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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6.25 한국전쟁

한국전쟁 미군 기록사진


울프독님의 사이트에서 가져온 사진들입니다.


1950년 7월 경부가도에서 파괴된 T-34

1950년 7월 14일, 후퇴하던 미군이 태평리라는 지역의 금강 둑에 자동소총을 거치하고 전방 경계를 하고 있다.


금강 방어선의 미군 -  파괴된 금강의 다리
 


왜관 북방 고지에서 미군이 사살된 북한군의 사체를 보고 있다.

 마산 전선의 M24 채피 경전차

 다부동 전투에서 야간 강습을 했다가 파괴된 T34

 B29에서 북한군 병영에 투하되는 백린 연막탄


 한국군 부상자

 방열된 155mm 포


 미군에게 포로가 된 북한 간호병

 후송 대기중의 미군 부상병

 마지막 숨을 쉬는 미군 중상자 - 위생병은 그에게 고통을 덜어주는 몰핀을 놓아주는 외에 할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북한군에게 학살당한 미군포로 -그는 전날 다른 동료 네명과 함께 포로가 되었었다. 다섯명 전부 학살되었다.


 전선으로 출동하는 한국군


 폭격에  파괴된 두 T34

 미 해병 전차들의 화력 지원

 북한군 부상자를 포로로 했는데 소지품이 전부 미군 용품들이라 포로들을 죽이고 빼았은 것으로 판단하고 미군들이 격분하고 있다.


 미해병 M26전차에게 직격탄을 맞고 타오르는 T34

 1950년 포항 북쪽에서 적의 박격포 사격에도 불구하고 고지를 공격하고 있는 21연대 K 중대원.


 낙동강 전선에서 미 해병 지휘관 왼쪽이 전설적인 루이스 '체스티'풀러 대령, 과달카날에서 대대장으로 용명을 날렸고 장진호 전투에서 연대장으로 참전하였다.


 최전선에서 휴식없이 한달간 보낸 해병의 모습


 북진하던 미군들이 대전 형무소에서 발견된 수천구의 학살시체. 이중 40구는 미군 포로들의 것이었다.

월미도

 레드 비치의 상륙작전

 경인 가도에서 소이탄에 전소해버린 T34 옆을 지나가는 미군


 행주 나루를 도강하는 미 해병들의 LVT. 행주산성 고지에서 북한군이 쏴대는 포탄이 주변에 낙하하고 있다.

영등포에 진입한 미 해병대

 한강다리를 내려다보는 흑석동 고지를 점령한 미 해병

 도강한 미 해병대는 수없는 거리 바리케이드를 돌파하여야 했다. 북한군이 서울 시민을 동원하여 며칠사이에 설치한 것이다.

 미군들이 주민의 신고로 북한군 일개 분대가 숨어 들어갔다는 배수구를 공격하고 있다.

 해병 1사단장 스미스 소장에게 성공적인 상륙 작전을 치하하는 맥아더 사령관- 스미스는 속기사 자격증도 있는 학자풍의 장군이지만 인천과 장진호에서 큰 전공을 세웠다.


 인천을 통하여 대단한 물량이 쏱아져 들어왔다. 쾌속 수송선 완턱호가 장비와 해병을 싣고 인천항으로 향하고 있다.

 계속 북진 -1950년 10월  황해도 금천을 통과하는 미 1기병사단

 10월 사리원 북방,영 연방군의 공격

 한 과수원에 고립된 영국군 부대를 구하기 위해서 미군 영국군 호주군이 작전회의를 하고있다.

 한민족이 겪은 비극 - 교전중에 유탄을 맞은 엄마가 죽자 포대기의 아기가 나와서 울고 있다.


