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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술/조선시대의 회화

도화서와 화원



도화서(圖畵署)

조선시대에 궁중에서 필요로 하는 그림을 그리는 기관이다.
이 도화서는 처음에는 도화원(圖畵院)이라고 하다가 1469년(예종 1) 이후부터 도화서라고 하였다.

이러한 기관은 삼국시대부터 있었는데
신라에서는 채전(彩典), 고려에서는 도화원, 그리고 조선에서는 도화서라고 하였다.

도화서는 예조(禮曹)에 속하는 종육품 아문(從六品衙門)으로서 제조(提調) 1명과 별제(別提) 2명, 그리고 화원(畵員) 20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화원은 종육품인 선화(善畵) 1명, 종칠품인 선회(善繪) 1명, 종팔품인 화사(畵史) 1명, 종구품인 회사(繪史) 2명 등 녹봉을 받는 5명의 직위가 있었고, 이외에 3명의 화원만이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자리였고 나머지는 그것마저도 없는 미관 말직(微官末職)이었다.

별제는 화원으로서 진급할 수 있는 최고의 직위였으나, 도화서의 화원들은 신분적으로 천시되었기 때문에 화원에서 진급하여 올라가기보다는 그림을 이해하는 사대부(士大夫)가 임명되었다. 이렇게 낮은 신분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작은 고을의 현령(縣令)으로 임명되는 경우도 있었다.

화원을 뽑을 때는 대나무(竹), 산수(山水), 인물(人物)과 영모(翎毛), 화훼(花卉) 등을 4등급으로 나누어 이 중 2가지를 보도록 되어 있었다. 따라서 높은 등급인 대나무와 산수를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이는 유교(儒敎)를 숭상하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도화서는 조선시대 말 순종 때까지 존속하였으며, 조선 후기에는 수요가 많아 인원과 규정이 달라졌다.


화원
(畵員)

궁중의 그림을 맡아 그리던 곳을 도화서(圖畵署), 혹은 도화원(圖畵院)이라고 하고, 이 도화서 안에서 그림을 그렸던 회화 전문 관리(官吏)를 화원(畵員)이라고 한다.

화원은 도화서의 하급 관리로서 5명에서 60명 정도로 구성되었으며, 선화(善畵), 선회(善繪), 화사(畵史), 회사(繪史), 화학생도(畵學生徒) 등으로 구별되어 있었다.

이들은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그림을 주로 그렸다. 국가 행사의 기록화인 의궤도(儀軌圖)나 어진(御眞), 정부 간행물의 삽도, 도자기의 문양 그림, 궁궐의 단청(丹靑), 여러 가지 지도(地圖), 사신의 수행원으로서 사행도(使行圖) 등을 그렸다.

이 외에도 임금이나 사대부들의 요청에 의해 그림을 그리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들은 스스로 독창적인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요구에 맞추어 그렸기 때문에 보수적인 경향을 띠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우리 나라 회화사를 이끌어가는 대부분의 화가들이 화원이었던 것으로 보아 이들은 도화서에서 기량을 닦아 후에 화가로서 이름을 떨쳤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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