁘시면 내가 직접 소래 포구로 가기도 하고, 어머님의 간과는 또 다른 맛인 친정 엄마의 젓갈을 몰래 덜어 오기도 하고.

양철 도시락에 밥을 펴 담고, 입맛을 가장 당기는 젓갈 3종을 가지런히 곁들여 보자. 일본의 신칸센(고속철도)에서 먹는 명물 벤토(일본식 도시락)보다 입에 맞는다.

나들이 갈 일이 없어도 요렇게 도시락에 밥을 담아 시원한 물김치에 구운두부 정도 곁들여 식구들과 먹으면, 선풍기 바람에도 괜히 신이 난다.

■ 젓갈과 느억맘, 엔초비

젓갈을 우리 문헌에서 찾으면 7세기 경 황후를 맞는 음식 중 하나로 등장하는데, 실은 그 훨씬 전부터 먹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생선이나 생선의 내장, 갑각류나 조개류를 발효시켜 만든 전통음식 젓갈은 그 영양가 또한 뛰어나다.

칼슘이 많은 아가미젓, 비타민과 철분이 풍부한 조개젓, 피로 회복에 좋은 낙지젓 등, 염분을 조심하면서 조금씩 아껴먹으면 모두 몸에 이롭다.

생 선을 발효시킨 먹거리는 사람 몸에 좋은 것이라 다른 문화권에도 자주 등장하는 메뉴다. 베트남 요리에 빠지지 않는 ‘느억맘’이라는 소스나, 정어리를 소금에 절여 발효시킨 이탈리아의 ‘엔초비’만 봐도 그렇다. 스웨덴의 지방 요리 중에는 청어를 소금에 절여 발효시킨 메뉴도 있다.

지금처럼 냉동이나 냉장이 쉽지 않던 옛날, 많이 얻은 식재료를 오래 두고 먹으려했던 인간의 노력은 스웨덴에서도, 한국에서도 꼭 같았던 것이다.

기 름값이 올라 소래 포구 다녀오는 길이 부담된다면 전철 1호선 타고 인천터미널까지, 아니면 4호선을 타고 오이도까지 가서 버스나 지역 택시를 이용해도 좋겠다. 젓갈 한 통 가방에 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얼른 밥 지어 먹을 생각하며 친구에게 문자로 자랑을 날려보자. 아님, 꾸벅 졸아도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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