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istory/삼국시대

1. 신라와 백제의 국운을 가른 관산성전투

관산성 전투의 결과는 훗날 삼국의 전쟁에서 가장 뒤쳐졌던 신라가 최후의 승자가 되는 단초가 되는 그런 전투였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관산성 전투에 대한 기록은 너무도 미미하다.


시간을 거슬러 성왕 32년, 서기로 하면 554년 지금의 옥천으로 우린 시간여행을 해본다.

금강의 지류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갈라선 산봉우리에선 백제와 신라의 장병들이 서로를 주시하면서 경계를 하고 있다. 벌써 1년째 이곳 관산성일대에서 서로 밀로 밀리는 상황으로 치열한 접전을 치루고 있었다. 이 전투에서 백제는 왜와 가야와 연합군을 만들어서 신라를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다.


환산(고리산성), 이백리산성, 식장산의 백제군과  
관산성과 서산성 및 옥천 일대의 신라군은 오늘날 휴전선처럼 대치하고 있었다.


장면 1 백제 성왕 진영

성왕 : 지금 전선의 상황은 어떤지 보고해 보라.

신하 : 대왕마마. 아뢰기 황송하오나 상황이 좀 좋지 못한 것 같습니다.

성왕 : 상황이 좋지 않다고?  얼마전까지만 해도 우리 백제가 신라를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고 들었는데 상황이 좋지 않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게다가 왜와 가야병력까지 우리가 동원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가 불리할 턱이 없지 않느냐? 우리가 병력이 많아도 더 많을텐데 뭐가 어찌 된것이냐? 
 
신하 : 그러니까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우리 백제,가야,왜 연합군 내에서 알력이 생겼다고 합니다.

성왕 : 아니 알력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우리 백제 장수들과 왜, 가야 지원군 사이에 알력이 생기다니 자초지종을 좀 자세히 말해 보거라.

신하 : 대왕마마. 문제는 세자인 “부여 창”왕자가 몸져 눕는 바람에 그런 것으로 들었사옵니다.

성왕 : (깜짝 놀란 표정으로) 뭐시라고? 세자인 부여 창이 몸져 누워? 어디 다치기라도 했단 말이냐?

신하 : 다치신건 아니옵고 오랜 행군과 전투로 몸살이 난 것 같다고 합니다.

성왕 : 그래? 다행이구나. 하긴 벌써 몇 달째 끌고 있는 전투중에 이곳 저곳 행군하고 지휘하느라고 몸살이 날만도 하겠구나. 세자로서는 이번이 첫 번째 전투지휘인데 내가 미쳐 그걸 생각지 못했구나“

신하 : 이번엔 좀 오래 끄는거 같습니다. 예전같았으면 벌써 일어나셨어야 하는데...

성왕 :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으음. 그래서 부여 창이 몸져 눕는 바람에 백제군 왜군 가야군 사이에서 조율이 제대로 안 된 게로구나.

신하 : 저도 그렇게 생각이 드옵니다. 이번 전투에 원로귀족들이 사실 반대가 많지 않았사옵니까?

성왕 : (또 다시 생각에 잠긴다. 속으로 이렇게 되네인다) 으음.. 앗뿔사.. 내가 걱정하던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어린나이에 나이많은 원로 장수들과 타국의 군대까지 통솔하려면 아마도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텐데 그래서 몸살이 난 거야.... 게다가 이번이 처음 출전이고.. 으음.. 내가 좀 등한시 했구나.. 그러면 어쩐다.. 으음.. 세자의 위상이 흔들리면 문제가 더 커질텐데.. 지금 동맹군간에 사이가 벌어지면 문제가 복잡해지는데... 으음.. 이를 어쩐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가 봐야겠는데..)

성왕 : (단호한 어조로) 여봐라. 기보병 50명을 출동 준비시켜라. 내가 직접 세자 진영으로 가 봐야겠다.

신하 : 아니 곧 날이 저무는데 지금 바로 가신다는 말씀입니까? 내일 가셔도 될것 같습니다.

성왕 : 아니다 한시가 급하다. 옛말에 부모의 보살핌이 적으면 자식이 병이 난다 하지 않았더냐. 여기서 멀지도 않으니 말이 나온김에 바로 가봐야 겠다.

신하 : (걱정어린 눈빛으로) 그래도 여긴 최전방 전선인데 괜찮겠사옵니까?

성왕 : 괜찮다. 이런 전투가 어디 한두번이었더냐. 지름길로 가면 문제 없다. 지리에 익숙한 병사와 기병합해서 50명까지 대동하는데 무슨 걱정이냐? 그리고 여긴 우리 백제진영이고 신라군은 강건너 성안에 있을터인데 뭐가 문제라고 걱정할 것 없다. 빨리 서둘러라.


장면 2 신라진영

신라병사1 : 이번 전쟁은 엄청시리 크네. 신라군 전체가 여기로 천지빼까리로 다 모이네

신라병사2 : 말 말어. 코밑에 솜털만 나도 다 창들고 나오게 된거라잖어.

신라병사1 : 참말이가?

신라병사2 : 말도 말어. 백제는 이번에 왜놈들하고 가야놈들까지 끌어들였다던데

신라병사1 : 진짜가? 내가 왜놈들하면 이가 갈린다 아이가. 근데 가야는 우리 신라에 들어왔는데 백제한테도 갔다고? 그게 무슨 소리고?

신라병사2 : 무식하긴 짜슥아. 우리 신라에 안들어온 가야놈들도 있다 아이가.

신라병사1 : 그럼 가야는 백제하고 신라하고 싸우는데 양쪽에 같이 있는기네

신라병사2 : 불쌍한기지. 나라잃고 힘없으면 그렇게 되는기지 머. 대신에 이번에 우리가 지면 가야는 다시 일어서는기라.

신라병사1 : 그래도 우리한테는 "김무력 장군(김유신 장군의 할아버지)" 이 있다 아이가. 듣자하니 김무력장군이 가야출신이라데, 싸움엔 아주 귀신라고 하던데 그말 니 아나?
 
신라병사2 : 용케 그말은 어디서 들었노? 그래서 왕이 김무력 장군을 한강 신주에 군주로 임명했다 아이가. 아마도 이번에도 김무력장군은 뭔가 꿍꿍이 속이 있을게다.

신라병사1 : 김무력 장군 완전히 출세해삣네. 근데 무슨 꿍꿍이속이 있겠노? 그저 닥치고 돌격앞으로 하면 우린 그저 죽을똥 살똥 모르고 가면 되는기지.

신라병사2 : 아이구 이 화상아. 그래 니는 천상 군발이 체질이다. 체질.

