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예로부터 우리의 선조들은 소주를 제일 귀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이유는 밥한그릇 분량의 쌀을 사용해도 소주 한잔이 채 나오지 않기 때문에 제조단가가 비싸서.. 일단 한국 전통술의 기본 재료는 동일합니다... 쌀(다른 곡물도 있지만 기본은 쌀, 감자술 등등) + 누룩 + 물 하여튼 술을 빚으면 대략 10~15도 정도의 술이 됩니다. 이렇게 빚은 술을 고두밥이 그대로 있는 채로, 마시는 것이 바로 "동동주"이죠... 막걸리는 이 동동주를 채나 삼베로 걸러서, 마시기 좋게 만든 것이 막걸리... 그런데 여기서 동동주나 막걸리에 물을 탑니다... 우리나라 술관련 세법은 도수에 따라서, 세금이 붙기 때문에... 시중에 동동주와 막걸리는 물을 타서 6도 이하로 맞춥니다. (2~3년 전쯤 전통주에 대해서 세금제도가 바뀐 것으로 아는데... 정확히는 모르겠고...) 동동주에 용수(청주를 걸러내기 위한 소쿠리)를 대고, 맑은 윗술을 떠서 모으면 청주(약 15도)가 되지요... 흔이 약주라고 하기도 하는 일본 사케의 사촌과 같은 술입니다... (흔히 청주를 일컷는 "정종"은 일본의 청주인 사케 중에 유명한 상표명입니다.) 이렇게 청주를 만들고 남은 건더기를 술지게미라고 하는데, 예전에 못사는 집에서는 이걸 얻어다가 허기를 채우기도 했다고 하고, 그 유명한 사자성어인 조강지처의 "조"가 바로 이 술지게미입니다. 이 청주를 다시 소주걸이에 넣어서, 증류를 하게되면, 30~40도 정도되는 데, 경우에 따라서는 2번 이상 증류를 하는 경우도 있구요... 증류할 때마다 도수가 높아지지요... 이걸 바로 "소주(燒酎)"(증류식)라고 하는 거지요... 이렇게 소주를 만들면서, 약초나 국화 등등등을 소주받는 곳에 받쳐서, 물을 우려내기도 하지요... 대표적인 것이 진도의 "홍주"이며 이는 인삼등 삼대선약중 하나라고 불리는 "지초"(자초 등)로 만들어집니다. 물론 지초는 한약재로 많이 사용하지요. 홍주는 이 지초의 뿌리를 이용합니다. 뿌리 표피부분이 자색을 띕니다... (진도홍주 hongju.jindo.go.kr) 또한 특이하게 약주에 소주를 섞어 빚은 과하주가 있는데... 그냥 발효한 청주, 동동주, 막걸리, 농주(일반 토속주를 총칭) 들은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최초에는 약 15도 정도입니다. 그런데, 겨울에는 크게 상관이 없지만, 여름에는 술이 만들어진 이후에도 계속 초산발효가 일어나서, 술이 식초가 됩니다. 초산발효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도수가 20도 이상이 되야하는데... 이를 위해서 소주로 도수를 맞춘 것을 "과하주(여름을 보내는 술)"라고 합니다. 소주는 비싸고 만들기도 힘들고, 곡식의 양에 비해서, 술이 적게 나오니까. 과하주라는게 나온 것이죠.. 출처 : 클리앙 |
燒酒와 燒酎 우리나라에서 전통 소주(증류식)는 '酎(진한술 주)'로 씁니다. 증류식 소주를 칭하는 한자였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도 소주를 燒酒가 아니라 燒酎라고 쓴다. 일반 시중에 팔리는 소주(燒酒)는 전통방식과 달리 고구마 등 쌀이 아닌 것을 베이스로 주정을 추출하고, 그 주정에 물을 타 도수를 맞추는게 가장 기본적인 원리. 이 과정에서 이 주정을 이용한다는 것이 결국은 알콜을 추출해 물을 타는 것과 거의 비슷한 원리다. (아래 희석식소주 참조) 그래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상적으로 팔리는 소주는 완전한 증류나 발효주가 아니기에 세계 주류 품평회 등에 출품이 안된다. 과하주(過夏酒 ) 약주에 소주를 섞어 빚은 혼양주. 무더운 여름을 탈없이 날 수 있는 술이라는 뜻에서 얻은 이름이다. 소주는 독하고 약주는 알코올 도수가 낮아서 변질되기 쉬우므로 만들어진 술이다. 조선 초기부터 서울에서 알려진 술이다. 