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들의 홍대', 동묘 벼룩시장을 아시나요
2010.10.05 [오마이뉴스 윤성근 기자] 다음기사 오마이뉴스원문
1990년대까지만 해도 청계천 주변으로 중고 책방을 비롯해서 벼룩시장이 즐비했다. 동대문 근처 지금 두산타워가 있는 곳 평화시장을 시작으로 성동공업고등학교(옛 이름은 성공기계공고)를 지나 황학동까지 이어지는 이 길에서 많은 사람들이 좌판을 벌여놓고 장사를 했다. 파는 물건은 대개 중고 제품들이다. 책도 중고, 비디오테이프도 중고, 레코드판도 중고, 전화기나 전축, 냉장고, TV, 무엇이건 남이 쓰던 물건들을 수집해서 되파는 장사가 호황을 이뤘다.
그러던 게 몇 해 전 청계천 복개공사가 시작되면서 많은 장사꾼들이 그 자리를 떠나야 했다. 그 중에서도 평화시장에 있던 중고 책방들과 황학동에서 좌판을 벌이던 벼룩시장 상인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중고 책방들은 재고품 도매나 전집류 땡처리를 주로 하는 몇몇 집을 남기고 모두 문을 닫거나 서울 변두리로 옮겼다. 황학동 같은 경우, 정부에서 임시로 동대문 운동장 안에서 장사를 할 수 있게 해 줘서 청계천 공사가 끝날 때까지 그 안에서 판을 벌였다.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보면 꽤 재미있는 모습이다. 야구장 건물 안에 대규모로 벼룩시장이 열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동대문 운동장마저 허물고 다른 건물을 세우기로 하면서 그 안에서 장사를 하던 사람들은 또 어디론가 떠나야 했다. 서울시는 황학동 벼룩시장을 아주 없앨 수는 없었기에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건물을 하나 지었다. 그게 지금 동묘 쪽에 들어선 '서울풍물시장'이다. 풍물시장은 멋진 건물로 새 단장을 했고 인터넷 사이트까지 운영하고 있다. ( http://pungmul.seoul.go.kr )
동대문 운동장에 있던 상인들은 새로 지은 건물에 입주해서 장사를 시작했다. 문제는 애초에 가게가 없었던 길거리 상인들이다. 이들은 말 그대로 황학동 도깨비시장 때부터 길가에 좌판을 벌여놓고 장사를 했는데 이제 청계천과 동대문 일대는 패션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상업지구로 깔끔하게 정비됐기 때문에 더 이상 길에다 자리 펴고 물건 파는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좌판 상인들이 몰린 곳은 당연히 서울풍물시장이 들어선 동묘 근처다. 물론 동묘는 예전 황학동 시절부터 장사꾼들이 많이 있긴 했다. 허나 이제 풍물시장 건물까지 합세해서 상권은 더욱 커진 것이다. 풍물시장은 그곳 나름으로 건물 안에서 장사를 하고 길거리 장사꾼은 동묘앞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렇게 된 다음부터 풍물시장 건물 안보다 길거리 좌판 쪽이 더 인기가 높아졌다는 거다. 파는 물건도 풍물시장 건물에선 비싼 골동품이나 중소기업에서 생산한 값싼 재고품을 취급하고 중고제품을 다루는 곳은 거의 길거리 쪽으로 나왔다.
▲ 단골집 내가 좋아하는 가게다. 여기서 여러가지 수집품을 많이 샀다. 주인 아저씨는 가게 안쪽에서 한가롭게 졸고있다.
▲ 모피코트 입은 도깨비 모피코트를 파는 할아버지 좌판. 코트 위에 도깨비 가면을 얹어 놓은 것이 재미있다.
중년의 홍대, 동묘 벼룩시장
특히 지하철역에서 풍물시장으로 가다보면 나오는 삼거리는 '중년들의 홍대'라고 불릴 만큼 주말이면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붐빈다. 여기선 말 그대로 별것을 다 판다. 가을은 이곳 길거리가 가장 복잡한 때다. 앞으로 추운 날씨를 대비해 모두가 겨울옷을 사고팔기 위해 몰리기 때문이다. 떨이로 물건을 가져와서 파는 상인은 길거리에 옷을 아무렇게나 쌓아두고 잡히는 대로 1000원씩 팔기도 한다.