신라병사1 : 웃기고 있네. 니는 군발이 아이가? 사돈 남말하고 앉았네, 그래 꿍꿍이 속을 니는 안단 말이가? 말해봐라.
 
신라병사 2: 니 삐짓나. 하하. 내가 볼땐 아무래도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한게 말이야, 백제군에 있는 가야군에게서 뭔가 빼온 거 같아 보인단 말이야.

신라병사 1 ; 그게 뭔 소리고 좀 자세히 말해보거레이

신라병사 2 : 그러니까 말이야. 김무력 장군이 가야왕손으로서 신라로 귀순해서 지금 출세했다 아이가. 그걸 백제쪽에 있는 가야군도 분명히 알고 있을거니까 그 중엔 분명히 김무력장군에게 줄 연결하려는 사람이 있지 않겠어?

신라병사 1 : 듣고 보니까 글네. 니 머리 억수로 좋네. 근데 뭐하러 이렇게 병졸하고 있노? 장군하지 하하핳.

신라병사 2 ; 이 문디자슥 마 니 쥑이뿐다. 마.

신라병사 1. : 농담이다 농담. 헤헤헤. 우리는 언제쯤 출세 해 보겠노? 근데 천민하고 노비까지 왜 동원했는지도 아나?

신라병사2 : 이노마야. 인생은 한방이라는 말도 모르나? 인생은 한방 아이가.

신라병사1: 그게 뭔 소리고?

신라병사2: 이 자슥 진짜 귀 어둡네 . 귀 막고 사나? 이번엔 전투에서 공만 세우면 천민노비라도 장군도 시켜주고 한다는 소리 못들었나?

신라병사1 : 참말이가. 나도 이참에 한번 공을 세워 볼까?

 

장면 3  신라진영

신라장수 : 여기서 관산성까지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을 아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거라.

도도 : 장군님 제가 관산성까지 가는 지름길을 알고 있사옵니다.

신라장수 : 그래. 그거 잘 되었구나. 그래 넌 어떻게 길을 잘 아느냐?

도도 : 여기 삼년산성에서 먹고 자라고 하면서 이곳 지리는 훤합니다.

신라장수 : 그래? 여기서 넌 무슨 직책을 맞고 있느냐?

도도 : 군마 관리를 담당하고 있사옵니다.

신라장수 : 군마관리라. 그럼 말도 잘 타겠구나? 잘 됬구나. 오늘 바로 이동준비를 해라. 신주의 김무력 장군의 명령이 떨어졌는데 한시가 급하다.

도도 : 그런데 장군님 우리보고 여기 삼년산성만 잘 지키고 있으면 된다고 했는데 갑자기 왜 관산성으로 이동하라는 것이옵니까?

신라장수 : 아마도 김무력 장군이 무슨 첩보를 입수한 모양인게다.

도도 : 장군님 첩보라니요?

신라장수 : 이리 가까이 와 보거라, 우린 지금 백제 성왕을 잡으로 가는게다.

도도 : (깜짝 놀라며) 백제 성왕을요? 우리가 무슨수로 백제 성왕을 사로잡는단 말입니까?

신라장수 : 왜 무섭느냐? 놀라긴 뭘 그리 놀라느냐?

도도 : 무섭긴요. 그런데 만약 제가 잡는다면 뭐 상금이라도 있는 것이옵니까?

신라장수 : 암 . 있다 마다. 만약에 네가 사로잡는다면 바로 그날부터 너같은 말을 사육하는 직책에서 바로 장수자리로 옮길 수 있을게다. 김무력 장군님께서 이번 전쟁에 공을 세운 자는 천한 노비라 하더라도 상을 후히 내리고 신분을 높여주리라고 천명을 하셨느니라

도도 : 아 그렇사옵니까? 제가 다른 건 몰라도 길은 훤하니까 안내를 해 드리겠사옵니다.

 
장면 4

삼년산성에 주둔하고 있던 신라군은 하루를 꼬박달려서 구천에 자리를 잡았다.

뒤로는 신라가 탈환한 관산성이 자리잡고 있고 앞으로는 금강의 지류가 굽이치면서 흐르고 있다. 금강지류를 넘어선 바로 백제진영이다. 백제는 강 건너 산골짜기마다 주둔하고 있고 산 꼭대기마다 보루성엔 또 다른 백제 군과 왜군이 주둔하고 있다.

최근 얼마간은 백제군의 공격이 뜸한 상태이다. 그것은 백제군을 통솔하고 있는 태자 부여 창이 몸져 드러눕는 바람에 지휘가 제대로 안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백제와 연합하여 신라를 공격하러 온 왜와 가야군도 점점 지쳐가고 있다.

반면에 신라는 초반 열세를 극복하고 전국 각지에서 추가병력이 속속 관산성으로 집결하고 있다. 특히 한강 신주에 주둔하고 있는 김무력장군 부대까지 이동하는 상태이다. 김무력 장군은 백제진영에 속해 있는 가야군에 이미 연을 닿아 있기에 백제군의 동향을 한 눈에 꿰뚫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던 중 매우 중요한 정보를 김무력장군은 입수했는데 그것은 바로 백제 성왕이 부여사비에서 이곳 최전선으로 와서 전선시찰을 한다는 첩보였다. 그래서 김무력장군은 휘하의 전부대에 영을 내려서 이곳 관산성에 집결을 명한 상태이다.

그 명령으로 삼년산성에 주둔하고 있던 신라군도 급히 이곳 관산성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 신라군에 도도가 소속이 되어 신라군을 관산성까지 가는 가장 빠른 길로 안내하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 삼년산성에서 관산성으로 오자면 지금의 17번 국도를 따라서 현재 경부고속도로의 금강휴게소쪽을 지나와야 했다. 옥천군 청성면과 청산면은 삼국시대 신라군의 주 병력이 주둔하였던 곳으로서 현재 신라의 토성 흔적이 산봉우리와 골짜기 마다 남아 있다. 그래서 현재 지명도 청산면이다.

그러나 도도는 빠른 지름길로 오려고 현재의 37번 국도를 택한 것이다. 37번 국도는 옥천과 보은을 바로 잇는 지름길이다. 대청호를 따라 돌다가 강을 건너서 고개를 넘어오면 바로 옥천이다. 도도가 택한 길이 바로 이곳으로 추정된다. 이 길을 오면 신라 진영과 백제진영 사이를 가로 질러서 구천에 이르는 길이다.


도도 : 요 고개만 넘으면 옥천 관산성이 나올겁니다.

신라장수 : 내 말대로 오니까 생각보다 빨리 온 거 같구나.