만드는 방법은 2가지가 전해진다. ≪규곤시의방≫에서는 누룩가루 두되에 끓인 물 한 병을 식혀 붓고, 하룻밤 재워두었다가 주물러 체에 받치되, 식힌 물을 더 부어 걸러 찌꺼기는 버리고, 찹쌀 한말을 깨끗이 씻어 지에밥을 쪄 식힌 뒤, 그 누룩물에 섞어 넣었다가 사흘 뒤에 좋은 소주 14복자를 부어 7일 뒤에 쓴다고 한다. ≪규합총서≫에서는 희게 도정한 멥쌀 한되나 두되로 범벅을 만들어 차게 식힌 뒤 누룩가루를 섞어 익힌다. 찹쌀 한말로 지에밥을 쪄 차게 식혀 그 술밑에 버무려두었다가 7일 뒤에 좋은 소주 20복자를 붓는다고 하였다. 김천지방에도 과하주가 유명한데, 이것은 과하천의 물로 만들었기 때문에 과하주라 하는 것으로, 그 빚는 법이 일반 과하주와는 다르다. 출처 : 네이트 백과사전김천과하주 김천 남산동에 있는 샘을 "과하주샘"이라고 하는데 이 샘물로 과하주를 빚었다. 타지방 사람이 이곳에 와서 과하주 빚는 방법을 배워가서 똑같은 방법으로 아무리 빚어봐도 과하주의 맛과 향기가 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물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라고 금릉승람에 적혀있다. 과하주는 일제시대까지 "큰도가"(김천주조회사)에서 빚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으로 중단되었다가 광복후 재개되고 다시 6.25한국전쟁으로 자취를 감추었다가 1984년 송재성씨가 시험양조 끝에 본격적으로 생산에 착수하여 김천 명주의 맥을 이었다. < 참고자료 : 문화재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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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석식 소주 현재 대중적으로 마시는 19~30도짜리 제품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과실주용 등으로 30도짜리가 일부 유통되고 있습니다.) 희석식 소주는 주정 + 감미료 + 물 이 3종류(감미료는 종류가 많죠)의 칵테일입니다. 다시 세부적으로 설명 들어가면, 주정이라 함은 생물학적/화학적 방법으로 제조한 고순도의 식용 에틸알코올입니다. (이 정의가 맞는 것인지는 모르나, 이 개념으로 보시면 됩니다.) 주정은 보통 다당류(녹말, 탄수화물)을 많이 함유한, 땅속 덩어리 작물로 만듭니다. 우리나라에서 주정의 재료로 많이 사용되는 것은 역대로 보면 3가지 정도로 알고 있는데... 고구마, 돼지감자(맛이 없어서 사료용으로 많이 사용되었던 대형감자), 파파야(근래의 주된 주정의 원료로, 동남아 수입산을 사용한다고 들었습니다.) (요즘은 타피오카 전분을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압니다. 타피오카는 열대에서 채취되는 카사바라는 작물에서 녹말 성분만 뽑아낸 것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고구마와 비슷하죠. 단가가 싸고 수급이 쉽기 때문에 주로 타피오카 전분을 사용할 겁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한 주정은 발효 에탄올이고 화학적으로 만들지는 않는 것으로 압니다. - 뎃글에서..) 예전에는 주정이 조달청을 통해서 일괄 수급되었던 것으로 아는데, 지금은 아마 각 주류회사들이 자체조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원재료를 가지고 생물학/화학 발효를 하면50도~98도 정도에 이르는 순수한 에틸알코올을 얻을 수 있는데요. 이를 주정이라고 합니다. 보관등의 편의성을 위해서, 95도 이상으로 제조/보관하는 것으로 알고 있구요. (어떤 발효공법을 쓰는지에 대해서는 저는 정확히 몰라서 넓은 범위로 설명했습니다.) 이렇게 얻어진 주정에 물 + 감미료를 섞는데요... 물이야 뭐 좋은 물 쓰면되고...(제품별로 물 차이도 좀 있죠...) 감미료는 별의 별 희안한 것들이 다 들어가죠...