 대동강을 건너는 미 1 기병사단

 신안주에서 청천강 하구를 도강하는 영국군 미들섹스 연대 병력

 38선을 넘은 한국군 3사단


 미 7사단 17연대
혜산진에 최초로 도착한 소대

 압록강을 건너 한국 전선으로 투입되는 중공군 병력


 중공군의 공격

 운산에서 매복하고 미군이 오기를 기다리는 미군

 포로가 되는 미군들 - 오른쪽의 중공군은 영국제 스텐 기관단총을 왼쪽은 일제 38식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다.

 1950년 11월 짚차를 타고 탈출하다가 포로가 된 미군 장교.

중공군 124사단장 린치양의 작전지휘.
이 사단은 한국군 연대를 격파하고 추격하다가 수동에서 미해병대의 매복에 절반의 병력이 궤멸되었다. 이 사단은 다시는 한국전선에 나타나지 않았다. 초전에 중공군을 이긴 미군은 해병부대가 유일했다.
 

 9병단장 송시륜은 이 피해에 분격해서 모든것을 걸고 장진호에 들어온 미 해병1사단을 섬멸시켜버리기로 결심한다.

 1950년 11월 장진호 방면으로 진입하는 해병대

중공군의  깊숙한 포위망에 걸려든 유담리의 해병들 - 휴식겸 대기중

 제일 어려웠던 유담리 - 하갈우리 구간을 돌파하는 미 해병대원. 검은 네이팜 연기속에 콜세어기가 보인다.


 콜세어기의 네이팜 폭격과 미 해병의 착검 돌격준비 - 도로 봉쇄를 뚫는 공격의 연속으로 미 해병은 탈출했다.


 미 해병 사단 사령부가 있었던 하갈우리의 간이 비행장에 비상 착륙한 해병대 콜세어기

 고토리로 철수하는 미 해병부대 -  분산되었던 사단병력이 하갈우리에 집결할수 있어서 위험한 순간은 넘겼지만 아직도 갈길이 남아있다.

고토리에서 길을 다시 봉쇄 당한 미 해병이 도로가 뚫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장진호에서 탈출해 나오는 미 해병대를 반대편 흥남쪽에서 지원나간 3사단이 진흥리에서 자주포로 지원사격을 하고있다.

후위를 맡았던 미 육군 3사단의 승선 - 최후의 수송선이다.

 흥남항 전경


마지막 수송선이 출발하고 폭파되는 부두


미군들을 몰아부치는 중공군의 운산 2차 전역

청천강을 넘어 후퇴하는 탱크들 - 포가 후방으로 향해 있으면 그것은 철수하는 기갑부대다

중공군의 평양 입성

삼팔선을 넘어서 횡성까지 공격해온 중공군


지평리에서 미군과 프랑스군을 공격하는 중공군

미군의 반격, 리퍼작전 - 한강을 건너는 미 전차부대

다시 탈환한 수도 서울

서울에서 후퇴하는 중공군을 함정에 몰아 넣기 위해서 문산에 기습투하되었던 187공정 연대- 중공군은 미리 퇴각해서 작전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제 5차 전역에서 큰 피해를 입고 후퇴한 영국군이 재정비하고 있다.

호주군 비행장을 찾아온 한국 꼬마 손님 - 미티어기 엔진에서 촬영


 5차전역[춘계공세]- 1951년 5월 20일 소양강을 도강하는 중공군

중공군 패장[소대장]의 작전 명령 설명


5차 전역에서 가평에서 퇴각하는 유엔군을 추격하는 중공군

B26 폭격기의 네이팜 공격 - 중공군 5차 전역

1951년 마량산에서 중공군 포로가 된 영국 스코트연대 영국병들

철의 삼각지대에서 적 참호를 공격하는 미군 3사단 장병들

펀치볼의 미군 저격수

펀치볼 원경

중공군 최고 저격수
214명 사살한 장 타오 팡 전사

한국전쟁 최고 에이스 - 16기 격추의 멕코넬 대위


15기 격추의 자바라 소령[오른쪽], 14.5기 격추의 페르난드 대위[왼쪽]

미 25사단 벙커 - 고지 후면에 구축됨 80%가 지하화됨

미 7사단의 75mm 무반동포 사격

불시착한 호주 무스탕기 - 
호주 공군은 개전초 부터 한국전 참전

중국의 미그기 조종사 - 야간 출격 직전인듯
 

일본 후송 대기 의무실의 미 간호장교 마가리트 대위


T-6 모스키토 기의 표적지시 - 크로포드 대위 조종

미 해병이 방탄 조끼에 박힌 포탄을 빼보이고 있다.