도도 : 헤헤. 고맙사옵니다. 저기 아랫마을 청성면으로 돌아오면 하루로는 힘듭니다. 그런데 이길로 오면 좀 힘은 들지만 시간을 거의 하루는 앞당길수 있기에 이길로 왔사옵니다.

신라장수 : (손을 들어 멀리 지형을 살핀다) 어디 지형을 보자꾸나. 저기게 좋겠구나. 도도야 저곳이 어떻겠느냐?

도도 : 저곳이 구천이라고 하는 곳이옵니다. 물길이 굽이쳐 돌아가는 데 저 안쪽은 평평한 곳도 있는데 밖에선 절대 안보이는 곳이옵니다.

신라장수 ; 좋다. 저곳에 오늘 주둔하도록 한다.
 
도도가 자리잡은 곳이 지금의 궂은 벼루이다. 금강이 굽이쳐 돌아나가는데 절벽으로 둘러 쳐져 있는 곳이다. 신라진영에선 백제진영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지만 백제진영에선 이곳 안쪽을 볼 수가 없는 아주 절묘한 곳이다. 그리고 그 곳 뒤로는 바로 신라의 관산성이다.

여차하면 관산성 뒤쪽에 주둔하고 있는 신라군의 지원을 바로 받을 수도 있는 곳인데 바로 이곳을 가야군이 공격을 수차례 시도했지만 사상자와 많은 군마를 잃고 물러난 곳 이기도 하다. 그래서 관산성과 궂은벼루, 즉 구천을 연결하는 나지막한 고개 근처엔 지금도 말무덤 터라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신라장수 : 오늘 우리는 여기서 주둔한다.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마라. 백제성황이 전선을 시찰하면서 이동하는 주 통로가 바로 강 건너라는 첩보이다. 언제든지 출동할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도록 하라.

이윽고 땅거미가 지고 관산성 위로는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달빛에 어늘 거리는 금강줄기는 신라와 백제의 경계선을 더욱 또렷이 보여주고 있다. 적막감이 감도는 바로 이곳에서 정적을 깨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온다. 순간 신라진영에선 모두가 동작그만하고 적막을 깨는 곳에 모두 귀를 기울였다.

분명히 말발굽 소리다. 말을 관리하는 직책인 도도는 그 소리만으로도 말의 머릿수를 헤아렸다.
 
도도 ; 장군님. 말발굽 소리로는 아무리 많이 잡아도 50을 넘지 않는듯 합니다.

신라장수 : 오. 그래? 그렇다면 강을 건너서 저 자들을 사로잡을수도 있겠구나. 아마 저들은 우리가 여기에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오는 것이 분명할게다. 일시에 달려들어서 사로잡도록 해라. 어쩌면 저 무리에 백제왕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명심하도록 하라.


한편 백제왕은 강 건너 궂은벼루에 신라군이 매복하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평상시와 같이 친위호위병력 50여명만을 대동하고 태자 부여 창의 진영으로 있었다.

그러나 궂은벼루는 금강이 굽이쳐 돌아가면서 생긴 곳이라서 백제 진영 깊숙이 돌출한 진영이다. 궂은벼루라는 말 자체도 굽은벼랑이라는 옥천지역 사투리이다.
 


장면 5 

달빛에 어린 금강줄기를 따라서 백제 태자 부여창의 진영으로 가던 백제성왕 앞에 갑자기 함성이 들려온다.

와~ 와~

성왕 : 아니 이게 무슨 소리냐?

호위장수 : 대왕마마 복병인 것 같사옵니다.

성왕 : 복병이라니. 여긴 우리 백제진영아니더냐?

호위장수 ; 그러게 말입니다. 대왕마마 뒤로 물러나 주시옵서서.

(백제호위병력은 백제성왕을 둘러싸고 신라군과 맞서 싸운다)

전투중에 신라군은 백제호위병력이 백제성왕을 보호하려고 안간힘을 쓰던 백제군을 손쉽게 제압했다. 백제호위병력은 죽거나 사로잡히고 백제 성왕의 측근인 문관들은 아무 힘도 되지 못하고 신라군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신라군은 이내 그들이 바로 백제성왕을 호위하던 병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백제왕 앞으로 신라장수가 다가갔다.

신라장수 : 대왕마마 백제왕을 여기서 만날줄은 저도 꿈에도 몰랐습니다.

백제성왕 : 무엄하구나. 네 이놈. 네 어찌 백제땅까지 침범하고도 이렇게 무례할 수가 있느냐?

신라장수 : 허허. 그렇사옵니까? 지금 우리 신라군에게까지 백제왕이 왕일순 없다는 거 모르옵니까? 신라땅을 먼저 침범한 것이 백제가 아니었습니까? 여봐라 백제왕을 포박토록 하라.

신라장수는 급히 전령을 관산성의 신라본진에 보내고 백제왕을 사로잡았음을 알리고 그 처리방안을 요청하였다. 그러자 회신은 목을 베고 머리는 신라본진으로 보내고 몸둥아리는 백제진영으로 보내라는 명을 받게 되었다.

신라장수 : 백제대왕마마. 이럴 어찌하옵니까? 저는 대왕마마에게 아무 사심이 없사옵니다. 그저 명을 받아 수행할 뿐이오니 그저 너그럽게 봐 주십시오.

순간 이곳 구천까지 안내한 도도가 신라장수 앞에 나선다.

도도 : 청이 하나 있사옵니다.

신라장수 ; 도도가 아니더냐 그래 청이 무엇이냐

도도 : 백제왕의 목을 제가 벨수 있도록 청하옵니다. 제가 이곳까지 이끌었고 천한신분으로서 백제왕을 베는 공을 세우고 싶습니다.

신라장수 : 오 그래? 네말도 일리가 있구나. 천한신분으로서 나라를 위해서 공을 세우고 게다가 백제왕까지 벤다면 그이름은 대대손손 만천하에 떨치고 귀감이 될 듯하구나. 그러면 그렇게 하도록 하라.


그러자 삼년산성에서 군마를 관리하던 도도는 백제성왕앞으로 나아가 두 번 큰절을 올리는 예를 하고 목을 베기를 청하였다. 이말을 들은 백제왕은 포박된체로 아주 격노하면서 눈에 핏발까지 서면서 말한다.

성왕 : 네 이놈. 감히 천한 사마노 주제에 나를 베겟다고 ? 감히 어디서 나서길 나서느냐 ?