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것들이 단맛을 내는 감미료들... 사카린(예전에 한동안 쓰였는데 지금은 발암물질 논란으로 퇴출) 아스파탐(칼로리 0라는 합성감미료, 뉴슈가, 파인슈가) 올리고당 - 생색내려고 조금... 설탕은 비싸서 잘 안쓰고, 액상과당 등등등...기타 싸면서도 좋은 단맛을 내는 것들 그리고, 여기에 추가적인 감미료(녹차추출물이라던지 등등등)들과, 각 재료들이 분리되는 것을 방지시켜주는 식품첨가물, 기타 제품 유통과 보관에 도움을 주는 첨가물 등등등을 최적의 맛을 내도록 섞으면, 식당에서 수천원에 한 병 하는 희석식 소주가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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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을 얻는 방법 효모가 당을 분해 하면서 알콜이 만들어집니다. 포도나 사탕수수를 효모 발효 과정을 통해 포도주나 럼주의 베이스주로 만들수 있습니다. 탄수화물은 효모가 직접 알콜로 만들수 없기 때문에 당으로 분해해 주는 당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당화시키는 방법또한 여러가지가 있는데 국균(곰팡이의 일종)의 활동으로 당화 시키는 방법도 있고, 맥아 효소를 통해서 당화 시키는 방법도 있습니다.(식혜 만드는 과정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쌀, 보리, 감자, 옥수수, 타피오카 등은 이런 과정을 거쳐서 술이 됩니다. 발효주는 주변 환경에 따라 추가적인 성상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오래 보관할 수 없습니다. 반면 고도주는 세균활동이 멈추어 오래 보관 가능합니다. 발효를 통해서는 알콜도수 17도 이상의 술을 만들수 없는데 이는 약 17도 근처에서 효모 활동이 중단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증류를 통해 고도주를 만들게 되는데, 전통적인 증류 방법은 알코올과 물의 끓는점 차이를 이용해서 분리하는 방법입니다. 전통적인 증류기는 본주를 넣고 밀봉한 후에 끓여서 나오는 증기를 식혀서 분리해냅니다. 이방법은 알코올 외에 물, 이물질, 유기성분 또한 같이 나오게 됩니다. 향과 맛을 좋게하는 유기산 성분은 남기고 이물질, 알데히드 등 숙취를 일으키는 성분을 분리하기 위해서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며 분리 효율또한 좋지 못해서 2~3번 반복적으로 증류하더라도 80도 이상의 주정을 얻기 힘듭니다. 19 세기에 보다 고효율을 알콜 분리를 위해서 유럽에서 연속식 증류기가 발명되어서 위스키,브랜디 산업에 쓰이기 시작하였는데, 95% 이상의 알코올을 분리해 낼 수 있게 되어 고농도의 주정을 만들어 물과 희석해서 술을 공급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격은 싸지만 전통적인 증류주에 비해 맛과 향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증류주와 연속식 증류기로 만든 주정을 혼합해서 만든 술도 나오게 됩니다. 주정을 여과, 희석, 첨가 등등 몇몇 과정을 거쳐서 만든게 소주입니다. 소주 뿐만이 아니라 위스키, 브랜디, 보드카 등 세계 여러나라의 증류주가 이러한 원리로 만들어 집니다. 일제시대때 일본이 유럽의 기술을 들여와 주정을 생산하게 되는데 그걸 또 우리가 받아들여서 소주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희석식)소주는 전통과 단절된 족보없는술 이고, 맛과향을 즐기는 목적 보다는 싸게 취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술이기에 어느순간부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술이 되었지만 앞으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술은 아니게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 : 클리앙의 발제글과 댓글을 종합해 본 것이다. |