신발도 마찬가지다. 서울 인근과 지방에서 중고 신발을 수집한 상인은 트럭으로 한가득 신발을 싣고 와서 무작정 길바닥에 쏟아놓는다. 이런 신발은 맞는 짝을 찾아내면 한 켤레에 2000원에서 5000원 사이로 판다. 물론 이런 경우 옷이든 신발이든 따로 손질을 안 한 것이기 때문에 잘 찾아보면 쓸 만한 것이 있는 반면 오물이 묻거나 찢어져서 못쓰는 것도 꽤 있다. 산더미처럼 쌓인 옷과 신발 사이에서 괜찮은 물건을 골라내는 건 순전히 물건을 사러 나온 사람들 몫이다.
동묘 길거리 벼룩시장을 처음 가보면 아무렇게 펼쳐 놓고 파는 좌판과 그걸 보려고 몰린 사람들 때문에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를 정도로 눈과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러나 몇 번 다녀보면 여기도 나름 규칙이 분명히 있다.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는 위치에서부터 시작해 다루고 있는 물건들도 골목마다 조금씩 특징이 있다. 대 여섯 번 여기 나와서 물건을 사러 다니다 보면 자기 입맛에 맞는 단골가게를 만들 수도 있다.
나 역시 옷이나 신발, 가방 같은 경우 거의 다 벼룩시장을 이용하는 편이다. 여기엔 중고 책을 도매로 파는 곳이 몇 군데 있기 때문에 책방에서 판매할 책을 골라오기도 한다. 책 같은 경우만 해도 주말에 나가면 너무나 양이 많기 때문에 아침부터 나가서 오후 늦게까지 책을 골라도 늘 시간이 모자란다. 그래서인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들 여기를 자주 찾는다. 가끔은 벼룩시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나 알게 된 사람을 동묘 책방에서 다시 만나는 재미있는 경험도 한다.
▲ 성인잡지와 성물 낯뜨거운 성인잡지와 천주교 성물이 아무렇지도 않게 함께 존재할 수 있는 곳이 여기다.
유행을 좇지 않는 젊은이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인기
요즘은 중고 옷들을 사서 리폼을 해서 입는 젊은 사람들도 벼룩시장을 많이 찾는다. 길거리 시장은 동대문에 자리한 거대한 패션타운과는 확실히 다르다. 그곳은 유행하는 옷을 파는 곳이다. 하지만 유행이란 게 뭔가? 이 역시 누군가가 만들어내는 트렌드일 수밖에 없다. TV에서 어떤 연예인이 무슨 옷을 입고 나오면 유행이 돼서 많은 젊은이들이 그 옷을 입는다. 아이돌 가수처럼 유행을 이끄는 사람들은 그래서 조금은 상업적인 이유 때문에 각종 회사와 계약을 맺고 거기서 나온 옷이나 장신구를 한다. 그러면 그게 또 금방 유행이 되어 동대문에 쫙 깔린다.
벼룩시장은 그런 유행과는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어딘가에서 스폰서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벼룩시장에서 만나는 물건은 대단한 의외성에 기대고 있다. 언제 어느 때 어떤 디자인의 옷이나 신발이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물건을 파는 상인들조차! 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젊은 사람들이 벼룩시장에서 중고 물건을 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은 동대문에서 주도하는 유행을 거부한다. 세상에 둘도 없이 하나 밖에 없는 게 '나'다. 그러니까 '나'는 다른 사람과 똑같이 입는 걸 거부할 수밖에.
그런가 하면 이곳엔 외국인 노동자와 관광객도 꽤 늘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싼값에 옷과 신발, 가방을 비롯하여 생활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벼룩시장을 많이 이용한다.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을 들러 갖가지 신기한 빈티지 소품들을 구입한다. 대개는 옛날 돈, 우표, 가슴에 다는 배지, 흑백 사진, 오래된 상패들이다.
▲ 기타 연주하는 사장님 이 아저씨는 옷을 파는 분인데 늘 이렇게 앉아서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가만히 보니 오른손이 화상을 입었는지 온전하지 않은데 기타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
버려지는 것, 쓸모없는 것이 윤회하는 곳
이곳은 전국에서 수집된 재활용품 집합소 같은 역할을 한다. 누군가에게는 버려지는 것, 쓸모없는 것, 이사할 때 짐만 되는 것들이 다른 주인을 만나고 또 다른 쓰임으로 새 생명을 얻는다. 한 번 태어난 생명은 이렇게 세상을 돌고 돌아 윤회를 거듭한다.