도도 : (살짝 얼굴에 미소까지 띄우면서 침착하게 말한다) 대왕마마 그렇게 노여워 마시옵서서. 우리 신라에서는 왕이라 할지라도 약속을 어기면 천한노비한테라도 죽을 수 있사옵니다. 약속을 어기고 신라땅을 먼저 공격한 것은 바로 백제 대왕마마 자신이 아니옵니까? 아니 그렇사옵니까? 마지막으로 천한 제가 공을 세울 수 있도록 대왕마마께서 도와주시면 아주 황송하겠나이다.

성왕 : (몸부림 쳐도 소용없음을 알고 체념하면서 말한다) 그렇다면 나도 마지막으로 하나 청이 있다.
 
도도 : 말씀해 보시지요.

성왕 : 내 허리에 찬칼로 베어 주길 바란다. 내가 자결은 못하더라도 차마 너 같은 노비의 칼에 죽을 수는 없지 않겠느냐. 안그러냐. 내칼로 내 목을 쳐 주기 바란다. (그러면서 목을 늘어트린다)

도도 : 알겟사옵니다. (백제 성왕의 허리에서 보검을 꺼내든다. 그칼은 그 유명한 백제왕의 환두대도이다) 대왕마마 잘 가시옵서서 에잇.

신라의 비장 고간 도도가 휘두르는 백제 성왕의 용봉환두대도가 구진베루의 차가운 밤 바람을 가른다.

순간 성왕의 목줄기에선 붉은 피가 분수처럼 숫구쳐 오른다. 땅에 떨어진 성왕의 얼굴에선 핏발 선 두눈은 부릅뚠채 그대로이다.

그렇게 성왕 32년 서기로는 554년 관산성이 올려다 보이는 옥천의 궂은벼루에서 백제 성왕은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이상이 여러 역사기록을 종합해서 간단하게 구성해본 백제 성왕의 비극적인 죽음의 현장 모습이다.

백제 성왕의 할아버지인 개로왕이 고구려의 장수왕에 사로 잡혀서 아차산성 밑에서 참수되고 나서 불과 100여년이 지난 시점에서 개로왕의 손자인 성왕은 그렇게 비극적 종말을 고했다.

성왕이 어떤 인물인가? 개로왕때 고구려 장수왕의 침공으로 한성의 땅을 잃고서 절치부심한 백제 성왕아닌가? 신라와의 나제동맹을 통해서 한성백제의 옛땅을 어렵사리 회복하였으나 신라에게 빼앗기고 말았으니 그의 신라에 대한 복수심은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으리라.

그런데 성왕의 할아버지인 백제 개로왕도 장수왕의 침공으로 지금의 아차산성밑에서 참수되는 비극을 겪었는데 그 손자인 성왕도 그와 같은, 아니 그보다 더한 참극을 맞이하였으니 3대에 걸친 비극은 15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들에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역사의 이면에는  가리워진 것이 더 있었으니 ............




위 그림과 지도를 보면 자연스런 의문이 생기는데 그것은 신라군이 포진하고 있었다는 관산성 바로 앞인 구천(궂은벼루)에서 백제성왕은 신라군에 사로잡혀서 죽게 되는데 어쩌다가 달랑 보기병 50명 만 거느리고 신라군이 포진하고 있는 관산성 바로 코앞을 이동했는지 군사적 시각에서 보면 그 연결성에 이해 못할 부분이 너무도 많다.


제26대 성왕<聖王  523~554  재위기간 31년>

성왕의 이름은 명농이니 무령왕의 아들이다. 지혜와 식견이 뛰어나고 일을 처리함에 결단성이 있었다. 무령왕이 붕어하고 왕위에 오르자 백성들이 성왕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삼국사기에 기록된 백제 성왕의 기록을 살펴보자


1-1 삼국사기 본기 백제 성왕의 기록

1년 가을 8월, 고구려 군사가 패수에 이르자 왕이 좌장 지충에게 보병과 기병 1만 명을 주어 출전케 하니 그가 적을 물리쳤다.

3년 봄 2월, 신라와 서로 예방하였다.

4년 겨울 10월, 웅진성을 수축하고 사정책을 세웠다.

7 년 겨울 10월, 고구려왕 흥안이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침입하여 북쪽 변경 혈성을 함락시켰다. 왕이 좌평 연모에게 명령하여 보병과 기병 3만 명을 거느리고 오곡 벌판에서 항전하게 하였으나 이기지 못했다. 사망자가 2천여 명이었다.

10년 가을 7월 갑진에 별이 비오듯 떨어졌다.

12년 여름 4월 정묘에 형혹성이 남두 성좌를 범하였다.

16년 봄, 도읍을 사비[소부리라고도 한다.]로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라고 하였다.

18년 가을 9월, 왕이 장군 연회에게 명령하여 고구려의 우산성을 치게 하였으나 승리하지 못했다.

19년, 왕이 양 나라에 표문을 올려 [모시(毛詩)] 박사와 열반(涅槃) 등의 의미를 풀이한 책과 기술자, 화가 등을 보내 주기를 요청하니, 양 나라에서 이를 허락하였다.

25년 봄 정월 초하루 기해일에 일식이 있었다.

26 년 봄 정월, 고구려왕 평성이 예와 공모하여 한수 이북의 독산성을 공격해왔다. 왕이 신라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였다. 신라왕이 장군 주진을 시켜 갑병 3천 명을 거느리고 떠나게 하였다. 주진은 밤낮으로 행군하여 독산성 아래에 이르렀는데, 그곳에서 고구려 군사들과 일전을 벌려 크게 이겼다.

27 년 봄 정월 경신에 흰 무지개가 해를 가로 질렀다.겨울 10월, 왕이 양 나라 서울에 반란이 일어났음을 알지 못하고 사신을 보내 조공하게 하였다. 사신이 그곳에 이르러 성과 대궐이 황폐하고 허물어진 것을 보고 모두들 대궐 단문 밖에서 소리내어 울었는데, 행인들이 이를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었다. 후경이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노하여 그들을 투옥하였다. 그후 그들은 후경의 난이 평정된 뒤에야 비로소 귀국하였다.

28년 봄 정월, 왕이 장군 달기를 보내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고구려의 도살성을 공격케 하여 이를 함락시켰다. 3월, 고구려 군사가 금현성을 포위했다.

31년 가을 7월, 신라가 동북 변경을 빼앗아 신주를 설치하였다.겨울 10월, 왕의 딸이 신라에 시집갔다.

32년 가을 7월, 왕이 신라를 습격하기 위하여 직접 보병과 기병 50명을 거느리고 밤에 구천에 이르렀는데 신라의 복병이 나타나 그들과 싸우다가 왕이 난병들에게 살해되었다. 시호를 성이라 하였다.

이것이 삼국사기 백제본기 성왕조에 전하는 기록이다.