알콜의 도수에 관하여... 발효를 통해서 얻어진 알코올은 순수한 에탄올만 포함된 것이 아닌 미량의 메탄올, 아이소아밀 알코올 등 여러가지의 성분들이 포함됩니다. 따라서 발효주의 경우 마시고 난 후에 숙취가 더 심할 수도 있습니다. 물과 에탄올의 혼합물을 끓이게 되면 물의 끓는점이나 에탄올의 끓는점 보다 낮은 온도에서 기화가 시작되며 (화학적 용어로 azeotrope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증류의 방법으로 100%의 에탄올을 얻을 수 없으며 이 경우 얻을수 있는 최고 순도의 에탄올은 약 95.5 v/v% (mole 비율로는 약 89 :11) 입니다. 따라서 주정의 에탄올 %가 약 95%에 해당하게 됩니다. 실험실에서 사용되는 100% 에탄올의 경우 합성을 통해서 만들어지지만 식용으로 유통을 금지하기 위해서 대부분 독성을 가진 다른 첨가물이 미량 포함되어 있고 (Denatured alcohol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마시면 이승을 등지실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마실 수 있는 최고의 알코올 %는 주정의 %인 95%라고 보시면 되고 실제로 주정을 마셔보면 왜 감미료가 필요한지 알게 됩니다. 예전에 실험실에서 밤새면서 실험용으로 구입한 주정을 소주 반잔 정도 스트레이트로 마셨다가 그냥 뻗어서 잤습니다. 95% 주정의 맛은 무척 쓰고 식도가 타들어 가는 느낌을 줍니다. 따라서 감미료나 희석이 꼭 필요합니다. 참고로 알코올의 양을 표시하는 단위로 proof라는 것이 있는데 미국을 기준으로 설명하면 100-proof는 섭씨 15.5도 (화씨 60도)에서 50%(부피)의 에탄올을 포함하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종종 100-proof가 넘는 위스키를 마시고 본인이 100도가 넘는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말이 안되는) 술을 마셨다고 주장을 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한국에서 사용하는 "도"는 %와 같은 단위이기 때문에 자신이 마신 술의 proof를 반으로 나누어야 자신이 마신 술의 에탄올 %가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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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룩 술을 만드는 효소를 지닌 곰팡이를 곡류에 번식시켜 만든 발효제. 분쇄한 밀이나 쌀·밀기울 등을 반죽하여 모양을 만들고 적당한 온도에서 숙성시켜 만든다. 누룩은 술을 빚는 데 기본이 되는 것으로,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도경 高麗圖經≫에 처음 누룩에 관한 기록이 보이는데, ≪삼국사기≫·≪삼국유사≫ 등의 문헌에 술에 대한 기록이 보이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삼국시대에도 누룩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누룩의 제조는 대부분이 농가의 부업으로서 여름·가을철에 소규모로 하였으나, 1927년부터는 누룩제조업자와 주조업자가 모여서 국자제조회사를 설립하여 생산공업으로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그 결과 종래에 적기에만 작업을 하던 것이 사계절간 제조하게 되었고, 품질도 향상되고 제품도 균일화되었다. 