미 해병대의 헬리콥터 고지 이동 -
한국전쟁때 헬리콥터가 최초로 전투에 활용되었다.


북한은 러시아의 도움으로 원산만에 2,000개의 기뢰를 설치했다.

한국 해군 소해정 YMS 점[동급 세척 침몰]촉뢰에 의한 폭발

흑인으로만 구성된 24연대의 미군 포로

미군의 박격포 진지

중공군에게 노획된 미군 유기 M46

해병대가 개발한 2인용  조립식 벙커
1해병사단 바르 준장이 살펴보고있다.

호주가 개발한 소이 로케트 탄을 발사하는 미티어기 - '호줏기'로 불렸다. 이 신무기는 다발로 화재가 발생하게 하는 위력이 있었다.


휴전회담이 열렸던 개성 선교장 - 과거 요정이었다.


휴전 회담이 열리던 개성시











양구 `펀치볼' 해안분지





- 펀치볼 마을 -

이 지역은 현재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으로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민간인 출입통제선 안에 위치한 면(面)이며 이 일대는 6.25전쟁 당시의 펀치볼 전투, 도솔산 전투, 가칠봉 전투가 벌어졌던 격전지 입니다.

사진에서 보듯이, 마을을 둘러싸고 높은산들이 둘러서 있어서 가운데 쏙 들어간것이 펀치볼 그릇과 닮았다 하여 6.25때 미군 종군기자가 펀치볼이라 해서 지금까지도 그렇게 불리운다죠~





화강암이 전국토의 30% 이상을 덮고 있는 우리나라는 화강암으로 이뤄진 분지가 많다. 서울의 4대문안을 비롯해 경기도 양주 덕정, 강원도 춘천, 충북 충주.옥천.제천, 충남 삽교, 전남 광주, 경남 진해.방곡 등이 대표적인 화강암 분지로 그 수는 남한에만 줄잡아 1백개에 이른다.

이들 화강암 분지 가운데 규모는 크지 않지만 분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둥그런 접시 모양을 하고 있는 곳이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이른바 해안 분지다. 면 전체가 하나의 분지인 이 곳은 평균 1,000m에서 1,100m의 높은 산지로 둘러싸인, 둥그런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분지바닥은 해발 450m 내외로 깊게 패어 있다. 따라서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거대한 가마솥이나 커다란 접시 모양을 연상케 한다.

이런 생김새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 바로 `펀치볼'(Punch Bowl)이다. 한국전쟁을 취재하던 외국 종군기자들이 분지의 모양을 보고 붙였다는 이 말은 포도주에 과일 등을 섞은 `펀치'라는 칵테일을 담는 그릇이라는 뜻이다. 이 이름은 해안이라는 공식적인 지명보다 오히려 더 많이 알려진 지명이다.

펀치볼이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 이 분지는 형태가 특이할 뿐 아니라 지질구조도 특이해 분지가 만들어진 원인을 둘러싼 논란이 끊임없이 일고 있다.

강원대의 원종관.이문원 교수(지질학) 등 지질.지형학적으로 접근한 학자들은 대부분 분지를 구성하고 있는 암석들이 풍화와 침식을 견뎌내는 강도가 달라 만들어진 차별침식분지로 보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이병호 교수(원자력공학)는 분지의 형태에 착안해 운석이 떨어진 운석충돌분지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인제군 원통에서 소양강 지류를 따라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다 서화리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꺾은 뒤 나즈막한 언덕 사이로 난 골짜기(당물골)를 돌면 갑자기 넓다란 평지가 펼쳐진다. 평균고도 700~800m에 기복이 심한 전형적인 산악지대 속에 자리잡은 이 넓은 평지가 바로 해안분지다.