순간의 방심이라면 방심이랄까 아니면 신라의 치밀한 공작이었을까 모를 일이지만 결과는 백제성왕의 무참한 죽음이었다. 아마도 백제성왕의 죽음은 우리 역사상 그 어느 군주보다 치욕적이면서 비극적이라고 할수 있을 게다. 여기에 비한다면 조선시대 인조의 3배구고도의 굴욕은 새발의 피에도 못 미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어떡하다가 백제성왕이 그런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삼국사기엔 그저 몇줄만이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앞서 표기한 바와 같이 삼국사기 백제본기가 전하는 기록은 성왕32년(554년) 가을 7월, 왕이 신라를 습격하기 위하여 직접 보병과 기병 50명을 거느리고 밤에 구천에 이르렀는데 신라의 복병이 나타나 그들과 싸우다가 왕이 난병들에게 살해되었다. 시호를 성이라 하였다. 라는 기록이 전부이다.

그렇다면 성왕과 동시대를 기록한 신라본기에는 어떻게 기록이 되어 있을까? 신라 진흥왕조의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관산성 전투가 벌어졌던 백제성왕 32년(554년)은 신라 진흥왕 15년에 해당한다.
 

1-2 삼국사기 신라 본기 진흥왕 15년 관산성 전투기록

진흥왕 15년 가을 7월

○ 十五年, 秋七月, 修築<明活城>. <百濟>王<明>與<加良>, 來攻<管山城>, 軍主角干<于德>·伊 <耽知>等, 逆戰失利. <新州>軍主<金武力>, 以州兵赴之, 及交戰, 裨將<三年山郡><高于都刀{高干都刀}> , 急擊殺<百濟>王. 於是, 諸軍乘勝, 大克之, 斬佐平四人, 士卒二萬九千六百人, 匹馬無反者.

명활성을 수리해 쌓았다. 백제 왕 명농이 가량과 함께 관산성에 쳐들어왔다. 군주인 각간 우덕과 이찬 탐지 등이 맞아 싸웠으나 불리하자, 신주의 군주 김무력이 주의 군사를 데리고 달려왔다. 교전하게 되자 비장인 삼년산군의 고간 도도가 급히 쳐서 백제 왕을 죽였다. 이에 여러 부대들이 승세를 몰아 크게 이기고, 좌평 네 사람과 사졸 2만 9천 6백 명을 베었으며, 말 한 필도 돌아가지 못하게 하였다.
 
참고로 가량<加良>이라고 표기된 것은 가야를 말한다.

백제와 신라의 운명을 가른 역사의 분수령인 관산성 전투에 대한 우리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삼국사기의 백제본기와 신라본기에서 전하는 기록은 이것이 전부이다.

그 반면에 일본서기엔 관산성 전투의 당시 상황을 보다 더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일본 서기의 내용은 차츰 말하기로 한다.


비극의  현장 구천 (궂은 벼루)


관산성에서 내려다 본 구천(구진베루, 구즌벼루) 전경
서기 554년 백제 성왕이 참수된 곳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구천(궂은벼루) . 관산성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바로 이곳이 궂은벼루라고 불리는 구천이다. 사진에 보이는 작은 마을엔 서기 554년의 역사가 그대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서화천이 구비쳐 내려가는 구진베루(구천)를 돌아가던 백제 성왕이 신라 복병에 사로 잡혀 참수된 현장이다.

역사기록엔 백제성왕이 554년 이곳 구천에서 신라의 복병에 사로잡혀 참수된 곳이라고 전하고 있다.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충북 옥천군 군서면 월전리에 위치해 있다.

약 30미터 높이의 깍아지른 절벽이 병풍처럼 이어지고 절벽 밑으로는 금강의 지류인 서화천이 굽이쳐 흐르고 있는 곳이다. 아마 당시에 저 벼랑뒤쪽에 신라군이 있었으리라고는 백제 성왕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봐도 저곳은 자연적인 요세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자연 해자인 서화천을 끼고 절벽으로 막혀있는 뒤쪽은 나지막한 구릉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아마도 신라군은 그 절벽뒤쪽에 주둔하였으리라 생각이들어서 현장을 확인해 보러 발길을 돌렸다.

그래서 저 절벽 뒤쪽으로 돌아 가보았다. 좁은 농로길을 어렵사리 찿아 가본 그곳에서 난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곳엔 아직도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옥천이라는 교통의 요충지를 유사시 지키기 위한 군부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신라군의 통찰력에 짐짓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관산성 바로 아래엔  오늘날도  국군이 주둔하고 있다. 


1500년의 장구한 시간이 하나도 변하지 않고 오늘 현재 그대로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부터 그 옛날 역사의 현장 모습이 내 머릿속에 조금씩 그려지기 시작했다. 마치 철책선 안쪽에 들어선 GP처럼 신라는 관산성을 뒤로 하고 백제군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이곳에서 주둔하였으리라 하는 짐작을 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과거 신라군이 주둔했음직 한 곳을 확인하고 다시 궂은벼루로 발길을 돌린다. 이번엔 성왕의 심정이 되 보기로 했다.
 


백제 성왕이 죽은 현장인 구천 (오른쪽 벼랑을 보고 궂은벼루라고 한다)
기록엔 성왕이 궂은벼루 아래서 죽었다고 전하고 있다.

성왕 32년, 서기로는 554년 이길을 따라서 멀리 보이는 백제의 산성으로 말을 달려가던 성왕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몸져 누운 아들생각에 바로 코앞에 신라군이 매복해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을리라. 아픈 자식을 눈앞에 둔 아비의 심정에 적군의 위협은 안중에도 없었을까?

하여간 바로 이 길은 그 옛날 백제산성으로 가는 길이었다.  나는 다시 타임머신을 타고 성왕32년으로 날라가 본다. 현재 이곳은 백제진영이다. 오른쪽 사진의 오른쪽에 안보이지만 구천(궂은벼루)라 불리는 벼랑밑으로는 서화천이 흐르고 있고 저 벼랑뒤쪽으로는 막 도착한 신라의 기동군이 자리잡고 있다.

신라는 백제성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전 병력을 이곳 관산성 일대로 집결시키고 있고 그에 따라서 삼년산성에 주둔하던 신라군이 바로 저 벼랑 뒤쪽 구릉에 막 도착해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던 백제 성왕은 그저 아들이 아프다는 소식에, 또 한편으로는 전황이 불리해지고 있다는 걱정에 그 수습책을 생각하느라 미처 신라군의 동향을 파악치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성왕은 이 길을 따라 약간의 호위병력 50여명과 함께 태자 부여창의 진영으로 가고 있었으리라 짐작해본다.