요즈음에는 밀가루로 만든 분국과 밀을 세 조각으로 타서 얻은 가루와 밀기울로 만든 조국으로 나누어 그 용도를 달리하는데, 분국은 약주·과하주용으로 쓰이고 조국은 탁주·소주용으로 쓰인다. 만드는 법은 분쇄한 밀이나 쌀·녹두즙 등을 반죽하여 헝겁·짚·풀잎 등에 싸서 발로 밟거나 누룩틀에 넣어서 밟는다. 이것을 누룩방이나 온돌 또는 헛간에 적당히 배열하여 짚이나 쑥으로 덮어 놓고, 썩지 않게 골고루 뒤집으며 누룩곰팡이가 뜨기를 기다리는데, 짧게는 1주일 길게는 40일 이상이 걸린다. 지방에 따라 모양이나 제조법에 차이가 있어, 서울 및 영남지방에서는 원료를 반죽하여 헝겁에 싸서 틀에 넣고 단단히 밟아 짚으로 싼 다음 온돌에 퇴적하여 만들고, 호남이나 충청도지방에서는 퇴적하는 대신에 실내에 매달아 둔다. 형태도 서울 및 영남지방의 것은 편원형이 많고 호남이나 충청도지방은 원추형이나 모자형이 많다. 보통 퇴적한 것은 4, 5일, 매달아 둔 것은 10∼30일쯤 걸려서 만들어진다. 개량식의 경우는 밀가루에 물을 섞어 원반형태의 덩어리를 만들고 약 10일간 40℃에서 발효시킨 후, 건조실에 옮겨서 서서히 건조시킨다. 이것은 재래의 방법에 비하여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고, 연중 만들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누룩은 사용되는 원료의 종류뿐만 아니라 형태가 품질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누룩의 지름이 너무 짧으면 수분이 쉽게 발산되어 균이 잘 침투하지 않아서 숙성이 불량하고, 너무 얇으면 단시일에 숙성되나 향미가 좋지 않고 주박(酒粕)이 많아 주량이 적어진다. 너무 두꺼우면 내부의 수분이 발산되기 어려워 내부 온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고, 제조 후 건조도 어렵다. 이와같이 제법이 까다로워 신미(辛未)·을미(乙未)·경자(庚子)에 만들면 좋고, 목일(木日)에 만들면 술이 시어진다는 금기가 있었다. 또한 누룩은 밟는 정도에 따라서도 질에 차이가 있으며, 누룩의 질은 술맛과 직결된다. 출처 : 네이트백과사전 |
누룩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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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의 역사 소주는 곡류를 발효시켜 증류한 술을 말하며 상업적으로는 곡류나 감자류 등을 원료로 하여 주정발효를 거쳐 숙성된 술덧을 증류하여 만들거나 무수주정을 물로 희석하고 설탕·포도당·구연산 등을 첨가하여 만든다. 소주는 술덧을 증류하여 이슬처럼 받아내는 술이라 하여 노주(露酒)라고도 하고, 화주(火酒) 또는 한주(汗酒)·기주(氣酒)라고도 한다. 또한 아라키주〔亞刺吉酒〕라고도 하였는데 이는 증류주(蒸溜酒)의 발생과 관련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과실이나 곡물을 원료로 하여 술을 빚은 것은 오래된 일이지만, 이것을 다시 증류하여 만든 소주는 인간의 지혜가 상당히 진보된 후대의 산물이다. 술의 증류법은 중세기 페르시아에서 발달되었다고 하며, 아라비아에서 원나라·만주를 거쳐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것은 소주를 아라비아어로 아락(arag)이라 하고, 만주어로는 알키라고 하며, 우리나라 평안북도지방에서는 아랑주, 개성지방에서는 아락주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소주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시기는 고려 충렬왕 때로 몽고군을 통해서 도입되었고, 그뒤 이를 즐기는 무리가 생겨서 소주도(燒酒徒)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특히 몽고군의 주둔지였던 안동과 