분지의 북쪽 외곽을 이루는 을지전망대에 올라 해안을 내려다보면 분지의 윤곽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발 1,049m 고지인 이 전망대 능선을 따라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가칠봉(1,242m), 대우산(1,178m), 도솔산(1,147m)과 남쪽으로 마주보이는 대암산(1,304m) 등에 둘러싸인 이 분지는 남북7.5km, 동서 5.5km로 면적은 44.7km^2에 이른다. 면적 7km^2인 서울 여의도의 6 배가 넘는 규모다.

분지의 바닥을 덮고 있는 것은 배수성이 좋은 마사토로 이 토양의 두께는 지역주민들의 관정시추 등을 종합할 때 20~45m 정도일 것이라는 게 이 지역을 연구한 육군사관학교 화랑대연구소쪽의 분석이다. 아울러 분지 바닥에는 높은 산지가 이어지는 서북쪽 산사면에서 당물골쪽으로 마치 거인이 손가락을 펴고 있는 것 같은 형상의 작은 구릉들이 뻗어 있다.

분지 외곽 산지와 분지 바닥 사이의 경사도 큰 차이가 있어 해발 600~700m를 경계로 경사가 급변한다. 위쪽은 평균 20도에 이르지만 아래쪽은 5도정도에 불과하다.


이 분지가 만들어진 원인을 차별침식으로 해석하는 지질.지형학자들의 주된 근거는 지질분포와 분지의 외벽이 당물골쪽으로 터진 지형이다. 해발 600~700m 이하의 분지 바닥을 이루고 있는 것은 중생대 쥐라기말(1억8천만년전~1억3천만년전 사이)에 지각을 뚫고 올라온 것으로 추정되는 화강암인 반면, 분지의 바깥벽을 형성하는 높은 산지는 한결같이 선캄브리아기(5억7천만년전 이전)의 변성퇴적암으로 이뤄져 있다.

땅속 깊은 곳에서 만들어진 화강암은 지표상에 드러나면 구조적으로 불안정해지기 때문에 변성암에 비해 빗물 등에 의한 화학적 풍화에 약하다. 따라서 주변 변성암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침식을 받아 낮은 지역을 이루게 됐다는 것이다.

분지 바닥을 이루고 있는 화강암이 대부분 풍화된 마사토 상태로 존재할 뿐 신선한 화강암 조각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나 변성암과 화강암이 만나는 부분을 경계로 경사도가 급변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또 당물골쪽으로 분지의 바깥벽이 터져 있는 점도 차별침식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 당물골로 모여 소양강으로 흘러드는 물이 풍화의 주된 요인이라는 것이 원종관 교수의 설명이다.


반면 운석이 충돌해 만들어진 분지라는 이병호 교수의 주장은 주로 분지의 형태를 근거로 하고 있다. 즉 분지 가운데 상대고도 100m 이내의 낮은 구릉이 존재하는 것이 운석충돌의 흔적이라는 것이다. 운석이 지표면에 충돌하면 원래의 기반암이 깨져 사방으로 흩어지지만 바로 위로 솟아올랐던 파편들은 다시 그 자리에 떨어져 소복이 쌓여 구릉을 형성하는데 해안분지 안의 작은 구릉들이 바로 그것이라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 교수의 운석충돌설은 분지의 형태에 착안한 가설일 뿐 과학적 근거가 빈약해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대부분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해안분지는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민통선 북방의 면이라는 지역적 특성에 따른 제약이 많아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아직 분지의 생성원인에 대한 여러 의문들이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은 곳이다.

http://epma.snu.ac.kr/keewook/tour/15.htm




















● 해안의 역사 발굴에 관한 참조










http://www.dmook.co.kr/gallery/view.asp?seq=157506&path=110607114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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