이런 백제 성왕 일행을 저 절벽위에서 보고 있던 신라군은 병력이 소수인 것을 알고 급히 요격부대를 풀었으리라. 날은 저물고 오직 성왕일행의 말발굽소리만이 계곡의 정적을 깨뜨리면서 저 길을 가고 있을 그때 신라병력은 매복하여 성왕의 일행이 지근거리에 오기까지 숨죽여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난데없이 사방에서 함성이 들리면서 신라군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을때 백제성왕은 얼마나 놀랐으랴? 청천벽력이 바로 이를 두고 한 소리일 것이다. 아들이자 태자인 부여창이 지키고 있는 산성을 눈 앞에 두고 순간의 방심에 허를 찔린 백제성왕의 눈앞엔 무엇이 어렸을까?

신라군에 의해서 목이 잘리는 모습을 궂은벼루는 하나도 남김없이 기억하고 있을텐데 아무 말이 없다. 성왕이 뿌린 붉은 피를 그대로 머금었을 구천의 벌판은 역시나 조용하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있은 그날의 사실을 역사는 위에서 본 봐와 같이 이렇게 전해주고 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성왕조 32년

32년 가을 7월, 왕이 신라를 습격하기 위하여 직접 보병과 기병 50명을 거느리고 밤에 구천에 이르렀는데 신라의 복병이 나타나 그들과 싸우다가 왕이 난병들에게 살해되었다. 시호를 성이라 하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조 15년

백제 왕 명농이 가량과 함께 관산성에 쳐들어왔다. 군주인 각간 우덕과 이찬 탐지 등이 맞아 싸웠으나 불리하자, 신주의 군주 김무력이 주의 군사를 데리고 달려왔다. 교전하게 되자 비장인 삼년산군의 고간 도도가 급히 쳐서 백제 왕을 죽였다. 이에 여러 부대들이 승세를 몰아 크게 이기고, 좌평 네 사람과 사졸 2만 9천 6백 명을 베었으며, 말 한 필도 돌아가지 못하게 하였다.


이에 비해서 일본서기의 기록은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흠명천황 15년 조의 기록이다.

명왕(明王)은 여창이 오랫동안 행국하느라 고통을 겪고 한참 동안 잠자지도 먹지도 못했음을 걱정하였다. 아버지의 자애로움에 부족함이 많으면 아들의 효도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생각하고 스스로 가서 위로하였다.

신라는 명왕이 직접 왔음을 듣고 나라 안의 모든 군사를 내어 길을 끊고 격파하였다...

"고도는 천한 노(奴)이고 명왕은 뛰어난 군주이다. 이제 천한 노로 하여금 뛰어난 군주를 죽이게 하여 후세에 전해져 사람들의 입에서 잊혀지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하였다.

얼마 후 고도가 명왕을 사로잡아 두 번 절하고 "왕의 머리를 베기를 청합니다"라고 청하였다.

명왕이 "왕의 머리를 노의 손에 줄수없다"하니,

고도가 "우리 나라의 법에는 맹세한 것을 어기면 비록 국왕이라 하더라도 노의 손에 죽습니다"...하여 참수당하였다.

 
백제 성왕의 목을 벤 고간 도도가 과연 천한 노비였을까?
 
관산성 전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은 백제 성왕의 이동경로에 있던 신라군이 성왕을 사로 잡고 참수형을 하는 장면이다. 그 장면에 대해서 삼국사기의 기록과 일본서기의 기록이 약간 차이를 보인다.

세부적인 장면 묘사는 일본서기가 더 세밀한데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볼 사항은 바로 백제 성왕의 목을 베는 고간 도도(일본 서기엔 사마노 도도로 표기)라는 인물이다.

먼저 이 부분에 대한  역사기록부터 살펴보자
 

신라 진흥왕 15년조 기록 (554년)

가을 7월에 명활성을 수리해 쌓았다.
백제 왕 명농이 가량과 함게 관산성에 쳐들어왔다.
군주인 각간 우덕과 이찬 탐지 등이 맞아 싸웠으나 불리하였다.
신주의 군주 김무력이 주의 군사를 데리고 달려왔다.
교전하게 되자 비장(裨將)인 삼년산군의 고간 도도가 급히 쳐서 백제왕을 죽였다.
이에 여러부대들이 승세를 몰아 크게 이기고 좌평 네사람과 사졸 2만9천6백명을 베었으며, 말 한필도 돌아가지 못하게 하였다.
 

삼국사기 진흥왕조엔 비장(裨將) 고간(高干) 도도(都刀)라 하였다.

비장이라 함은 아주 날랜 장수이고 고간(高干)이란 명칭에서 보듯이 간(干)이라 함은 몽골계 흉노족에서 일컬어지는 요즘식으로 말하면 장교를 뜻한다. 즉, 삼국사기 기록에서 보면 백제왕의 목을 벤 신라의 도도는 분명히 장교라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일본서기엔 아주 자세하게 나오는데 그 부분만을 추려 보면 이렇다.


신라는 명왕(明王)이 직접 왔음을 듣고 나라 안의 모든 군사를 내어 길을 끊고 격파하였다.

이때 신라에서 좌지촌(佐知村) 사마노(飼馬奴) 고도(苦都)에게

“고도는 천한 노이고 명왕은 뛰어난 군주이다. 이제 천한 노로 하여금 뛰어난 군주를 죽이게 하여 후세에 전해져 사람들의 입에서 잊혀지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하였다.

얼마후 고도가 명왕을 사로잡아 두 번 절하고

“왕의 머리를 베기를 청하옵니다”라고 청하였다.

그러자 명왕이

“왕의 머리를 노의 손에 줄 수 없다”고 하니

고도가

“우리나라 법에는 맹세한 것을 어기면 비록 국왕이라 하더라도 노의 손에 죽습니다”라고 하였다.

(다른 기록에는 “명왕이 호상에 걸터앉아 차고 있던 칼을 곡지에게 풀어 주어 베게 했다”라고 하고 있다.)

명왕이 하늘을 우러러 크게 탄식하고 눈물을 흘리며 허락하기를

“과인이 생각할 때마다 늘 고통이 골수에 사무쳤다. 돌이켜 생각해 보아도 구차히 살수는 없다.”라고 하고 머리를 내밀어 참수 당했다.
 

어느 기록이 더 진실에 가까울까?