개성·제주도는 제조법이 발달하였으며, 최근까지도 그 전통이 유지되어 유명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더욱 유행되어 이에 관한 기록이 많이 보이고 있다. ≪단종실록≫에는 문종이 죽은 뒤 단종이 상제노릇을 하느라고 허약해져서 대신들이 소주를 마시게 하여 기운을 차리게 하였다는 기록이 보이고 있고, ≪중종실록≫에는 소주를 마시는 사람이 많아져서 쌀의 소비가 늘고 있으며, 소주로 인한 피해가 크다는 기록이 보이고 있다. 1490년(성종 21)에 사간 조효동(趙孝同)은 “세종 때는 사대부 집에서 소주를 사용하는 일이 매우 드물었는데, 요즈음은 보통의 연회 때도 소주를 사용하고 있어 비용이 막대하게 드니 금지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진언하였다. ≪ 지봉유설≫에서는 근세에 와서 사대부들이 호사스러워져서 소주를 많이 마셔 취해야만 그만두고 있으며, 이 때문에 갑자기 죽는 사람도 많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처음에는 약용으로 마시거나 왕이나 사대부들이 마셨던 술이었는데, 점차 일반서민에게도 보급되어 각 가정에서도 많이 빚어먹게 되었다. 그 뒤 1919년에 평양에 알콜식 기계소주공장이 세워지고 이어 인천·부산에도 건설되어 재래식의 누룩을 이용한 소주는 흑국소주로 바뀌고, 1952년부터는 값싼 당밀을 수입하여 만들게 되었다. 1965년 정부의 식량정책의 일환으로 곡류의 사용이 금지됨에 따라 우리 고유의 풍미와 정성어린 증류식 순곡주는 자취를 감추고 고구마·당밀·타피오카 등을 원료로 하여 만든 주정을 희석한 희석식 소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조방법 7 일이 지난 뒤 소주를 고는데, 솥에 물 두 사발을 먼저 끓인 뒤에 술 세 사발을 그 물에 부어 고루고루 젓고 불을 때어 증류시켜 이슬로 받아낸다. 서울지방에서는 항아리에 고두밥과 물·누룩가루를 넣고 혼합한 다음 매일 두번씩 저어주면서 3주일쯤 지나서 술이 익으면 뚜껑을 덮고 흙으로 밀봉해두었다가 증류하여 소주를 얻었다. 평양지방에서는 소주의 원료가 대개 누룩과 수수였는데 지역에 따라서는 찹쌀·멥쌀·좁쌀·옥수수 등을 쓰기도 하였다. 먼저 항아리에 누룩과 물을 섞어넣고 수수를 쪄서 넣은 다음 2, 3일간 발효시키고 다시 쌀을 쪄서 첨가한 다음에 식힌 찹쌀죽을 첨가하여 매일 두번씩 저으면서 25∼40일간 발효시켜 얻은 술밑을 증류하여 소주를 얻었다. 함흥지방에서는 쌀과 영흥에서 만든 누룩으로 술밑을 만드는데, 서울이나 평양 등지에 비하여 누룩의 사용량이 적고 물을 많이 넣으며 비교적 단시일에 익혀서 증류하여 소주를 얻었다. 소주는 불을 때는 화력에 따라 질이 결정되는데, 불이 세면 소주가 많이 나오는 반면 냇내가 나고, 불이 약하면 소주가 덜 난다. 양푼의 물을 자주 갈아주면서 고면 좋은 술을 얻을 수 있다. 땔감은 뽕나무나 밤나무가 적당하다고 한다. 증류할 때 초기에는 솥을 사용하였으나 조선시대에 증류법이 발달하여 흙이나 구리 또는 쇠로 만든 소주고리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뒤 1910년경부터 재래식 시루 대신에 청주제조용 시루를 사용하고, 냉각수는 자연유수방식을 쓰고, 고리의 소주받이에는 냉각사관을 달았다. 누룩은 분말형태를 쓰고, 연료는 장작을 사용하였다. 1920년경부터는 흑국을 사용하고, 단식에서 연속식 증류기를 사용하였다. 희석식 소주의 경우 주정은 백미를 제외한 녹말을 함유하는 잡곡류나 감자류·당밀 또는 과실을 제외한 당분을 함유한 사탕수수 등을 원료로 하여, 발효법·국법·액체국법·아밀로법 등으로 발효시켜 알콜 85도 이상으로 증류한 것으로, 이것에 물을 부어 농도를 낮춘 다음 첨가물로 설탕·포도당·구연산·사카린·아미노산·솔비톨·무기염류 등을 섞는데, 이는 각 제조업자의 조미공정에 따라 맛이 쓰기도 하고 단맛이 나기도 한다. 증류식 소주는 사용하는 원료에 따라 찹쌀소주·멥쌀소주·수수소주·옥수수소주·보리소주·밀소주 등이 있고, 첨가하는 약재에 따라 감홍로·이강고·죽력고·구기주·매실주·우담소주 등이 있다. 