물건 아까운 줄 모르고 늘 버리는 것에 익숙한 우리들이다. 젊은 세대들은 더 심하다. 최신 휴대폰이나 노트북이 나오면 지금 쓰던 걸 놔두고 최신형을 산다. 책과 학용품은 물론이고 옷이나 신발도 마찬가지다. 전처럼 후배에게 물려주거나 얻어 쓰는 일이 줄어드니까 새 물건들은 점점 더 많아진다. 하긴, 그렇게 해서 버려지는 물건들이 많으니까 한편으론 벼룩시장이 더욱 활성화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나저러나 벼룩시장은 거대한 윤희의 장이다.
이번 주 벼룩시장에 갔을 때는 가족단위로 찾아온 사람들이 많이 눈에 보였다. 부모님이 아이들에게 오래된 물건들을 설명해주는 모습이 보기 좋다. 물건을 사러 가는 것 외에 이정도 구경거리라면 구지 박물관을 가지 않아도 우리가 살아온 역사를 아이들과 재미있게 경험 할 수 있다. 벼룩시장이란 곳을 아직 가보지 않은 분이거나 동묘 쪽으로 도깨비시장이 옮겨 간 후 못 가본 분들은 올 가을 '중년의 홍대' 동묘 벼룩시장으로 나들이 한번 해보는 건 어떨까?
▲ 동묘 시장 탐험에 간단한 팁을 소개한 지도.
추천 탐방코스 중 주황색 길은 가격이 엄청 싸지만 물건이 정리가 안되어 있다. 사는 사람이 스스로 찾아서 사야한다.
빨간색 길은 주황색 길에 비하면 정리가 잘 되어 있는 편이지만 가격은 아주 조금 더 비싸다.
파란색 길은 여러가지 수집품들이 많다.
벼룩시장 탐험에 몇 가지 쓸 만한 팁 소개
- 찾아가는 방법: 자가용을 가져가는 건 추천하지 않는다. 지하철 6호선 '동묘앞' 3번 구로 나가면 곧장 벼룩시장이다.
- 챙겨가지고 갈 것:
* 생수 : 오랫동안 걸어야 하는 벼룩시장 안은 북새통이라 음료를 살 곳이 마땅치 않다.
* 물티슈 : 오물이 묻은 물건을 만진 다음 쓰면 좋다.
* 면장갑 : 기계나 전자제품 같은 것을 사러 갈 예정이라면 챙겨 가면 좋다.
* 현금 : 카드를 받지 않기 때문에 현금은 필수. 따라서 소매치기도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 사진촬영 : 대부분 벼룩시장 주인들은 사진촬영을 좋아하지 않는다. 촬영을 할 때는 꼭 사장님의 허락을 받고 하자.
* 가격흥정 : 대개 상인들이 흥정에 긍정적이고 가격흥정은 벼룩시장의 묘미라고 할 수 있지만 물건 품질을 문제 삼아 흥정하는 일은 되도록 삼가자.
<추가>
오마이뉴스의 기사만 보자면 옛날 황학동 시장을 떠올리며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인데
이 기사의 댓글을 보면 무척 지저분하고 실망스러운 모양이다. 댓글들을 한번 보시고 가보시길...
여기서 옷사면 그냥 갖다 버릴걸 빛돌이님 |17:13 |
심심할때 한번 가볼만은 하죠. 북적대고
옷값이 이런 가격이 있나 싶고. 셔츠한장에 천원. 새것인데요.
포장도 되어있고 이런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서 집에가다가
괜히 샀어 이러면서 그냥 쓰레기통에 버릴정도로 품질은 안좋습니다.
품질 상관없이 막 입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좋지요.
한국사람은 물건 못씁니다. 질이 너무 낮아서.
그냥 외국인 노동자들 관광객들 좌판 등 구경하고
길거리 음식 사먹고 그러다가 청계천쪽으로 산책가고 그럴때 가는곳임.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 doyourbest님 |16: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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