과연 일개 말을 사육하는 노비가 사람의 목을 간단히 벨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참수하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일본의 할복(셋부기리)에서도 보면 목을 베는 사람은 할복자가 정하는 가장 칼을 잘쓰는 사람에게 부탁하게 된다. 할복의 고통을 빨리 끊어 줄수 있는 소위 검의 달인에게 부탁하는 것처럼 사람의 목을 벤다는 것은 칼을 다뤄보지 않은 자가 바로 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하나 일본서기의 말을 그대로 빌린다 손 치더라도 말을 사육하는 사마노를 아주 천한 신분으로 볼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말은 예나 지금이나 매우 귀한 동물이고 특히 군마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자산이다. 요즘도 말을 사육하는 기술은 고급기술에 속한다. 따라서 사마노(飼馬奴)라 불리는 것은 천한의미로 볼 것이 아니라 당시로서는 중책으로 본는 것이 더 이치에 맞을 듯 하다.

왜냐하면 과거의 기병은 지금으로 말하면 전차부대에 해당하고 말은 곧 현재의 탱크와 같은 존재이다. 현재도 탱크는 매우 중요한 무기이며 탱크정비는 일반정비와는 차이가 있음을 유추해 볼때 일본서기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말을 사육하는 노비의 천한 신분으로 보는 것은 논리적으로 좀 안맞다고 볼 수 있겠다.

하물며 단칼에 목을 베어야 한다는 것까지 함께 본다면 천한 노비는 더더욱 아닐 수 있다.
 
한 예로 백제 근초고왕때 왜에 말 두필과 아직기를 보낸 바 있다.

일본서기는 응신천황때의 일을 소상히 전하고 있다.

아직기(阿直岐)가 근초고왕(近肖古王)의 명으로 일본에 건너가 일본 왕에게 말 2필을 선사한 후 말 기르는 일을 맡아 보았다. 그런데 일본 왕은 그가 경서(經書)에 능통한 것을 보고 태자(太子:?道稚郞子)의 스승으로 삼도록 했다고 한다.

그러며서 "백제엔 말을 치는 사람도 글에 능통한데 네보다 더 잘아는 사람이 있느냐"라고 묻자 아직기가 답하기를 "왕인박사가 있다"하니 일본 응신천황은 백제에 간곡히 요청하여 왕인박사를 초청하여 일본에 유교경전과 천자문을 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 기록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말을 사육하는 것은 천한 일이라기 보다는 매우 전문적인 사항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말을 치는 사마노(飼馬奴)라고 해서 단순하게 천한 노비로 치부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일본서기에선 백제성왕의 목을 벤 고간 도도를 천한 사마노라고 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데 그것은 신라에 대한 백제와 왜의 감정이 고스란히 베어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이 앞뒤 정황에 더 맞을 듯 싶다.

백제는 성왕인 마당에 상대방인 신라는 누가 상대하든 신라왕이 아닌 마당에야 천하게 볼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한마디로 격이 맞지 않음으로 인해서 “감히 천하게 말이나 치는 주제에 어딜 나서느냐” 라고 했다고 봤을 때 백제나 왜의 입장에선 당연히 천한 신분으로 묘사하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고도는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단칼에 백제왕의 목을 벨 수 있는 담력과 검술 그리고  일본서기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말을 사육하는 사마노라는 부분을 재해석 한다면 오히려 말을 잘타는 기병의 최전선 지휘자라고 보는 것이 더 이치에 맞을 듯 하다. 

그리고 백제 성왕은 전선 시찰을 말을 타고 하였다면 그에 응당하게 신라 또한 기병으로서 제압하였다고 봐야 한다. 물론 일본서기에서 말하는 천한 신분이라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백제 성왕과 신라의 고간 도도의 신분의 격이 맞지 않음을 질책한다고 보면 무리가 없을 듯 하다.

그렇다고 해서 도도가 신라군의 상층부 장수라고 보는 것도 무리가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이 문구 때문이다.

“고도는 천한 노이고 명왕은 뛰어난 군주이다. 이제 천한 노로 하여금 뛰어난 군주를 죽이게 하여 후세에 전해져 사람들의 입에서 잊혀지지 않기를 바란다” (일본서기 흠명 15년)

이 말은 달리 해석하면 신라가 사기진작책으로서 장군등 고급장교보다는 하급장교나 병졸에 대한 사기진작책으로 성왕에 대한 참수형을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사항을 종합하여 볼 때 신라 기병의 중간 지휘자(대위, 소령)가 백제 성왕을 사로잡는 무공으로 인해서 전쟁 후에 고간(高干)으로 특진되는 영예를 얻었다고 보는 것이 더 현실에 부합하지 않을까 싶다.

고대 전투에선 칼을 찬다는 것은 지휘관임을 뜻한다. 일반 병사는 대체로 창을 전투무기로 사용하고 그것은 총이 발달되기 전까지 계속 이어져 왔다. 따라서 백제성왕의 칼을 이용해서 성왕의 목을 벨 정도라면 신라의 고도는 절대로 천한 노비로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다시  타임머쉰을 타고  그 현장으로 가보자.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극화로 구성해 보았다.


역사의 현장이다. 월전리.
멀리 보이는 관산성이 있고 구진베루라고 하는 벼랑 바로 뒤에 신라 기마병이 포진하고 있었다.

 

장 면 1

포박당한 백제성왕은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눈엔 핏발이 섰다. 그런 성왕을 신라군은 호상에 걸터 앉혔다. 상대가 성왕임을 알고선 최전방 신라군지휘부도 잠시 술렁였다.

신라 장수1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사로 잡고 보니 백제성왕이라니 이건 너무도 큰 거물을 사로 잡은 것 같소이다.

신라 장수2 :(맞짱구를 치면서 거든다) 그러게 말입니다. 빨리 사령부에 보고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일개 장졸이면 모를까 모름지기 백제의 왕인데 우리같은 일개 최전방 장수들이 결정하기엔 너무 일이 무거운거 아니오?
 
신라 장수3:  그러면 빨리 사령부에  전령을 보내서 지휘를 받으면 될 거 아닙니까? 이렇게 지체할 시간이 없을 것 같습니다.

신라 장수1 : 사령부라면 삼년산성까지 가야 하는데 여기서는 말을 달려도 갔다 오려면 꼬박 하루는 걸린단 말이요.

신라장수 2 ; 맞습니다.  그럴 시간은 없습니다. 그러면 아예 성왕을 포박해서 사령부로 보내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이렇게 머리싸메고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겠소?

신라장수 3 : 그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만에 하나 백제성왕이 올 시간이 지체되어서 백제군이 이 사실을 알고 본진에서 추격이라도 온다면 우리가 어떻게 막겠소이까? 너무 위험합니다.

신라장수 1 : 맞소이다.  그것도 너무 위험한 것 맞소이다.

신라장수 2 : 그러면 이렇게 하면 어떻게 소이까?