또한 향토적 특성에 따라 안동소주·개성소주·진도홍주·제주민속주 등으로 불리고 있다. 희석식 소주는 어느 원료를 사용하거나 증류, 정제하기 때문에 주정함량만 다를 뿐 특징이 없다. ≪지봉유설≫에서는 소주는 약으로 쓰기 때문에 많이 마시지 않고 작은 잔에 마셨고, 따라서 작은 잔을 소주잔이라고 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가정에서 소주를 만들었던 시대에는 지방에 따라 소주를 마시는 시기가 달랐는데, 서울지방에서는 대개 5월부터 10월까지였고,
남부지방은 여름철에만 마셨으며, 북부지방에서는 4계절 모두 소주가 술의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소주는 다른 술에 비하여 비교적
순수하여 장기 저장시 상할 염려가 없으므로 지금도 대중주로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참고문헌≫ 大韓酒精協會三十年史(安泰甲, 大韓酒精協會, 1982) ≪참고문헌≫ 韓國食品社會史(李盛雨, 敎文社, 1984) 출처 : 네이트 백과사전 |
소주의 변천과정 우리나라의 소주 제조는 고려시대를 비롯하여 이조시대를 지나는 동안 약간 변천되었으나 양조과정이나 방법에 있어서 뚜렷한 발전없이 재래식방법으로 가정용 솥과 시루와 솥뚜껑을 이용하여 소주가 제조되었으며 판매목적으로는 "고리"라는 증류기를 이용(토고리,동고리,철고리 등)하여 만들어졌다. 1916년 일제가 주세법을 공포, 시행함에 따라 일본인들이 많은 자본으로 소주 제조장을 기업화하기 시작하여 종래의 단식증류기에서 연속증류기로 소위 신식(당밀소주)을 대량 생산함에 따라 치열한 판매 경쟁이 벌어지게 되어 1916년경에는 소주 제조장이 무려 28,416개소(남북전체)나 되었던 것이 1933년경에는 430개소로 대폭 도태되었다. 1927년에 이르렀을 때는 주정과 물을 희석한 희석식소주가 상당한 진전을 보여 희석식소주의 개화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종식으로 인하여 양조업체가 한국인 손에 들어오게 되었고 양조용 양곡사용 제한의 철폐로 활기를 되찾았으나 국토가 남북으로 양분되고 정치적 혼란을 틈타서 소규모의 밀조주가 성행하게 되었으며, 그 후 1950년 6.25사변의 반발로 주류제조장이 피해를 당하였다가 1953년 휴전 이후 안정을 되찾기에 이르렀다. 1965년 1월부터 시행된 양곡관리법 시행으로 소주의 원료 대체가 불가피하게 됨에 따라 전국의 수많은 증류식소주 업체들이 희석식소주로 전환하여야 하는 진통속에서 곡류원료의 증류식소주는 제조금지되었다. 세제도 1968년에는 종량세제에서 종가세제로 변동되었으며, 필요이상으로 난립상태였던 소주제조장을 1970년도에는 합동제조할 수 있도록 통합방침을 세우고 당시 기업화된 대업체(5개 내외)를 제외하고 280여개(1.8ℓ) 생산업체로 규격 미달의 저질 생산주류와 치열한 판매경쟁으로 유통질서가 극히 문란하게 되어 당국은 5개 제조장 이상으로 자진합동 할 때에만 됫병소주 제조를 허용하도록 강력히 통합을 유도한 결과 60개소로 합동체계를 갖추고 집약제조 형태를 유지하여 운영하였으나 부실한 경영 상태는 여전하였다. 그리하여 국세청은 1973년 4월부터 3개월간에 걸쳐 주류관련 규정으로서 주류관리 규정을 마련하여 주조법에 대한 통폐합으로 대단위화하고 차제에 부실업체를 정비할 목적으로 주류제조 통폐합정책을 수립하고 1973년 7월부터는 본격적인 통합작업에 착수하여 제조장 시설기준, 제조장별 제조비율제, 주원료 배정제(가배포함) 및 자가병 사용 등을 제도화하고 현대화된 위생적인 시설을 갖추도록 하여 오늘날과 같이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건전기업으로 육성발전 하도록 지원함으로써 현재 10개 소주업체가 각도에 1사씩 존속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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