신라장수 1,3 :뭐가 좋은 수가 있단 말이오?  빨리 말해 보시오
 
신라장수 2 : 일단 우리가 백제 성왕의 목을 베도록 합시다.

신라장수 1,3 : (깜짝 놀라며) 뭐라고 하셨소이까? 우리가 베자구요?

신라장수 2 : 그러면 어떡하겠습니까? 사령부는 너무 멀고 그렇다고 성왕을 산체로 후송하기엔 너무 위험하고 그러면 목을 베는 방법외엔 어찌 다른 방도가 없는 것 아니옵니까?

신라장수 1 ; 그러면 뒤 처리 방도까지 갖고서 하시는 말입니까?

신라장수 2 ; 이렇게 하면 별 무리가 없을 듯 합니다. 성왕의 목을 베고 그 머리를 사령부로 보내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 우린 전투를 계속해야 하니까 일단 성왕의 몸은 여기에 구덩이를 파고 가매장을 해 놓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 사령부에서 별도의 지시가 있게 되면 그때 그 지시를 따르면 될 것 같습니다. 

신라장수 3 ; 듣고 보니 괜찮은 방도 같소이다. 그러면 빨리 진행합시다. 원래 전투현장에서 급박할 경우엔 현장지휘관이 책임지고 일을 결정하는 것이 병법에 기초입니다. 

신라장수 1 : 그러면 누가 백제 성왕의 목을 베는게 낫겠습니까?  (그러면서 동료 장수들을 바라본다)

신라장수 2 : (서로 얼굴을 바라보다가 선뜻 말을 꺼낸다 ) 이번에 이렇게 우리가 공을 세우는데는 삼년산성에서부터 길을 안내하고 말을 잘 부리는 도도의 힘이 가장 큰 것 같은데 도도에게 기회를 주면 어떻겠습니까?

신라장수 3 : (깜짝 놀라며) 뭐 도도 말입니까? 그는 중간 지휘자일 뿐인데 성왕과 너무 격이 안맞는 것 아닙니까? 아무리 그래도 상대는 백제 왕인데요. 

신라장수 1 : (가만히 생각하다가  무겁게 입을 연다 ) 그것도 괜찮은 방법같습니다. 무릇 전투는 중간 지휘자가 용감하고 잘해야 전쟁에서 이기는 법입니다. 이번에 가장 큰 공은 도도가 세웟는데 그 자에게 기회를 주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신라군 전체에 사기를 올려주는 아주 좋은 방법이 될 것 같소이다. 

신라장수 3 : 듣고 보니 맞는 말씀 같소이다. 그런데 도도가 칼은 잘 쓴답니까? 사람 목을 벤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잖습니까? 게다가 목을 베고나선 성왕의 머리를 최고사령부에 보낼려면 (잠시 뜸을 들이면서 동료 장수들 얼굴을 보다가 ) 잘 베야 할 것 아니겠소?

신라장수 2 : 그건 걱정안해도 될 것 같습니다. 도도는 말도 잘타지만 말에서 휘두르는 칼 솜씨는 그보다 더 일품입니다.

신라장수 1 ; 그러면 좋소이다.  도도에게 명하시오. 


이렇게 구천에서 성왕을 사로잡은 신라군의 지휘부에선 급히 회의를 마치고 도도에게 백제성왕의 목을 베도록 한다.


장면  2 : 도도의 등장

도도 : (성왕앞으로 저벅저벅 다가가서 두 번 큰 절을 올리고 난후 ) 대왕마마 소인에게 대왕마마의 목을 베도록 허락해 주시옵서서.

성왕 : (눈에선 불이 나면서 엄히 꾸짖듯이 말한다) 무엄하구나. 형색을 보니 장수도 아닌것 같은데 네 직책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무엄하게 구느냐?

도도 : 죄송합니다. 그렇다면 저의 소개부터 먼저 올리겠나이다. 저는 신라군 삼년산군 소속의 기마병 도도라고 아룁니다.

성왕 : 뭐시라? 장수도 아니고  한낱 말을 부리는 천한 노란 말이냐? 네 비록 사로잡힌 몸이라 하나 네놈같은 말이나 부리는 천한 놈에게 죽을 순 없느니라.

도도 :  (호상에 포박당해 걸터 앉혀져 있는 성왕을 내려다 보며 비웃듯이 말한다) 너무 노여워 마시옵서서. 우리 신라법에는 비록 왕이라 하더라도  맹세를 어기면 졸이 아니라 천한 노비의 손에도 죽사옵니다.

성왕 : (더욱 성난 목소리로) 지금 그걸 말이라 하느냐  네 이놈

도도 : (성왕의 거친 목소리를 뒤로하고 허리춤에서 자신의 칼을 꺼내려 한다)

성왕 : (아무리 해도 소용 없슴을 개닫고 목소리를 가다듬어서 ) 내 이제 죽는 마당에 한가지 청이 있구나. 들어 줄 수 있겠느냐?

도도 : (칼을 거내 들면서 ) 무엇이옵니까?

신라장수들 :( 그렇게 하라는 눈짓신호를 보낸다)

성왕 : (체념하듯이 말한다) 내 비록 오늘 죽게 되는 마당에 칼 만큼은 내 칼을 써 다오. (그러면서 허리춤에 칼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도도 : (성왕의 허리춤을 본다) 이 칼 말이옵니까?

성왕 : 그렇다 (성왕의 허리춤엔  금빛이 나는 손잡이엔 환두대도의 보검이 있다)

도도 : (성왕의 허리춤에서 성왕의 보검 환두대도를 꺼낸다 그리고 칼을 한번 주욱 훓어본다 ) 고맙사옵니다. 저같은 천한 놈이 대왕마마의 보검을 이렇게 손에 쥘 줄은 어떻게 꿈엔들 생각이라도 했겠사옵니까? 잘 가시옵서서 . 에잇

순간 성왕의보검은 빛을 발하며 큰 궤적을 그린다.

성왕 : (짧은 순간이나마 지난날을 회상하며 죽는 그 순간에도 몸져누운 아들 여창의 얼굴을 떠올린다 )

굴러 떨어진 성왕의 눈은 부릅뜬 채 그대로이고  목에서 두줄기의 붉은 피가 마치 분수처럼 솟구친다. 


그 후 도도는 삼년산군의 고간으로 특진하였고 이 소식을 들은 신라의 장졸은 저마다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전장터에서 공을 세우기를 주저하지 않았음을 가히 짐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해서 우리의 역사에서  하나의 큰 분수령은  갈라지게 되었으니.....


 
고성혁의 역사추적  http://kr.blog.yahoo.com/shinecommerce/19640





Calendar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Visits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